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흉터가 아니다, 그에겐 그녀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흔적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걱정'이라는 단어와 친밀한 사람이다. 타인에게 일상적인 말을 하면서도 '이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한다. 덕분에 상대방의 답변을 듣는 것에도 매번 조심스럽고 초조하다. 차츰 스스로 '나는 답답한 사람'이라고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과의 대화도, 누군가의 시선도 의식됐다. 그는 항상 이런 자신이 답답했다. 매일 그렇게 자신의 '단점'을 바라보는 일상에 익숙해져 갔다.
"일반적인 사람이 상대방에게 100%의 힘으로 몰두하고 신경 쓴다면, 너는 두 배 이상의 힘으로 몰두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즉, 민감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평소 적잖게 걷고 또 걸으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지인이 그를 평가하는 한마디였다. 생각이 길어졌다. 내가 인식했던 이 답답함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섬세함으로 표현해주는 지인이 고마웠다. ‘걱정’이기도 했지만 곧 ‘배려’이기도 했으니까.
그는 자신을 더 알고 싶었다. 그때마다 매번 물음표를 던졌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어떤 때에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것에 가슴이 뛰는 걸까? 가면을 벗은 내 진정한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질문은 이어졌지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해 익숙한 답답함이 몰려왔다. 지금까진 매번 이런 상황을 피해왔다. 두려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도 외면한다면 나는 절대로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보자고 결심했다.
그때부터였다.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부족하지만 글로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계속, 노력했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언제 행복한지 알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가끔은 다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같은 고민을 했었던 지인과 대화를 하며 자신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힘을 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그에게 문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선명해졌다.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그에게 있어 그녀는 그리운 사람이었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었다.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그리웠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를 향한 감정은,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무엇이든 처음이었다. 덕분에 어색했고, 낯선 상황에 방황했고, 서툴렀다. 그녀 앞에서 만큼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고, 더 멋진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만큼 행동도, 말투도, 표정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돌아보면 항상 아쉽고 속상했다.
그녀는 잘 웃고, 잘 울었다. 아직 상처도 남아 있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상처를 묵묵히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아프고 싶었다. 그녀의 웃음은, 마치 감기와 같아 보고 있자면 그도 모르게 전염되어 웃음을 띄게 만들었다. 반면, 그녀의 눈물은, 그에게는 장마였다. 알아도 대처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장마였다.
그녀는 자주 그에게 '미안하다'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그였지만, 그 말이 심장을 찌르듯이 다가오리라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팠다. 그래서 '고맙다' 해달라고 했다. 그래 놓고선 정작 그는 둘을 섞어서 말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녀를 미안하게 만든, 더 힘들게 만든 자신 때문에. 그리고 고마웠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그 '자신'을 알게 해줘서.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내려놓을게.'라는 말 대신 '서 있을게.'라고 했다. 그리곤 후회했다. 결국 그 말이 그녀를 더 힘들게 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러나 이미 뿌리를 내린 것 마냥, 물러서려 발을 떼는 것이 어려웠다. 순간순간 계속 그리움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아쉬웠다. 그녀 앞에서 여전히 그의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자신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말하고 싶은 문장을 몇 번씩 썼다 지웠다. 망설였다. 반대로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일상에 그녀가 나타나지 않는 일상은 없다. 그에게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과 그녀가 남긴 흔적들은 그리움이 될 것이다. 그녀는 이것들을 흉터라고 미안해하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흉터이자 흔적이다. 흉터들이 낫고서도 언제나 그녀를 떠올릴 수 있는, 고마운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리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