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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10.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좁은 문으로 걸어가는 길

 작년 초부터 쇼팽의 녹턴과 왈츠, 즉흥곡들을 연습하고 있다. 1년 가까이 쇼팽을 쳤으면 나아질 만도 한데,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아름다움이 깊어지는 쇼팽의 음악과는 달리, 내 연주는 그 깊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몸이 안 따라가니 머리로라도 이해해야 될 것 같아서  <좁은 문>의 저자로 기억되는 앙드레 지드의 <쇼팽 노트>를 읽었다. 내가 아는 그 지드가 쇼팽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해하면서.

저도 음악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당신은 우리 수도원의 보잘것없는 피아노에서 아주 좋은 소리를 이끌어내시는 재주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피아노를 쳤답니다. 그러나 오래전에 그만두어야 해서, 연주는 안 하고 그냥 악보를 읽기만 했지요. 이렇게 소리 없이 음악을 읽고 상상 속에서 음악 소리를 듣는 것이 오롯한 기쁨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예. 자리에 누워 있어야만 할 때 제가 갖다 읽는 책은 교부들의 저서나 그 밖의 책들이 아니라, 바로 악보랍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갖다 읽는 악보가 어떤 악보일 것 같아요?... 바흐는 절대 아닙니다. 모차르트도 아니고요. 쇼팽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음악 중에 가장 순수한 음악이죠”


 수도원 원장 신부님이 쇼팽의 음악을 가장 순수한 음악이라고 선언했듯이, 앙드레 지드에게도 쇼팽은 그런 존재였다. 바그너 음악의 덩치에 비해 쇼팽의 음악은 미약하지만, 그런 점에서 쇼팽의 음악이 순수하다고 평했다. 쇼팽은 바그너식으로 자신의 감정에 음을 싣지 않고 음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었으며, 심지어 ‘책임감을 실었다’면서 말이다. 쇼팽은 제안하고, 가정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가 딱 잘라 말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우리 연주자들은, 쇼팽의 제안을 은근히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내 감정을 터뜨릴 생각보다는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 쇼팽의 음들은 하나하나 다 소중하니까...


 지드는 피아노의 고수답게 어떻게 쇼팽을 연주해야 할 지도 자세히 언급했다. 그는 많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쇼팽의 빠른 곡들을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경향을 지적했다. 다그치며 빨리 가지 말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숨 쉬듯 수월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뜨끔하다. 쇼팽의 즉흥곡 4번을 내 흥에 자꾸 빠져 너무 몰아치고 있다. 지드의 말처럼 빠르게 가면서도 음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며 그렇게 움직여야 될 텐데,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는다.

앙드레 지드, 20세기 초반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비평가, 1947년 노벨문학상 수상.

 그가 숭배하는 쇼팽이나 피아노 이야기를 할 때의 지드는 굉장한 확신이 느껴진다. 저 정도의 확신을 가질 정도라면 얼마나 음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피아노 연습도 많이 했을까. 실제로 그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연습했다고 하는데, 그 어려운 -개인적으로 언제가 꼭 마스터하고픈- 쇼팽의 발라드도 외워서 쳤다고 하니까 실력도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벨 문학상도 받고 피아노도 잘 치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어려운 일인데, 다른 분야에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질투가 난다. 한 가지 일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나는 또 쭈그러든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길도 좁은 길인데, 한 번 좁은 길을 통과하고 나면 다른 길들을 좀 더 수월하게 통과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좁은 길의 끝에는 지드의 소설 제목처럼 <좁은 문>이라도 기다리고 있을까. 한 분야도 제대로 파고들지 못했지만 이런저런 궁금증이 앞서간다. 소설 속에서의 좁은 문은 하나님의 뜻에 이르는 숭고한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들어설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만 전적으로 바라보며 사는 그런 봉사와 희생의 삶은 누구에게나 쉽게 허용되지 않은 길이기에.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어느 길이든 요즘 만만한 길이 있는가. 남이 가는 길은 널찍한 대로로 보여도 내가 가는 길은 유독 좁은 골목길로 느껴지는 법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글도 써보고 영상도 만들고 피아노 연습도 하면서 다각적으로 접근하지만, 예술과 가까워지는 길은 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처럼 좁고 아찔하다. <좁은 문>의 알리사가 제롬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 사이에서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것처럼 내 머릿속에도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이 둥둥 떠다닌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예술 전문가들 그리고 무림의 고수들 사이에서 나는 어쩌려고 이 좁은 길로 들어서려는 것일까. 무모하면서도 가끔은 다 쓸데없는 짓 같다.


 그래도 다시 도돌이표처럼 쇼팽으로 돌아오면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쇼팽의 곡을 멋지게 연주하려면 너무 다그치지 말고 한음한음 소중하게 감정을 담아 연주하라는 지드의 이야기를 인생에 적용시켜 보는 거다. 지드가 쇼팽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다 보면, 좁은 문까지는 아니어도 어디에라도 가있지 않겠나. 그런 희망을 품고 오늘도 좁은 길을 외로이 걷고 있는 나와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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