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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나 Oct 05. 2018

박아나의 일상뉴스

대화란 무엇인가

 아침저녁으로 많이 쌀쌀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추웠는지 이불을 돌돌 말고 있다. 벌써 난방을 켰다는 사람도 있는데, 훗! 왠지 지금부터 그러고 싶지는 않다. 긴 겨울의 나의 동반자, 온수매트와는 지겹도록 함께 해야 하니까, 11월까지는 매트 없이 버텨보련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가을이긴 가을이다. 

유지태님에 끌려 산 온수매트... 사진:스타뉴스

 가을 타니, 봄 타니, 이야기들을 하는데, 굳이 밝히자면 나는 가을 쪽이다.  많은 문학작품에서 가을을 만물이 성숙해가는 아름다운 계절로 묘사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퇴락과 소멸의 느낌으로 훅 다가올 때가 많다.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며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보여주던 자연도 점점 그 위세가 꺾이고, 아침 여섯 시에도, 저녁 일곱 시에도 밝았던 하늘은 어둠의 기운이 가득하다. 인간으로 치면 3,40대에서 그 이후로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잊고 지냈던 시간과 세월의 속도가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시기가 내겐 가을이다. 아름다운 단풍으로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가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이내 마음이 아리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 가라앉기도 한다. 그렇다. 가을 타는 거지 뭐.

바이브 신곡, 가을 타나 봐... 사진 :osen

 마음이 허한 나는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하면서 에너지를 받는다. 어제도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가 오갔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고충을 나누기도 하고, 앞으로 도전할 일들에 대해 격려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상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서로의 여행 스타일에 대해 알아가기도 하고. 그러나 정작 대화가 필요한 상대와는 며칠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넘어간다. 서로 용기가 부족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봐 두려워서, 아니면 이미 상처를 입어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생각을 잘 납득시킬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그저 마음만 답답할 뿐.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대화가 필요했던 자두와 강두. 거의 10년간을 연락두절 상태로 보냈다고 한다. 사정이 있었겠지만... 사진:파이낸셜 뉴스

 대화란 무엇인가. 물론 대화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마다 ‘대화’라는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SNS를 통해 지인들에게 물어보았다. 공감이다, 서로의 생각의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예술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다. 대화란 '동아줄 엮기'라는 굉장히 신선한 답도 받았다. '같은 힘의 세기, 같은 굵기로 이어지는 관계를 만드는 힘'이라는 보충 설명과 함께. 아마 한 사람의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닌, 두 사람이 같은 크기로 마음을 오가는 과정이라는 뜻이겠지. 

대화란 무엇인가. 화제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 를 보고 나니 자꾸 정체성을 묻고 싶어진다. 

 예전에는 대화의 목적 자체가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처음 그녀를, 그를 만났을 때가 기억나는가.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고, 입을 열어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었던 그때. 처음 만났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서로를 알기 위한 탐색으로 대화에 들어간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일을 같이 할 사람들이니까 윗사람들과, 동료들과 관계를 설정해나가는 일에 대화는 필요했다. 저 사람의 성향은 어떤지, 나의 조력자가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서로 트러블이 없을지. 대화로 파악할 것들이 많았다. 


 세월이 흘러 가족 안에서도, 사회에서도, 더 이상 확장할 관계나 인맥은 없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보다는, 그동안의 인연을 유지해 나가는 쪽이니 그에 맞춰 대화의 방향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하는데 대화의 초점을 더 두었다면, 이제는 서로 힘들 때 고민을 나누고 다독이는 식의 대화, 공감이 주목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공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난 너에게 공감하고 있소" 하는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는가. 

영화 인턴에서 따뜻한 공감 능력을 보여주는 인턴 할아버지, 로버트 드 니로. 사진 :헤럴드경제

 어렵지 않다.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게 공감이다. 여러분도 언젠가부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친구를 더 찾고 있지 않은가. 화려한 입담으로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친구와의 대화도 좋지만,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친구를 더 만나고 싶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중간중간에 너를 이해한다는 그 눈빛만으로도 이미 이 대화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나 힘들어..." 하는데,  "남들도 다 그래, 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차가운 위로는 원치 않는다. "그래 힘들었겠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 따뜻한 위로라면, 그런 친구라면, 내 머릿속을 지끈지끈하게 만들던 고민을 순식간에 비둘기로 만들어 날려버리는 마술도 가능하다. 

나우유씨미2  中 비둘기 마술. 사진:경희정원한의원 블로그

 이렇게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나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친구인가. 씁쓸하게도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유쾌한 이야기로 분위기를 살려주고, 이야기가 끊겨 공백이 생기면 방송사고 같아, 끊임없이 이야깃거리를 던져주고. 때론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순간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핑계 같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적 특성이 잘못 발휘된 것인지 이야기를 주도하려고 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말을 멋있게, 재미나게, 잘 포장할 때 희열을 느꼈던 적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나 혼자 대화를 즐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함께 동아줄을 엮어야 되는데,  혼자서 새끼줄을 꼬고 있었을 지도.

나 혼자 살아도 나 혼자 대화하진 않잖아. 사진 :NEWS 24

 대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나는 누구인지, 내 정체성을 되묻게 된다. 가뜩이나 가을 타는 내게, 비가 쏟아지는 오늘의 날씨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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