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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02.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새해의 시작

 2021년이 되자마자 나는 2020년의 나를 후회했다. 세상은 멈췄지만 그 덕분에 뭐든 할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충분했는데,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자책은 그 이전에도 늘 이맘 때면 똑같이 들었다. 남들은 다들 바쁘게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약간의 자괴감과 함께. 이 비교하는 마음은 올해도 똑같이 들었다. 팀은 부진한데 혼자 홈런 치는 동료가 부러운 나머지 선수들처럼. 2020년 모두가 힘들었어도 결실을 맺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결실을 맺었고 나는 그것을 목격했다.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읽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덕적 혼란>처럼 마음속 혼란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은 지옥인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고,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혹은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런 상태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지옥불은 내가 지피고 내가 끌 수 있는 것임을 잘 알지만, 나라는 존재를 통제하는 나는 떨어지는 나뭇잎에도 움찔하는 나약한 존재여서 그 불을 관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긴 자유자재로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이 아니라, 신일지도. 그래, 나는 인간이니까. 


 <도덕적 혼란>의 주인공인 넬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 끌려다니는 그런 존재다. 홀로 어머니의 출산을 준비하고 그렇게 태어난 동생을 돌봐야 했던 어린 소녀는 이혼하지도 않을 답답한 남자와 그 아이들까지 챙기며 살아가는 중년의 여인이 되어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이용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녀의 삶을 지켜보자니 답답하기까지 하다. 왜 그녀는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는 나대로 살겠다고.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넬의 이야기를 통해 가부장적인 세계를 꼬집고 여성의 해방과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실제로 캐나다를 대표하는 페미니즘 소설가다. 넬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그녀의 지나간 세월을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그래야 나도, 상대방도, 세상도 알 수 있다고 작가는 넬의 입을 통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 <도덕적 혼란> 빨간 책 표지와 여인의 눈빛에 끌렸습니다.

 혼란한 마음을 다독이며 책상에 앉아본다. 사실 책상이라 할 것은 없고 식탁의 한편을 쓰고 있는데, 혼돈의 공간이기도 하다. 음식을 먹는 공간이지만,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유튜브를 촬영하고 편집하는, 나의 중요한 일과가 이곳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혼란한 식탁, 아니 책상 속에 잠시 혼란한 마음을 접어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올해는 무엇을 목표로 달려야 할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 어떤 것을 지켜내며 살아야 할까. 이런저런 계획들을 긁적이지만 새롭지도 않다. 제대로 이뤄낸 적이 없는 크고 작은 소망들은 내가 살아온 시간처럼 켜켜이 쌓인다. 언젠가는 당당하게 떠나보내기를 희망하면서.


 새해라 드는 생각일까. 그렇다기보다는 새해라 꺼내 놓을 수 있는 이야기다. 이 혼란스러운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단지 입 밖으로 내면 그게 나를 옭아맬까 봐 무서워서 내놓지 않았을 뿐이다. 새해가 밝았다고 세상이 뭔가 변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이 한 살 더 먹은 거 외에는 별다른 의미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는 달라져 보겠다고, 새해부터는 보여주겠다고, 목소리를 내보겠다고 그렇게 욕심을 내본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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