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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14. 2021

박아나의 일상뉴스

갑자기 집콕 1.5일차

호흡을 크게 하세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숨을 좀 몇 번 쉬고 나니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옵니다. 가슴은 묵직한 것 같고, 손가락 끝에는 뭔가가 달려 있네요. 아... 악 통증이 느껴집니다. 저는 살아있었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걸 보니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견딜만했는데, 점점 고통이 차오릅니다. 콕콕 쑤시는 느낌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진통의 정도를 물어보는데, 글쎄요. 10 중에 6이나 7 되지 않을까. 진통제를 조금만 투여하겠다고 합니다. 네, 필요합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진통제가 효력이 있는지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듯합니다. 그제야 수술실 밖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있었던 환자 대기실 침상에서 조금 더 대기했습니다. 퇴원하려면 들어야 할 설명도 있고, 약도 받아가야 하니까요. 저는 마취에서 완전히 깨기 위해 잠을 자면 안 되는데, 오랜 시간 마음 졸이며 대기했던 남편은 엄청 졸음이 몰려오나 봅니다. 눈을 껌벅껌벅하네요. 남편에게 맡겨 두었던 핸드폰을 돌려받고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낯선 의사 선생님이 왔습니다. 그리고 낯선 말도 덧붙입니다. 다음 외래 진료 날짜에 배액관을 제거하겠다는 겁니다. 네...? 배액관이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뭔가 뜨끈한 것이 있었습니다. 덮어진 이불속을 보니 저는 배액관이라는 것을 달고 있었습니다. 가슴도 뭔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저는 압박복이라는 것을 입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저는 다음 외래일, 그러니까 수술일로부터 10일 뒤에 이 배액관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이 상태 그대로 있다가 오라고 합니다. 이상태로... 요 모양 이 꼴로.


배액관은 수술부위의 회복을 돕기 위해 체액 및 림프액을 제거하여 상처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가지고 있게 됩니다. 이 배액관을 통해 출혈 여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배액 주머니를 비워 양을 측정하고 양이 줄면 제거하게 됩니다. 배액관 관리 설명서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남편에게 배액 주머니 비우는 법을 설명합니다. 남편의 업무가 추가됩니다. 당분간 집안일도 다 해야 하는데, 하나의 업무가 더 생기네요. 미안한 마음도 잠깐, 저는 제 앞길이 깜깜했습니다. 배액관이 달리고 가슴에 두꺼운 거즈가 양쪽에 - 저는 양쪽 두 군데서 제거해야 할 것들이 다 나왔거든요- 덮어져 있고, 꽉 끼어 숨도 쉬기 어려운 조끼 같은 옷을 입고 열흘을 지내야 하는 저의 상황 말입니다. 샤워도 할 수 없고, 심지어 배액관을 제거하고 3일 뒤에야 샤워가 가능하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까지...


그렇게 저는 충격적인 설명을 듣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무겁고 몸도 무겁습니다. 토끼굴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호랑이굴에서 나왔습니다. 덧셈인 줄 알고 덤볐는데, 미분이었습니다. 저는 수술하고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술 후 상황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상당히 멀어진 거죠.


그렇게 계획에도 없는 집콕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오후 4시 반. 목이 말랐습니다. 전날 밤 10시부터 금식이어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으니까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마취로 목구멍이 불편합니다. 노래방에서 혼자 마이크 잡고 다섯 시간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온 것처럼 목이 아픕니다. 목이 불편한 것 빼고는 가슴의 통증은 의외로 괜찮습니다. 집에 돌아와 컨디션이 조금 회복된 걸까요?


그러나 밤이 되니 통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특히 왼쪽의 통증이 너무 강렬했습니다. 침대에 누웠는데 등까지 아팠습니다. 가슴을 관통하고 등까지 느껴지는 통증...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든 견뎌 봅니다. 병원은 다시 가기 싫거든요. 이러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만 같습니다. 잠 못 이루는 고통스러운 밤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아픈데, 또 너무 졸리네요. 아... 힘들다. 아침이 오긴 하려나.


잠이 들었다, 깼다, 왔다 갔다 하는 밤이 지나니 아침이 오긴 왔습니다. 통증은 왜 어둠 속에서 더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까요. 밤새 저를 괴롭혔던 통증이 많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챙겨 먹습니다. 항생제는 일주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먹어야 되는데, 그나마 있던 제 좋은 균들도 사라지겠네요. 제 면역력은 어떻게 챙겨야 되나...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합니다. 일단 옆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배액관에서 나오는 물질의 양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꾸 움직이지 말고 좀 쉬어야겠죠. 그래야 회복이 될 테니까요.


자, 이젠 뭘 하죠? 남편이 출근하고 나니 심심함이 몰려옵니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질 못하니, 피아노 연습을 할 수도 없고 집에 있는 자전거도 탈 수 없고, 그렇다고 집안일을 할 수도 없고,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이삿짐에 다 싸놓았습니다. 그럼 선택지가 티브이, 유튜브, 넷플릭스입니다. 하루 종일 그것들만 돌려봐야 되는 거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마음 편히 티브이나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럴 수 있게 되니까 별로 흥미가 당기지 않네요. 벌써부터 지루합니다. 생각만 해도 앞으로가 지루합니다. 휴...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잠이라도 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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