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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Aug 30. 2018

포르투갈 여행  2탄

 리스본에서 조금 더 머물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여행지인 포르투로 떠난다. 포르투와 리스본 중에 어디가 더 좋냐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 다 포르투였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기차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포르투로 간다고요? 과거의 아름다움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죠” 하는 택시 기사 아저씨의 말에 나의 기대가 조금 더 부풀어 오른다. 그나저나 이 아저씨는 너무 이른 아침이라 택시가 안 잡힐까 봐 택시를 전날 예약해 두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시는 건 기본, 연세가 조금 있으셔서 트렁크로 짐을 옮기기 힘드실 것 같아 우리가 하겠다고 했는데 손사래를 치시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짐을 번쩍 드신다. 원래 가려던 길이 통제돼서 결국 다른 길로 돌아가야 됐는데, 친절히 상황 설명까지 하며 미안하다고 하신다. 어느새 기차역에 도착. 포르투행 기차표는 잘 챙겼냐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거운 가방을 꺼내 놓으신다. 고마운 마음에 정말 친절하시다고 했더니만, “This is my job!” 이라며 쿨하게 웃으시네. 리스본의 마음이 이런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역시 여행은 사람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곳에 더 정이 들기도 하고, 정이 떨어지기도 하니까.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탈 수 없으니, 포르투행 주간열차라도...

 포르투에서의 숙소는 아름다운 포르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정했다. 포르투를 관통하는 도루 강과 그 유명한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동시에 포르투 시내도 같이 바라볼 수 있는 빌라 노바 드 가이아. 기차역에서 내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아... 여러 가지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어머! 와우! 진짜! 대박!” 사진으로 딱 찍어 놓은 것처럼, 그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을,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暥球淨化. 안구정화란 말이 사자성어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저런 풍경만 보고 있으면 요즘 흐릿해진 내 눈도 밝아질 것 같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는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데오필레 세리그의 작품이다. 그래서 그랬나. 모르고 봐도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철제 아치형 라인인데, 누가 설계하였는지 알고 보니 괜히 파리의 낭만까지 더해져 그렇잖아도 멋진 다리가 더 황홀해 보인다. 다리는 아래층과 위층으로 나뉘어 아래층은 차와 사람이, 위층은 전철과 사람이 다닐 수 있게 돼 있다. 아래로 건너면 강과 가까워 물빛을 보니 좋고, 위로 건너면 탁 트인 시야로 포르투를 내려다볼 수 있으니 좋다.  

도루강, 동 루이스 1세 다리. 아래 위로 여러 번 건넜다. 

 최근에 꽃할배에 나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마을에 있는 에메랄드빛 호수와 비교하면 도루 강은 좀 시시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에메랄드 색은 너무 아름다워서 동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질감을 준다. 내가 감히 가질 수 없는 존재같이 말이다. 그에 비하면 도루 강은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 강을 바라보는 누구든 잠시나마 이곳의 풍경을 소유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달까. 멋진 아치형의 다리를 건널 때도, 다이빙하러 강에 뛰어드는 호기로운 젊은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렇다. 

아침이라 차분한 느낌의 다리. 진짜 에펠탑 느낌이야...

 도루 강은 포르투갈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스페인 살라망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거쳐 국경을 지나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죽 이어져 대서양으로 빠지는, 900km에 달하는 긴 여행을 하는 강이다. 살라망카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은 것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에스테파니아가 아마데우와 이별하고 정착한 곳이라 리스본과 떨어진 포르투에서 다시 한번 영화를, 책을 떠올리게 된다. 에스테파니아 그녀도 어쩌면 자신의 조국인 포르투갈의 강줄기가 닿아있어서 살라망카에서 마음 편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1시간짜리 짧은 크루즈를 즐겼다... 이걸로는 도루 밸리는 못간다^^
위에 동영상이 잘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이런 작은 배들이 부지런히 관광객들을 태운다. 

 도루 강은 사실 포도밭으로 명성이 높다. 우리가 ‘포트와인’이라고 부르는, 발효 중에 브랜디를 첨가해 단 맛이 나는, 포르투갈 특유의 와인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와인 재배가 여기 도루 밸리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이 이처럼 개발된 것은 영국인들에 의해서다. 백년전쟁 후 프랑스와의 교역이 중단되어 보르도 와인을 예전처럼 싼값에 구하지 못하게 되자 영국의 와인상들은 포르투갈의 도루 강 깊숙한 계곡까지 찾아와 새로운 와인 산지를 개척한다. 긴 수송시간에도 버틸 수 있게 브랜디를 첨가해서 와인의 맛이 잘 상하지 않은 와인을 개발한 것이 바로 포트 와인의 시작이고, 포트라는 이름은 바로 포르투 항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서 종교의 힘에 놀라는데, 저멀리 포도밭을 찾아 떠난 영국인들을 보니 술의 힘도 상당한 것 같다. 도루 강 더 깊숙이 배를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도루 계곡으로 들어오면 계단식 포도밭이 펼쳐지는데, 강 양옆으로 포도밭이 층층이 늘어선 장관을 감상할 기회를 이번에는 놓쳤다. 다음에 다시 포르투를 찾을 핑계를 여기서 하나 만들어 놓는다. 술 좋아하는 영국인들이 술기운에 험난한 뱃길을 거쳐 포르투갈까지 온 거에 비하면 깜찍하지 뭐.  

도루 밸리. 이런 모습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 한국경제

 도루 강 계곡을 제대로 탐험하지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포르투 시내 반대편 가이아 지역에 와이너리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포르투에 묵고 있는 관광객들은 루이 1세 다리만 건너서 반대편으로 오면 얼마든지 와이너리를 방문할 수 있으니까. 뭐 멀리서 온 관광객들만 와인을 즐기겠나. 포트 와인의 생산국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술을 즐긴다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리스본에서  첫날은 저녁 늦게 도착해서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했는데, 피곤하기도 해서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주문을 받는 웨이터가 "정말 술 안 먹을 거냐고? 농담이지?" 하는 느낌 가득한 휘둥그레진 눈으로 몇 번이나 되묻는다. 잠시 후 버찌로 담근 포르투갈 전통술 진자(Ginja)를 가지고 오더니 마시라고 꾸역꾸역 권해주었을 때, 그럼 그렇지, 이게 바로 리스본 스피릿이지 싶었다.  포르투에 오니 관광객들의 흥까지 더해져 정말 여기저기서 그야말로 술판이다. 도루 강변에 노천카페들이 즐비하고, 와이너리까지 다 모여 있으니 와인도 이맛 저 맛 시음하며 돌아다닐 수 있다. 나파밸리나 보르도에서는 운전 때문에 그림의 떡이었는데,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웬만큼 다 있으니 편리하다고 표현해도 괜찮겠다. 여하튼 이곳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천국 같은 곳이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해 와이너리에서,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도루 강변에서... 나도 그 분위기에 취해서 조금 마셔 본다. 

와이너리에서 한잔... 아니 두어잔^^

 이제 9월로 접어드니, 포르투의 밤은 더 선선해졌겠지.  뜨거운 여름을 지워버리려는 듯 비가 심하게 내리긴 했지만, 그 덕분에 숨통이 트인 이곳에서 포르투의 선선함이 느껴진다. 어딘가 그리워할 곳이 생긴 건 여행의 선물이다. 그 선물의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는 게 글쓰기랑 닮은꼴 같다. 여기에 뭐가 들어 있을까 기대도 하고, 조바심도 내면서 하나하나 포장을 풀어나가는 것처럼 글도 내 마음에, 혹은 다른 세상에 뭐가 있을까 조심스럽게 한 겹 두 겹 벗겨내며 들여다보는 과정이니까. 선물을 열어 보기 직전의 부푼 기대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선물은 뭐가 들어 있든 실망하지 않기로. 

저물어가는 포르투의 하루. 그립네...

p.s. 원래 여행기는 2탄까지만 쓸 계획이었는데, 어쩌면 3탄까지 포르투갈 이야기로 채워질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장담은 못할 일이니, 어떤 글이 들어 있을지는 다음 주에 선물처럼 기대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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