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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Sep 06. 2018

포르투갈 여행 3탄 - 일용할 양식 편

 9월에 들어서니 하늘만 봐도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인다. 공기도 맑고, 기온도 적당하고. 지금 걷지 않으면 언제 걷겠나 싶게 실내에만 앉아 있기엔 청춘이 아까운 느낌이다. 밖으로 이끄는 날씨에 흔쾌히 응해 시내를 여기저기 걷다 버스를 타고 반포 대교를 건넌다. 동쪽의 구름도, 서쪽의 구름도 하나같이 동화책에 나오는 삽화 같다. 버스 맨 뒷자리에서 한강을 내려다본다. 요새 비가 많이 와서 물도 많아졌고, 물살도 세다. 바다 같아. 바다... 문득 대서양으로 흐르는 포르투의 도우 강이 떠오른다. 불과 이십여 일 전만 해도 나는 동 루이스 1세 다리에서 도우 강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강의 물살처럼 빠른 속도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의 감정의 흐름이 더 둔해지기 전에 다시 포르투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다. 

우리나라 지도같은 모습의 구름, 그리고 하늘. 이곳은 서울입니다.

 포르투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은 렐루 서점과 마제스틱 카페였다.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점, 그리고 다른 곳은 가장 아름답다는 카페. 아름다운 곳을 지나치는 실례를 범할 수는 없으니 얼마나 대단한지눈으로 확인하기로 한다. 난 예의 바른 사람이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점은 그 타이틀을 증명이라도 하듯 들어갈 때부터 쉽지 않았다. 나름 일찍 간다고 갔는데, 줄이 엄청나게 길었다. 뭔가 표를 끊고 들어가는 게 관광지에 온 기분이어서 씁쓸하긴 했지만, 이렇게 돈을 받아도 사람이 북적대는데, 안 그러면 더했겠지 뭐. 

입장권은 5유로였어요.  투어 브로셔까지 받으니 관광지 같죠?
네오 고딕과 아르누보 양식이 합쳐진 렐루서점 외관... 드디어 들어가나요?

 한참 기다린 끝에 들어간 렐루 서점은 들어가는 순간 다른 세계였다. 아르데코풍의 세밀한 장식으로 꾸며진 서점 내부와 고풍스러운 갈색빛이 빛나는 서가와 중앙 계단은 바깥세상과 이곳을 확실히 구분 짓게 만든다. 입장권은 타임머신 승차권이었나 보다. 여느 서점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갑작스러운 시간 여행에 당혹감을 느끼며 중앙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계단 아래쪽에서 바라보니 마치 몸을 틀며 하늘로 올라가려는 용의 모습 같다. 휘어진 계단을 걸어올라 가는데 용이 꿈틀댈 것 같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계단 올라가면서 이렇게 설레 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 중간중간 기념 촬영하는 관광객들로 멈칫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계단 위에 있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니까 나쁘지 않다. 2층까지 올라가는 내내, 레드 카펫이 깔린 것 같은 강렬한 붉은 바닥은 이곳을 찾은 사람을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부린다. 

여길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2층에서 내려다 본 서점. 

 내가 온 곳은 서점이야, 정신 차리고 둘러보니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된 책장마다 책이 빼곡히 꽂혀 있다. 반나절은 여기서 무슨 책이 있는지 꺼내보고, 멋진 계단에 앉아 책도 좀 읽고 그러면 좋으련만, 여행자는 시간이 없네. 그러기엔 여긴 너무 복작대서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원래 이곳을 찾던 포르투 사람들은 렐루 서점을 관광객들에게 빼앗겼으니 화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안한 마음에 여기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걸로 마음을 바꾼다. 화사하게 빛나는 스테인드 글라스 천장을 뚫어지게 쳐다보니, “Decus in Labore”라는 라틴어 문구가 박혀있다. 서점의 모토인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뜻인데, 왜 하필 저 말일까? 이 서점의 주인이었던 렐루 형제는 워커홀릭이었나. 만약에 내가 렐루 형제였다면, 이걸 만드느라 진짜 애 많이 썼고, 그런 노동의 결과 이런 아름다운 서점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 아니 모두에게 자랑하기 위해 저런 말을 남겼을 것 같다. 

천장의 스테인드 글라스... 아름답죠! 

 어떤 책들이 있나 보니,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들이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온다. 페소아는 확실히 리스본의, 아니, 포르투갈의 위대한 영혼임은 확실하다. 같은 제목의 책이 정말 여러 가지 버전으로 가득한데, 아마 페소아의 책은 해석이 어려워 제각각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용으로 나온 만화책 버전도 종류가 다양하다. 포르투갈어는 어차피 모르고, 영어 버전을 구입할까 만지작 거렸는데, 한국어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글을 영어로 보면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쿨하게 포기했다. 페소아 서가 근처에 해리 포터 시리즈가 잔뜩 꽂혀있는 것을 보니 조앤 롤링이 포르투에 살면서 이곳에서 해리 포터의 영감을 받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덕분에 이 서점은 사람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책을 사면 입장료만큼 가격을 할인해 준다. 

 서점에 다녀온 것 만으로 마음의 양식이 꽉꽉 찬 것 같으니, 이제는 몸에도 진짜 양식을 줘야겠다. 마제스틱 카페로 가보자. 여기도 들어가기 전에 잠깐의 기다림이 필요해서 멈칫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마제스틱 카페는 들어가면서부터 사진을 찰칵찰칵 찍게 만드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포르투의 대표 카페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었다. 포르투 사람들보다는 관광객들로 가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음식값에 자릿세를 더한 것 같은 조금 비싼 가격에 부응하지 못하는 음식 맛 때문일까. 

카페라기보다는 화려한 호텔같은 인테리어...

 다시는 만날 일이 없는 관광객을 대하는 의례적인 친절로 무장한 카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찾아가는 길에 중앙에 위치한 그랜드 피아노를 지나친다. 피아노 위에 널브러진 촛대와 찻잔 장식품들을 보니 이제는 아무도 연주하지 않나 괜히 의심스럽다. 물론 아직도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열린다고 하니 그런 날 밤에 이곳을 찾으면 다른 느낌이 들겠지. 이 카페에 대해 단단한 오해를 풀 기회는 다음으로 넘기고, 이 피아노 옆에서 파두를 부르고, 때로는 책을 낭독하기도 하는 그런 밤을 마음속으로 상상해 본다. 이곳을 찾는 다른 사람들처럼, 조앤 롤링도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내려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주인 없는 그랜드 피아노를 괜스레 쓰다듬으며 나온다. 가장 아름다운 카페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의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이. 

카페 제일 안쪽으로 들어오면 후원같은 곳이 있다.  여기도 아름답긴하다.

 글을 쓰고 나니 포르투 생각이 간절하다. 가녀린 몸으로 파두를 열창했던 여인은 오늘 밤에도 절절하게 노래를 부르겠지. 포트 와인을 한 잔 마시면 그리움이 좀 잦아들까. 아직도 눈에 선한 포르투를 꿈에서라도 다시 찾게 잠을 청해볼까. 그야말로 여행이 남긴 즐거운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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