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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May 30.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식상하지만 다이어트할래요.

 머리가 꽉 차서 몸이라도 비워보겠다는 마음으로 디톡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건 좀 포장한 말이고, 그냥 몸이 무거워서 극약처방으로 한 것이다. 삼일 동안 세 시간 단위로 주스를 마시면 된다. 각 주스마다 재료가 달라 나름 지루하지는 않지만, 하루의 사이클을 다 돌고 둘째 날 같은 사이클을 돌기 시작하면, 내내 이것만 먹어왔던 것처럼 지겨운 맛으로 느껴진다. 지금이 둘째 날이다. 허기도 지고, 기운도 없어서, 어디 돌아다닐 힘도 없다. 살짝 예민해져서 어려운 거 시키면 짜증 난다. 성격 더 나빠지기 전에 나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티브이를 볼까? 이런... 먹는 장면만 나오는구나. 먹방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건 아니겠지? "대리만족 따위는 없어. 이거 끝나면 다 먹어버릴 거야."라고 달래 보지만, 내일까지 사흘간의 주스 지옥을 끝내고도 하루, 이틀 정도는 소식해야 된다. 끝나고 평소 먹던 데로 바로 먹으면, 위에 좀 부담이 되니 그렇단다.

하필, 냉장고를 부탁해가 나오네. 다니엘 부럽군... 사진: 스타데일리뉴스

 뭐하러 사서 고생하냐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맞다.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사서 고생해야 할 때도 있다. 고생 끝에 낙이라는 게 오는데, 갈수록 고생은 피하고만 싶어 지니 고생을 사서라도 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돈이 아까워서라도 하겠지. 마치 연초마다 운동을 다시 끊는 그 마음. 처음에만 좀 가다 말 것을 알지라도 카드를 꺼내 든다. 얘기 나온 김에, 그럼, 운동해서 살 빼면 되잖아?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운동만으로도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다. 많은 다이어터들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나잇살은 좀 더 어렵다.  


  운동도 나름 신경 써서 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짐은 요즘 북적북적하다. 유산소 운동의 꽃인 트레드밀은 꽉 차 있고, 근력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벤치에 여유가 없다. 여름이 오긴 왔구나 싶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안 나오던 회원들도, 새롭게 등록한 회원들도, 나처럼 계절 타지 않고 오는 회원들까지 자리다툼하며 땀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여름휴가의 절정인 8월 초까지 사람이 많다가 서서히 숫자가 줄기 시작한다. 운동할 마음도 휴가지에 던져두고 온 것일까?  아니면 이제 수영복 입을 일은 당분간 없어서 그런 건가? 뭐가 됐든 바짝이라도 열심히 해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이 부럽다.

달리고 또 달리는 사람들. 사진출처:국민일보

  '여름휴가에 바닷가에서 비키니 입기'처럼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면 열심히 한다.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는 더더욱 열심히 매달려야 하는 법. 다이어트처럼, 팟캐스트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바짝 노력해야 한다. 지금 나의 상태는 디톡스 다이어트 시작한 지 둘째 날 정도라고 할까? 하루만 더하면 주스는 안녕이다. 물론 팟캐스트는 하루 더한다고 끝날 일은 아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절반까지는 달려왔다고 본다. 다이어트 이야기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 어쩔 수 없이 등장했네. 식성 좋은 내가, 먹는 걸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는 건, 지금 나의 상태가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디톡스가 끝난다고 해서 극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이렇게 사서 고생했는데, 당분간 조심은 하겠지. 하겠지가 아니라 해야 된다.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나의 다이어트 교향곡은 미완성으로 끝날 지 몰라도 말이다.

 

 글을 쓰며 이것저것 다른 일도 하다 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주스 한 병. 이리저리 머리를 쓰며 일을 했더니, 배가 많이 고프다. 배가 좀 들어갔을까? 뭐... 아직은... 그래도 배가 고픈 나에게 한 병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다. 저걸로 버티면 된다. 티브이에서 아무리 맛있는 걸 보여줘도 이젠 별 반응도 없다. 나에겐 소중한 한 병이 있으니까. 그걸로 됐다.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풍겨오는 찌게 냄새에 심하게 동요하고 만다. 역시 다이어트는 극한 체험이다. 먹고 싶은 걸 참는 건, 식욕이 좋은 내게는 특히 힘든 일이다.

주스! 주스!주스! 소화도 빨리 되는 것 같아...

  극한의 상황으로 자신을 일부러 내모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겠지. 나는 제 발로 들어가긴 했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나의 다이어트 따위에는 비웃음만 나오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 훨씬 많다. 영화 속에는 특히 그런 상황이 많이 나온다. 서핑하다가 상어에게 물릴 위협에 빠진 여성의 사투를 그린 영화, 언더워터를 봤다. 상어에게 먹힐 것 같은 조마조마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니, 왜 서핑을 해가지고 저런 위험에 빠지냐!"며 여주인공을 나무랐다. 결국 내 마음을 온통 불안하게 만들고 여러 사람 더 죽고 나서야 영화는 끝이 난다. 여주인공은 살았으니 해피 엔딩이라고 해야 될라나 모르겠지만. 영화 내내 엄청 고생한 여주인공도 할 말은 있다. 설마 거기에 상어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고!

영화, 언더워터. 여주인공이 다했다. 상어랑.  사진: 비즈엔터

 나도 팟캐스트를 기획하면서 이게 그렇게 극한 경험이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여주인공이 그 해변에 발을 담근 것처럼, 나도 팟캐스트 세계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디어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리고 첫방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이 나를 조여 오고 있다. 하필 이 시기에 극한 다이어트까지 병행하다니,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더 아찔하게 느껴지는 건가? 당연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는데 일이 술술 풀린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평생 해온 다이어트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는데 팟캐스트야 오죽할까.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스려본다. 토닥토닥. 그래도 주변에 따뜻한 손길들 덕분에 어찌어찌하고 있다. 사람의 소중함을 이번에 제대로 깨닫는다. 오늘 나에게 남은 주스 한 병처럼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 요즘 내가 가장 받아들여야 할 말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는 끄덕이지 못하는 말이다. 사실 팟캐스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잔잔한 나의 일상을 전하겠지 했는데 글이 몹시 진취적으로 변하고 있다. 요즘 글들은 뭔가 전투를 앞두고 있는 장군의 기상이 엿보인달까? 마음으로는 상어도 몇 마리 때려눕힐 것 같다. 그래, 일단은 즐겨보자!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니까. 진짜 그런 거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보자. 내일부터 다이어트할래 만큼 식상한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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