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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Jan 17.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꾸준함

 깔깔깔깔. 크게 웃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일부러 예능 프로그램들을 챙겨본다. 웃어 보려고. 그렇게 작정하고 웃기려고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 생활에서 웃을 일이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사람들과 만나서 신나게 떠들고 웃을 일이 드물기 때문이겠지. 마스크로 답답한 희망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웃을 일도 별로 없으니까. 마스크 뒤로 가려진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아무런 표정이 없는지... 경계심 가득한 눈빛을 아무리 쳐다봐도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 거울을 보고 내 입꼬리를 올려본다.


 웃음은커녕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고 지낼 때도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는 날이면 아무도 읽지 않는 먼지 쌓인 책 한 권의 심정이랄까. 집에 아이가 있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으려나.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루 종일 아이들과 붙어 지내다 보니, 잔소리와 화가 엄청 늘었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 때문에 중간중간 웃을 일도 많겠지만. 아무튼 나는 잔소리도, 화도, 웃음도, 별다른 말도 하지 않은 채 약간 외톨이 같은 신세로 하루를 보낸다. 너무 조용했나. 유튜브 촬영할 때도 자꾸 버벅거린다. 평생을 해온 말도 자주 안 하면 말주변이 줄어드나 보다. 친구들과 만나서 신나게 수다라도 떨면 그나마 실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텐데... 코로나가 진정될 즘이면 내 말수도 바닥으로 가라앉을지도.


 웃을 일도, 말할 일도 많지 않지만, 1월은 그나마 의욕이 불타는 달이다. 갈길을 잃었던 피아노 연습이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을 보니 그렇다. 하루라도 연습을 건너뛰면 그전에 쌓았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틀, 사흘 이렇게 연습의 공백이 생기면 다시 제자리를 찾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그걸 잘 아는 한 달 전의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연습을 며칠씩 하지 않았고, 막판에는 왼손 엄지손가락 근육이 아파서 그나마 간헐적으로 하던 연습도 2주 정도 푹 쉬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1월의 나는 요즘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전히 손가락은 불편하지만 새해 1월부터는 새로운 선생님과의 수업이 시작되기에 없던 의욕도 생기고 있다. 모차르트를 위해서는 또랑또랑하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쇼팽을 위해서는 부드럽게 연결 또 연결한다. 12월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다시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꾸준한 연습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 꾸준함은 피아노 연습뿐 아니라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글 쓰는데 아무리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도 쓰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 별다른 재능은 없어도 매일 쓰는 사람은 언젠가는 글에 힘이 실린다. 작가 이슬아의 에세이 <부지런한 사랑>에서도 꾸준한 글쓰기가 재능보다 더 좋은 자질이라고 말한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이슬아 작가가 아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현장에서 목격하고 깨달은 사실이다. 물론 선천적 재능에, 후천적 꾸준함까지 갖췄다면 천하무적이겠지만, 그런 사람이 나일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최근에 정리하고 있는데, “이건 뭐지...?” 싶은 글들에 놀랄 때가 있다. 가끔, 가끔 봐줄 만한 글이 나오면 “내게도 아직 희망은 있어...”라고 다독여 보지만, 아직도 어떻게 써야 할지 답답할 때가 많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마다 오늘은 도대체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은 며칠 전 먹었던 메뉴로 돌려 막고 있다. 카레, 떡국, 불고기, 떡볶이... 좀처럼 신박한 메뉴는 떠오르지 않는다. 내 글쓰기도 그와 비슷하다. 내 관심사의 깊이가 얕은 건지, 다양하지 않은 건지, 한 자리에서 맴도는 느낌이다. 어쩌면 무엇을 목표로, 누구를 대상으로 글을 쓰는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글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꾸준함만 믿기에는 이래저래 불안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꾸준하게라도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슬아 <부지런한 사랑> 지도했던 아이들의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코로나로 일이 줄어드면서 수입은 줄었지만 시간 부자는 되었다는 이슬아 작가의 이야기에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 시간 부자 한 명 더 추가요! 그러나 시간 부자라고 주어진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여유 시간이 늘어난다고 해도 마음까지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늘어난 시간에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시간 부자의 마음에는 어느덧 조바심이라는 것이 찾아온다. 지금 이대로 괜찮냐고, 언제까지 이럴 거냐고. 시간이 많다고 맘 편히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바쁜 자는 단지 마귀 하나로부터 유혹받지만, 한가로운 자는 수많은 마귀들로부터 유혹받는다.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풀러는 이렇게 말했다. 게을러지거나 쾌락에 빠지거나 걱정이 많아지거나... 거기에 조바심도 우리를 성가시게 유혹한다.


 시간 부자로 산 지 5년, 어느 정도 부자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조바심과 느긋함 사이에서 조금씩 방향을 잡아가고 있어 보이지만, 가끔 혼란이 찾아온다. 시간 부자가 잘할 수 있는 꾸준함도 꾸준하게 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거 해서 뭐하나, 누가 알아주기라도 하나, 나중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수시로 들어왔다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함은 시간 부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재산이다. 그리고 이 꾸준함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어야 발휘된다. 소망이 없으면 꾸준할 이유도 없다.


 꾸준함은 내가 꿈꾸는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희망 버튼이다. 나는 여전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과 피아노 연주회에 대한 소망, 뭐 그런 것들을 담아 띵똥하고 눌러본다. 올해는 뭐 그런 것들을 이뤄 볼 수 있으려나... 희망 버튼에 불빛이 환하게 반짝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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