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서'가 아닌 '불안해서'

by ORANGe TANGo

<불안의 책>을 읽었다. 이 책 어디에서도 전혀 불안감을 느낄 수 없었다. 불안보다는 불행의 책이라고 제목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기준은 확고했고, 불안이 주는 삶의 흔들림 따윈 없었다.


숙소 테라스에 앉아 한여름에 바라보는 설산은 분명 아이러니다. 현실에서 보는 몽상 같다. 나와 설산과의 거리는 현실과 꿈과의 괴리감만큼이나 멀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가까울 수도 있다. 현실의 뒷문은 언제나 열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소설을 한편 써보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첫 문장은 이렇다. "남자가 면도날로 자신의 눈을 긋는다."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나온 장면이다. 그리고 뒷문장은 이렇다. "시력을 잃은 남자가 달을 본다." 달은 여전히 꿈과 연결되어 있다.


나 역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싶다. 그러나 행복은 마약과 같기에 그 느낌은 잠깐이다. 무엇보다 비싸다. 언제나 거렁뱅이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나는 그 행복을 아주 가끔 맛볼 수 있다. 행복은 달콤하다. 그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기에 매번 갈망한다.


국경의 밤은 고요하다. 국경에는 시퍼런 눈을 한 경비병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선 자를 경계한다. 경비병이 어깨에 맨 총은 언제든 고요을 깨부술 준비가 되어있다. 난 경계를 넘은 한 여자의 서사를 알고 있다. 그 서사엔 국경의 밤처럼 빛이 필요치 않다.


문맹이 없는 시절에 태어난 걸 감사해야 한다. 누구나 일기를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일기를 쓰기 위해 문장 연습을 해야 한다. 연습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문장의 방향을 알 수 없다. 문장의 방향은 중요하다.


헛소리는 일찍 잠들어 생긴 새벽의 참사다. 그것은 잠꼬대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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