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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Feb 08. 2020

박아나의 일상뉴스

교감을 만났다 ( VR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를 보고...)


 요즘 유독 더 피곤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하고 생활하는데, 뭔가 더 지친다. 입춘에 반짝 추웠지만 어쨌든 봄이 찾아오고 있으니, 바뀌는 계절에서 오는 피로감일까. 이번 겨울은 따뜻해서 초봄의 기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 딱히 그런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얼굴에 쓰인 마스크가 답답해서일까. 예전보다 자주 씻는 손 때문일까.


 병원에 다녀왔다. 오해는 마시라. 지난번에 검진한 결과를 들으러 간 것이다. 이날은 영하 10도에 가까운 추위에 밖으로 나가기 싫었지만, 한 번 미뤘던 예약인지라 그냥 다녀오기로 했다. 병원이라는 곳을 가니 마스크도 단단히 챙겼다. 병원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안내직원에게 검사 결과를 들으러 왔다고 했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세정제로 손 소독 먼저 하세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것처럼 세정제로 손을 문지르며 왼쪽으로 향했다. 뭔가 한 방 먹은 느낌. 그리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안내를 듣는다. “ 2주 사이에 중국을 방문하신 적은 없으시죠?” "네..." “열을 재겠습니다.” "아... 네..."


 사실 이 시국에 너무 당연한 일이고 탓할 생각은 1도 없다. 이렇게 관리를 잘하는 병원이니 더 믿음이 가는 것도 맞다. 그러나 내가 한 방 먹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외출하기가 싫기도 했지만, 솔직히 지금 같은 시기에 병원에 가는 게 조금 꺼려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감기 환자라든지, 뭔가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 터이니, 어떤 면에서는 조금 걱정스러우니까.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나의 입장이었고, 병원의 입장은 달랐다.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 모두가 병원 입장에서는 다 똑같았다. 잠재된 위험을 가진 사람의 대상에는 당연히 나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하긴 그렇지.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나는 괜찮은데, 남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 역시 문제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깨닫는다. 결과를 듣고나오는 길에 다시 한번 세정제로 손을 소독했다. 나는 안전한 사람이라고 시위하는 것처럼. 피곤하다.


 인터넷 검색을 한다. 타이틀만 조금씩 다를 뿐 뉴스는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 확진자가 추가되고, 그들의 동선이 상세히 밝혀질 때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소식으로 도배된다. 처음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아, 내가 어제 갔던 곳이었는데.’ ‘그날 나 거기에 몇시즘 있었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나도 익숙한 곳이 나오면 속으로 움찔한다. 몇 시간 전의 일도 돌아서면 깜깜한데, 이제 며칠 전, 아니 이주 전 동선까지 소환해내야 할 판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임시 휴업 소식에, 졸업식이며 입학식이며 줄줄이 취소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좋지 않다.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소중한 추억이 없어질, 아니 생길 기회조차 사라져 버리는 일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에 또 피로가 몰려온다.

코로나 맵, 너무 유용하지만 슬픈 지도. 사진: coronamap.site

 지금처럼 지치고 힘들 때 필요한 것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의 유튜브 채널 ‘무료한 박아나’ 에 두 번째 에피소드는 좀 가볍고 유쾌한 내용이면 좋을 것 같았다. 뭔가 웃음을 주면 지금의 피로한 상황에서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또한 내 착각이었다. 촬영할 때는 “이렇게 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영상을 올리고 보니 “지금 꼭 이런 걸 하고 싶었니?”로 바뀌었다. '이걸 어째...’하고 있는데, 반응도 역시 싸늘했다. 별로 웃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억지로 웃을 수는 없다. 게다가 충분히 웃기지도 않고.


 얄팍한 유머에 머쓱해져 내 마음도 움츠러들었다.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 제대로 못한 사람 같았다. 우울해진 기분에 더 불을 질러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원래는 슬퍼서 보지 않으려고 했던 동영상을 꺼내 들었다. 혈액암으로 어린 딸을 떠나보낸 엄마가 VR, 가상현실을 통해 딸을 다시 만난다는 MBC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였다. 일단 내용으로 짐작은 했지만, 이거 보고 눈이 퉁퉁 부었다, 사람 많은 공공장소에서는 보지 말라는 경고는 괜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 어디 있었어?” “엄마? 항상.” “엄마, 내 생각했어?” “맨날 해.” 딸을 계속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길. “한 번만 만져보고 싶어.”라고 울먹이는 엄마는 딸을 안고 싶다. 물론 엄마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서 딸이, 아니 딸의 모습을 한 영상이 보이겠지만,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그저 휘젓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보이지만 만질 수 없고, 다가갈 수 있지만 안을 수는 없는 허무한 손짓. 어찌 보면 너무 잔인하기도 한, 그래서 더 가슴이 미어지는 장면에 폭풍 오열할 수밖에 없었다.

딸 나연이와 엄마의 만남이 가상현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진 : MBC VR 휴먼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
닿을 수 없는 나연이...  사진 : MBC <너를 만났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딸을 잃은 엄마의 슬픔, 이렇게라도 딸과 만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자식도 없는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겪는 여러 가지 슬픔 중에 가장 큰 슬픔일 것임에는 분명하다. 내가 경험했던 다른 슬픔들의 강도에 몇백 배, 아니 몇만 배를 곱하면 될까. 다큐멘터리 속 엄마의 아픔이 그대로 전이되어 축 쳐질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용하다. 영상을 보기 전만 해도 약간의 자책과 요즘의 시국으로 피곤했었는데, 그랬던 그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느끼는 피로의 감정들은 적어도 끝이 있는 것이고(딸을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영원할 테니), 그리고 실체보다는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내는 걱정이 더 클 뿐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준 눈물에 고맙다고 해야 되나, 아니면 이 만남을 가능하게 만든 VR에 감사해야 될까.


  VR의 가장 큰 강점이 교감이라고 한다. 가상의 캐릭터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손에 닿을 것 같다. 스크린 속 캐릭터가 아니라, 내 옆에 숨쉬며 살아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애틋하고, 더 안타깝다. 이번 기획을 통해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치유가 되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가상현실 속 딸과의 교감은 잠시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다큐멘터리를 본 많은 사람들이 서로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며 상처를 보듬는 댓글들을 보니, 또다른 수많은 교감은 있었던 것 같다. 가상 현실이 아닌 진짜 현실 속에서의 교감 말이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내가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교감이, 더 따뜻한 교감이 필요한 나날이다. 교감이 주는 위로와 위안이 가상현실 속 딸처럼 나비가 되어 사라지는 순간의 것일지라도 붙잡고 싶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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