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도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지앵에게 언제나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그곳은, 파리를 거쳐간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갔던, 아니 가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알고는 있었던 그곳은 이제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첨탑과 지붕은 잃었고, 성당 안에 있던 귀한 유물들은 많이 지켜냈다. 그중에서 노트르담의 파이프 오르간도 일단은 무사한 것으로 보인다.
노트르담의 오르간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 아니 프랑스 오르간 문화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7800개의 파이프와 다섯 개의 56건의 건반과 한 개의 32건의 페달을 갖춘 웅장한 이 오르간 앞에 앉아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오르가니스트에게 무척 영예로운 일일 테고, 유명한 연주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노트르담의 전속 오르가니스트였던 루이 비에른은 시각 장애를 딛고 오르가니스트로서, 작곡가로서 명성을 얻은 사람이다. 1900년부터 1937년까지 꽤 긴 시간을 노트르담에서 연주했던 그에게 이 오르간은 엄청난 의미를 가졌을 것은 짐작 가능하다. 신도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을까. 노트르담에서 열린 연주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그가 헌신했고 사랑했던 이 오르간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비에른처럼 여러 오르가니스트가 오르간보다 먼저 떠났지만, 노트르담의 오르간은 두 번의 전쟁에서 살아남고, 이번 화재에서도 그랬다.
노트르담 성당 안을 들어간 것은 아주 예전 일이라 이 오르간에 대한 기억은 사실 가물가물하다. 작년에 파리에 짧게 머물렀을 때 노트르담 성당 앞을 지났지만 늘 그렇듯이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 이제 와서 ‘이럴 줄 알았으면’이라고 말하는 것도 미안하긴 하지만, 들어가서 성당 내부를 둘러볼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네. 유럽의 성당을 찾으면 가끔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는 그 성당의 역사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주지만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단 성당 안에 들어서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높은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에 홀리고, 성당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조각상들과 커다란 십자가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게 된다. 저 멀리 과거의 소리 같기도 하고, 저 멀리 하늘의 소리 같기도 한 오르간을 실제로 연주하는 기분은 어떨까.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오르간 소리보다 우리에게 친밀한 것은 풍금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이랑 풍금은 분명 다른 악기지만, 그래도 피아노보다는 풍금이 오르간과 훨씬 닮아 있다. 풍금 하면 우리 때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이 누구나 떠오를 것이다. 특히 내게는 더 각별했던 풍금과의 인연. 새 학기 첫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늘 던지는 질문이 있다.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 그럴 때마다 나는 무슨 자신감인지 손을 번쩍 들었다. 팔이 길어 눈에 띈 덕분인지 교실 앞 풍금은 내 차지였다. 음악 시간에 반 친구들이 노래를 부를 때 반주를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워 음악시간이 기다려졌다. 한 번은 옆반에 풍금 치는 아이가 결석해서 대타로 가서 쳤던 기억도 있다. 선생님은 내게 부탁하며 미안해했지만, 나는 좋았다. 뭔가 대단한 연주라도 하는 사람 같아서 으쓱했달까.
이렇게 누군가 앞에서 풍금을, 아니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풍금이 교실에서 사라진 것처럼 추억 속으로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모차르트 소나타 11번을 완벽히 끝내기 위해 연습을 집중적으로 열심히 했더니, 네 번째 손가락에 무리가 가서 단단하게 부었다. 연습을 강행하려 했지만 아프기도 하고 엄청 거슬리기도 해서 결국 연습을 중단하고 며칠 쉬었다. 아니 이렇게 허약한 손가락이라니. 피아니스트에게 손가락이 중요하건 너무 당연한데, 내게도 중요했구나.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연습을 며칠 못하니 불안하긴 하다.
며칠 쉬어서 걱정했는데,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날, 의외로 나쁘지 않았던 건가. 선생님은 드디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전했다. 11번은 이제 잠시 잊으라는. 피아노 한곡을 끝냈을 때는 어떤 세리모니를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아쉽기도 하다. 다시 만나면 지금만큼 잘 칠 수 있을까. 그게 두려워 11번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아. 그나저나 두려운 건 두려운 거고, 이제 새로운 곡을 만나야 하는데, 마음이 오락가락하다. 내 수준에 맞춰 연주하기 까다롭지 않은 곡들을 선곡할 것인가, 아니면 좀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어려운 곡들에 도전할 것인가. 쇼팽의 발라드,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오고 있다.
일단 쇼팽의 발라드 1번의 악보를 보니 눈이 어지럽다.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정신없는 이 흐름을 견뎌낼 실력이 나에게 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 슈필만처럼 독일군 장교를 무장해제시킬 만큼 감동시킬 능력은 어떻고. 평온하게 시작하다 돌변하는 2번의 폭풍 같은 열정은 어떤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잔잔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3번과 4번 역시 말할 것도 없고. 근데 3번은 진짜 힘들 것 같다. 물론 나머지도 다 어렵지만.
살면서 내가 독하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였는지 묻는다면 “이제부터 독해져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쇼팽의 발라드를 선택한 지금 이 순간요.”라고 답하려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머니가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게 독한 거죠.”라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는데, 이렇게 어려운 곡을 끝까지 도전했다는 것만으로 1년 뒤에는 나도 좀 독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나의 숨겨진 독기가 이번에는 부디 발휘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나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