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나 May 22. 2020

박아나의 북토크

마스크 시대의 도덕

직원 : 회원님. 마스크 착용을 부탁드립니다.

회원 : 출근할 때 뭐 타고 와요? 지하철?

직원 : 네, 그렇습니다.

회원 : 나는 운전하고 다녀서 접촉이 없어요. 그런 나한테 대중교통 타는 당신이 마스크를 쓰라 마라 하나?

직원 : 권고 사항이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회원 : 아니 그러니까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요. 기분 나쁘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다가 직접 들은 이야기다. 마스크 착용을 부탁하는 말에 불같이 뿜어내는 노여움을 보니, 저것도 일종의 갑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에게 그런 지적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괘씸해 저런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는 걸까. 마스크를 써야 되는 사람과 안 써도 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마스크로 사람 차별하는 건가.


 이태원 발 감염이 N차 감염으로 끝도 없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는  이 시기에 나부터 조심하는 게 기본일 것이다. 코로나19 뉴스를 조금이라도 봐왔다면, 대중교통 이용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밀접하게 접촉하는지에 따라 감염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 알 텐데. 당당하게 분노를 표출하고 돌아서는 그 회원을 보면서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절로 고개를 젓게 된다. 사람은 다 다르다. 같은 상황에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자차로 다녀 접촉이 없다는 그 회원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신의 집을 방문한 택배 아저씨에게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택배 아저씨도 운전하고 다니는 건 마찬가진데.

 

  물론 마스크 쓰고 운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걷는 속도가 빨라지면 숨이 찬다. 괜히 운동하다가 건강이 나빠지는 게 아닐까 나도 걱정이 된다. 마스크 쓰기를 거부한 회원도 그런 불편함을 알기에 더 까칠한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마스크를 쓰라고 말한 사람이 센터 직원이 아니라, 공권력을 가진 경찰이라면, 그러면 어땠을까. 경찰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고 했을까. 나 스스로, 내 의지로, 자가격리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자신의 불편함은 조금 감수할 수 없는 일일까. 자가격리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한다느니, 안심 밴드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도덕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끄는 데는 강제력만 한 게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만일 외부 권위와 그것이 주는 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면 우리는 자기 결정의 상실을 경험할 것입니다. 마치 머슴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이 내부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일 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스스로 삼은 자기 자신의 종이 됩니다. 도덕의식과 자기 결정이 서로 공존하려면 두려움이 원인이 되어서도 안 되며 열정 없는 의무감에 의한 것이어서도 안됩니다. 자기 결정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하지요. 한 가지 방법은 이성적이고 공익적인 의미를 두어서 자기 자신의 이익으로도 해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모두 도덕적 규범을 지킨다면 서로를 적대시하는 혼란 속에서보다 자기 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커지므로 결국 각자에게 모두 이득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 중에서


 마스크를 쓰는 행위를 징벌이나 남의 눈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성적이고 공익적인 의미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내가 내린 자기 결정으로 행한 선택이 나를 포함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불편하고 답답하지만 내가 마스크를 잘 써서 예상치 못한 감염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면, 감염의 위기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더 빨리 돌아갈 수 있으니 결국 내게도 이득이란 이야기다. 그래, 잘 알고 있다. 알고는 있다.


 그러나 저러나 우리의 참을성은 바닥이 나고 있다. 도덕책에나 나올 것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종이고 머슴이어도 상관없다. 마스크 하나 더 썼을 뿐인데 예민하고 까칠해지기만 한다. 뭐가 됐든, 우리 삶에 끼어든 이 바이러스의 위세가 대단하다. 이렇게 시간이 자꾸 흐르면, 코로나 시대의, 아니 이후의 시대의 도덕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자기 결정이 아니라 코로나가 결정하는 대로 달라질까.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은 짧지만 굵은 책이었습니다. 요즘 상황과 연관 지어 생각할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글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페터 비에리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저자로 알려진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입니다. 1998년에 쓴 <피아노조율사>란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번역본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전 02화 박아나의 일상뉴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