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집콕0.5일차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나요?
그렇게 잘 쓰는 글은 아님에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게도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잠시 사라졌었습니다.
그 사이 일이 좀 많았습니다.
이사를 결정하고,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제 마음이 좀 바빴나 봅니다.
이사도 가기 전에 마음이 붕떠서 몹시 분주한 나날들을 보냈지요. 온통 이사 준비에 관심이 쏠리고 나니 글이 써지지 않았습니다. 쓸 시간도 점점 부족해졌고요.
글도 멀리하고 부지런히 움직인 끝에 어느 정도 공사의 윤곽이 잡히고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병원에 가야 될 일이 생겼습니다. 이사를 다 마치고 갈까 망설였지만, 새 출발을 깔끔하게 하고 싶어 이사 전에 병원 일을 처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건강 검진에서 발견된 가슴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일이었는데요. 사실 저는 10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가족력도 있고 해서 꾸준하게 검사를 받아왔었습니다. 검사 때마다 늘 마음을 졸이며 ‘이번에는 괜찮겠지, 이번에는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몇 번의 조직 검사를 거치며 지금까지 왔는데, 결국 또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보통 이 수술은 맘모톰으로 알려진 비교적 간단한 비절개 수술과 절개 수술을 선택할 수 있는데, 저는 여러모로 위험군이기 때문에 절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좀 손이 많이 가는 수술인 거죠.
예전에도 이 수술을 받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꽤 간단한 수술로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당일 퇴원 수술로 예약했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저는 혈압을 재고 항생제 주사 반응 검사, 그리고 링거를 손등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수술 부위를 더 정확히 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를 다시 진행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픔을 경험하고야 말았습니다. 바늘로 수술 자리를 꿰매서 표시해야 했는데, 자세히 표현하면 또 생각날 것 같아... 아무튼 정말 아팠습니다.
이미 수술을 다 받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수술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앞의 수술이 좀 지연돼서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어졌는데, 그렇게 계속 기다리며 누워있다 보니 슬슬 졸음이 옵니다. 아침부터 병원 온다고 서두른 데다, 앞서 했던 검사들 때문에 시달려서 몹시 지쳐버렸거든요. 마취가 필요 없을 것처럼요. 그 와중에 저는 전화기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제 물건들을 처분하기 위해 당근마켓 거래를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오늘 거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술 날 왜 약속을 잡았냐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수술이 간단할 것으로 예상한 저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돌아가는 상황이 자꾸 예상과 달리 흘러가서 왠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설명하고 약속된 시간보다 좀 여유 있게 오라는 문자를 보내야만 했는데요, 한 손엔 링거를 꽂은 상태로 나머지 한 손으로 버벅버벅 문자를 쓰다 보니, 어느새 제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남편과 수술실 앞에서 헤어질 때 살짝 울컥했습니다. 수술이 무섭기도 하고 제 처지가 서글프게 느껴졌거든요.
수술실 안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늘 거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도록 질문받았던 제 이름과 생년월일, 수술부위 등등에 대한 답을 기계적으로 되풀이했습니다. 어쩔 수 없죠. 혹시 모를 혼동이 있으면 큰일이니까요. 환자의 상태도 확인할 수 있고요. 마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제 이가 튼튼한지 점검을 받았습니다. 틀니도 없고 흔들리는 이도 없고 그 흔한 임플란트도 없다고 - 제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환자들은 임플란트는 있다고 다들 그러셔서- 대답했지만 그래도 확인하더라고요. 전신마취 중에 저도 모르게 삽입된 관을 잘못 깨물어 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항생제가 링거를 통해 들어오니 손등과 손목이 뻑뻑해집니다. 잠시 그럴 수 있다고 하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죠.
드디어 제 수술의 담당 간호사가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너무 오래 대기했던 터라 음식점에서 제 번호표에 진동이 울렸을 때 같은 반가움이 올라옵니다. 그런 기쁨도 잠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미로 같은 수술실 복도를 누운 채로 이동하는 기분이 묘하더군요. 마취 이후의 일은 어찌 될 수 알 수 없기에 저는 수술실이 늘어선 복도와 천장을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공간은 아니었지만요. 지금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수술실에 도착했습니다. 긴장한 저와는 달리 수술실에 있던 모든 분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요가의 어떤 동작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저도 그 대화에 끼어들 뻔했습니다. 아무튼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경직된 몸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보통의 일상이며 매일 출근하는 일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이며 낯선 공간이니까요. 어차피 받게 될 수술, 편히 받자... 이렇게 마음을 다지고 있는데 제 담당 선생님이 인사를 건넵니다. “선생님! 아까 초음파 받을 때 좀 아프더라고요, 무섭고 긴장돼요...” 속마음은 “이제 제 모든 것이 의사 선생님 손에 달렸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였는데, 그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답을 하셨는지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 상태를 일단 말하고 나니까 마음이 놓였습니다. 대화는 이제 그만이라는 듯, 제 입은 산소마스크로 막아졌고, 마취제가 투여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이렇게 속으로 셌는데 여전히 정신이 멀쩡합니다. 다시 ‘열부터 세야 하나?”라고 생각한 순간... 그리고는 기억이 없습니다.
p.s 그다음 이야기는 일주일 뒤에 다시 올릴게요. (어쩌면 심심해서 자주 올릴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