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니 에르펜베크
리뷰
모든 저녁이 저물 때
“신이 주셨고, 신이 거두어갔다. 할머니는 구덩이 옆에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신은 주신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뿐 아니라 아이가 자라서 될 미래의 모습까지도 전부 저 아래에, 땅속에 묻혀 있다. 흙 세 줌 그리고 등에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어린 여자아기가 땅속에 묻혀 있다. 아이가 점점 멀어지는 동안, 책가방은 계속 아래위로 춤을 추며 흔들린다.” 11p
도입부는 확실히 멋집니다. 확실히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도입이라고 생각이 들며, 시작부터 등장하는 아이의 죽음이 어떤 경건한 느낌까지 전달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총 5권으로 되어 있는 이 소설은(5부가 아니라 5권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특이한 소설적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여자는 매 권에서 죽고 되살아나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1권에서 죽은 아기는 다시 살아나 2권에서 소녀의 모습으로 성장해 다른 배경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게 됩니다. 다시 2권의 소녀는 죽게 되지만, 3권에서 다시 살아나 좀더 나이든 여인의 모습으로 2권과 마찬가지로 다른 배경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펼치며, 그것은 5권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90살이 된 이 여인은 죽게 되고, 다시 살아나지 않게 되면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독특한 구조를 지닌 소설이지만, 그래서 형식의 새로움을 어느 정도 느낄 수는 있지만, 너무나 분절된 이야기의 구조가 주는 혼란스러움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한 소설이 이루고 있는 파장은 분절된 이야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 이런 점은 많이 아쉬운 소설이었습니다.
시대가 주는 암울한 상황 역시 이 소설의 무게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들이 나오고 그 배경에서 죽음을 맞아야 하는 한 여인의 비극과 상처 역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잔잔함 속에서 차분하게 읊조리는 듯한 문체는 소설 읽는 맛을 더해주고 있어 만족스런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