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내는 시간은 어떤가요
요며칠 사이 뉴스는 온통 우울하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뉴스들로 오늘이 어제같고, 어제가 오늘같다. 우리의 상황은 전혀 관심없다는 듯, 햇살은 따가워지고 바람은 뜨뜻해진다. 그렇게 우리의 계절은 바뀌고 있다. 2020년의 봄은 실종됐는데, 그럼 여름은 어떨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와 그 기대가 깨졌을 때의 실망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을텐데, 기대없이 사는 삶은 아직은 익숙치 않나보다.
그래도 엄마 손 꼬옥 붙잡고 얼굴을 반 이상 가리는 마스크를 끼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니 오랜만에 희망이 반짝인다. 드디어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구나. 그래, 저래야 진짜 우리 사는 일상이지. 아이는 없지만 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향하는 모습은 정말 뿌듯했다. 위험한 등굣길이지만, 우리 동네 초등학교 정문에는 아이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풍선들이 달려 있었다. 학교 가기를 기다렸던 아이들과 아이들을 기다렸던 선생님의 마음들이 저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을 터. 부디 저 풍선이 허무하게 터져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5월 등교처럼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는 낯설고 또 갑작스럽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받아들이고 있다. 백화점 슈퍼의 계산대가 셀프 계산대로 바뀐 것을 봤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점원들이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점원들의 반이상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셀프 계산대가 들어섰다. 코로나 이후 점원들과 손님들 사이에 플라스틱 칸막이를 세워 서로를 보호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했을까. 이제 사람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패스트푸드 매장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있었던 계산 방식이긴 하다. 사람도 많고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매장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 슈퍼에서도 이런 방식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좋지 않다. 그 매장에서 일했던 직원은 아니지만 내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느낌. 봄만 빼앗긴 게 아니라 사람의 자리도 빼앗기고 있다.
우리는 한 시대의 늦가을, 몰락하면서 해체되어가는 세계 속에 살도 있다. 그 세계는 많은 사람에게는 지옥이 되었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는 불안한 것이 되었으며, 그 위협은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완결될 때까지는 앞으로 100년이 걸리든, 아니면 10년 또는 몇 년이 걸리든 매한가지일 것이다. 또한 최후의 파국이 핵무기 전쟁에서 인류의 자살로 이어지든, 아니면 도덕과 정치가 무너짐으로써, 혹은 인간이 자기 손으로 만든 기계에 의해 지배당함으로서 오든 매한가지다. 인도 사람들의 생각대로라면 시바 신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춤을 추면서 세계를 마구 짓밟는 그런 시간을 향해 가는 중이다.
헤르만 헤세의 책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공감이 가는 구절이 많다. <데미안>으로 잘 알려진 헤세는 자연 속에서 사색하며 정원을 가꾸며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라 확 와닿지는 않지만, 헤세의 시대도 변화무쌍한 시절이었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불쾌감으로 그는 자연에 더 파고드는 삶을 선택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힘든 시절에는 오늘 우리가 겪는 고통은 모든 민족과 모든 종류의 존재와 고통을 포용하는 연대감을 부여한다고 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글로 표현했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제목처럼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지만, 군데군데 세상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등장한다. 국가들간에 무의미한 자원 전쟁을 벌이고, 무수한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도시와 시골의 아름다움과 쾌적함을 사라지게 하고, 공장들이 악취를 풍기며 물을 오염시키고, 그뿐만 아니라 언어와 가치, 사고 체계와 신앙의 체계가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지금의 우리 시대를 보면 헤세는 어떨까. 너무 끔찍해서 입을 다물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절필하고 자연으로 숨어들어가고 싶을 테지만, 그가 불평했던 예전 시대와 달리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도인들이 믿는 시바 신이 춤을 너무 오래 추는 건가. 얼마나 잘못된 게 많길래 그렇게 파괴와 죽음이 계속되는 걸까. 우리가 겪는 지금의 고통들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런 답답한 생각들을 잠시 접어두고 요즘 나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경쾌한 자전거 바퀴 소리는 나를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자전거를 타면서 마주치는 풍경은 어린 시절의 나를 소환한다. 자전거 더 타고 싶어서 심부름 시켜달라고 엄마를 졸랐던 나는 지금도 일부러 일을 만들어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자전거 타는 일이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행위는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로 나를 즐겁게 한다. 나의 자전거처럼, 헤세도 꽃이나 열매에서 나는 특별한 향기나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을 때 느끼는 특별한 기쁨 같은 것들, 어떤 가락을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으로 부는 일조차도 우리에게 작은 기쁨을 선사한다고 했다. 좌절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힘든 시절에도 우리 곁에 작은 기쁨들은 늘 함께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작은 기쁨, 작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런 작은 것들이 우리의 지금의 일상과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촘촘하게 지탱해주는 게 아닐까. 그렇게 작은 기쁨들을 발견하러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탄다.
***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을 읽으면서 자연과 더 가깝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고, 고개를 숙여 길가에 핀 꽃들과 인사하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더 많이 늘려야겠습니다. 그러다보면 마음도 편안해지고, 글도 잘 써질 것 같아요. 그런게 작은 기쁨들이 주는 위안과 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