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3 우린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by 옥상 소설가

" 저녁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맛집 음식보다 정갈하고 깔끔하니 맛있네요. 속도 더부룩하지 않고요. "

" 찬이 너무 변변치 않아서. 시골이라 항상 된장이랑 나물 김치를 많이 먹어서

우리야 익숙하지만 서울에서 오신 귀한 손님들한테 이렇게 대접을 해서

너무 민망하네요.

속이 헛헛하지 않을까 걱정돼요. 저녁에 출출하시면 어쩌나 "

" 제육볶음 정말 맛있었어요. 그렇지? 정 비서 "
" 네, 저희 사내 식당 베스트 메튜가 제육볶음인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맛있던 걸요.

쌈 채소까지 싱싱하니 좋고 정말 잘 먹었습니다. "


" 동빈 어머님

그럼 이 장들이랑 반찬들 다 만들어 드시는 거예요? "

" 네, 시골은 다 들 그렇죠.

저희 친정이 종갓집이어서 제사며 차례를

한 달에 많을 때는 세 번씩도 차렸어요.

엄마를 도와드리면서 제가 음식을 많이 해봐서

동빈 아빠가 갑자기 돌아갔을 때 어떻게 먹고 사나 막막했지만

그래도 해 볼만한 게 식당이더라고요.

이제는 제법 소문도 나고 맛도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렇게 먹고살았네요. "


" 언니, 우리 엄마 정말 요리 잘하지?

나 소풍 갈 때 싸주는 김밥도 정말 맛있어.

선생님들 친구들 다 우리 엄마가 싸주시는 음식들 좋아하세요.

가끔 우리 엄마가 반 친구들하고 나눠 먹으라고

떡이랑 간식도 해서 학교에 보내주세요. "

" 바쁘실 텐데. 유빈이 친구들까지 챙기시는 거예요? "

" 시골이라 아이들, 선생님들도 적고 다 한 동네 살고 이웃들이에요.

선생님들이 애들 챙기느라 고생도 많으세요.

밥 정이라는 게 무섭죠.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다 보면 싸우더라도 오래가지 않아요.

애들끼리 같이 나눠먹고 하다 보면 정이 들어서 말이에요. "

" 맞아. 엄마.

우리는 자주 싸우기는 해도 금방 화해하고 다시 놀아.

우리 학교에는 말썽장이는 있어도 나쁜 친구들은 없어. "


모두들 유빈이의 말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 아주머니,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어요.

저희 아주머니도 요리를 잘하시는데 아주머니 요리는 깔끔하니 참 좋네요. "

" 아휴~ 연우가 잘 먹어주니 참 고맙네. "


투박한 뚝배기에 김이 폴폴 나는 청국장

나물 세 접시와 매콤한 제육볶음 쌈채소와 쌈장 콩자반 멸치볶음 메추리알 조림

반찬들은 조금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동그란 나무상에는 빈 접시와 뚝배기 밥그릇들과 수저만 남아있었다.

모두들 마루에 앉아 동빈 어머니가 차린 시골 밥상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허기진 자식들처럼 모조리 비워냈다.

유빈이 동빈의 어깨를 다독이며


" 오빠 설거지하기 편하겠다. 반찬이 하나도 안 남아서 " 말하자

모두들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한 참 동안 웃다

동빈은 상을 부엌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 엄마. 제가 치울게요. 이제 쉬세요. "

" 아니야, 엄마가 설거지할 테니 너는 손님들 이불 자리나 봐 드려. "

" 아니에요. 아직 한 참이나 남았는데요.

저랑 동빈 오빠가 설거지랑 정리할 테니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랑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유빈이도 같이 다녀올래? "

" 아니, 난 언니랑 있을래. 엄마 아줌마랑 갔다 와. "

" 사모님, 다녀오세요.

제가 아가씨랑 동빈 학생이랑 같이 치울게요. "




유빈은 연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연우는 그런 유빈이 귀여워 계속 머리를 쓰다듬다

잃어버린 딸 선아가 떠올라 유빈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지금 살아있다면 선아는 초등학교 1학년

작은 키에 체구 갈색 머리칼에 검은 눈동자 통통한 볼을 가진 선아

선아가 살아있다면 유빈이를 닮았을 것만 같았다.


' 선아야. 선아야. 내 딸 선아야. '


유빈을 안고 있는 연우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본 동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우를 바라봤다.


' 연우는 왜 유빈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걸까? '


동빈은 눈물을 흘리는 연우가 궁금하면서도

이유를 물어보는 것은 상처를 떠올리게 할 것 같아 스치듯 지나갔다.

그런 연우가 안쓰러워 자꾸만 눈길이 가면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동빈의 마음은 복잡해져만 갔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감정들


' 과연 이 감정들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


시골 소년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동빈은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워졌다.



' 우리는 분명 오늘 처음 만났는데

너는 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람처럼 나에게

익숙한 거니?

왜 너를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거니?

내가 너에게 느끼는 이 마음들이 무엇인지

너는 알고 있니?

그렇다면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니? '







연우와 동빈 엄마는 달이 어두운 구름 속을 지나 듯 천천히 복숭아밭을 걸어가고 있었다.


" 호텔에서 주무시는 게 훨씬 편하실 텐데.

방이 좁아서 불편하지 않으실지 "

" 아니에요. 괜찮아요.

연우가 유빈이랑 헤어지는 게 싫은가 봐요.

아이를 그렇게 예뻐하지는 않았는데 연우가 유빈이를

정말 귀여워하네요. "

" 유빈이도 연우를 잘 따르는 것 같아요.

언니가 있었으면 바라긴 했지만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인데

저렇게 잘 따르는 걸 보니 신기하네요.

주무시다가 불편하시면 호텔로 가셔도 돼요.

여기서 가까우니까요. "


" 하룻밤인데요. 뭘 "

막막하셨겠어요. 갑자기 남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면 말이에요. "

" 슬플 겨를도 없었어요.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죠.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

나보다 아빠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짠해서 맘이 아팠죠.

동빈이가 어린데도 아들이니 의지가 되더라고요.

유빈이한테 아빠 노릇도 하려고 애쓰고요.

어른이에요. 우리 동빈이가 "

" 동빈 학생이 이제 다 컸는데요.

대학교 들어가면 금방 졸업해요.

직장에 들어가면 더 이상 엄마 고생 안 하게

잘 살피고 살 아이네요. 유빈이도 그럴 거고.

제가 연우한테 동생을 꼭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몸이 약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했어요.

그게 제일 아쉽고 연우한테 미안하고

아프고 수시로 병원에 입원해서 연우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많이 외로웠을 거예요. 그래서 유빈이를 동생처럼 귀여워하고

동빈 학생을 오빠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기쁘고요. "


" 그러셨구나.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셨겠어요. "

" 어느 날부터 연우가 제 생각을 많이 하더라고요.

마냥 어린아이였는데 하룻밤 새에 무슨 꿈을 꿨는지

속이 꽉 차서는.

연우가 매일 아침마다 절 데리고 산책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딸이 가자고 하는 데 안 갈 수도 없고 같이 다니면서 조금씩 좋아지더라고요.

요즘은 몸이 많이 건강해져서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너무 좋아요. "

" 연우가 엄마를 챙기는 마음이 참 기특하네요.

어린 나이에 "

" 공기도 냄새도 참 좋네요. 이 동네는 "

" 네, 자주 놀러 오세요. 제가 맛있는 밥 해 드릴게요. "

" 그러게요. 배 고플 때마다 생각나겠어요. "




유빈은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보자 그대로 달려가서는 자랑스레 말했다.


" 엄마, 내가 언니랑 아줌마 이불 다 펴드렸어. "

" 그래, 우리 유빈이 잘했다.

얼른 씻고 이제 잘 준비해야지. "

" 아니야. 나 연우 언니랑 더 놀다가 잘 거야. "

" 피곤하실 텐데 주무셔야 해. 손님들은 "

" 아니에요. 공기가 좋아서인지 하나도 안 피곤해요.

엄마, 일찍 잘래? "
" 아니, 오랜만에 오니 참 좋다.

달도 보고 공기도 마시면서 오늘은 좀 늦게 자고 싶은데

그래도 피곤할 것 같지 않아.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할 것 같은데 "

" 그럼 좀 기다리세요. 제가 복숭아 좀 닦아 올 테니

복숭아가 싱싱하니 참 맛있어요. "



모두들 아삭아삭 복숭아를 먹다 까만 하늘의 별과 달을 보고 있었다.


" 아주머니, 혹시 서울에 다 같이 내려 올 생각 없으세요? "
" 응? 그게 무슨? 갑자기 서울은 왜? "

" 동빈 오빠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

유빈이가 집에 혼자 있어야 할 텐데.

너무 어려요. 유빈이 혼자 있기는

아주머니도 계속 일을 하셔야 할 텐데 말이에요.

유빈이도 공부를 계속하려면 서울에서 다니는 게 좋을 텐데

이번 기회에 다 같이 서울로 이사를 오시는 게 어떠세요?

갑자기 이런 말 드려서 놀라실 테지만

제가 생각해보니 그래서요. "


" 그러네.

동빈 학생이 서울로 오면 유빈이가 혼자되겠구나. "

" 아, 아니에요. 전 서울에 갈 생각 없어요. "

갑자기 동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 저는 집에서 대학교를 다닐 거예요.

좀 멀긴 하지만 국립대학교도 있고 제 성적이면 장학금도 받고 입학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럼 제가 대학교를 다니면서 유빈이를 챙길 수 있어요.

엄마가 식당일도 계속하실 수 있고요.

전 서울에 갈 생각 없어요. 고향이 좋기도 하고요. "


" 동빈 학생. 물론 여기 대학교도 좋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는 서울에서 나오는 게 좋아.

그래야 취업도 쉽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어.

성적이 이렇게 좋은데 일부러 낮춰서 갈 필요는 없잖아.

당장 앞 일만 보면 안 돼. 장래를 생각하면

유빈이 어머님이랑은 떨어져 지내도 서울에 가는 게 좋아.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거야. "


" 동빈아. 넌 걱정 말고 1학기 마치면 서울로 가라.

지금은 공부만 하고 네가 좋은 성적으로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서 지금 받은 이 도움들은 갚으면 되지.

엄마랑 유빈이가 네 장래에 짐이 되면 안 돼.

엄마 말 들어. 동빈아. "


" 엄마,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오빠랑 유빈이 아주머니 모두 서울로 올 수 있는 방법 말이야. "

" 어? 그게 뭔데? "


" 아주머니가 우리 사내 식당에 취업을 하시는 게 어때?

아주머님 음식 솜씨가 이렇게 좋은데

우리 직원들 맛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잖아.

그럼 아주머님 일자리도 생기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택을 신청해서 사는 것도 방법이고

최 기사님 곧 퇴사하신다고 했으니 별채에 사셔도 되지 않을까?

방이 두 개라 좀 좁긴 해도 서울에서 집 마련할 때까지

우리 집 별채에서 살면 어때? "

" 어, 그래 맞다.

최 기사님 이번에 신혼집 얻어서 나간다고 했으니

별채가 비는구나. 잘됐다. 잘 됐어.

내 그 생각을 못했네.

동빈 어머님

어떠세요? 저는 연우 생각이 참 좋은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럼 모두들 떨어져서 살지 않아도 되는데 "


" 네? 아니에요. 그건 너무 염치가 없어요.

동빈아. 그냥 너만 가라. 우리 걱정은 말고. "

" 아니에요. 걱정해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저희가 그 정도는 해결하면서 살 수 있어요. "

" 엄마 오빠, 우리 가자.

서울로 가자. 나 연우 언니랑 연우 아줌마랑 다 같이 서울에 가서 살고 싶은데. "


" 동빈 어머님

이건 신세를 지는 게 아니고 서로 돕고 사는 거예요.

저희 회사 식당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주시고

서울에서 집 장만하실 때까지만 저희 집이든 사택이든 사시면 돼요.

회사에서는 지방이 고향인 직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사택이 있어요.

유빈이 동빈이 모두 서울에서 공부하고

동빈이가 연우 오빠로

유빈이가 연우 동생으로

동빈 어머님이 우리 연우 이모처럼

제가 몸이 안 좋을 때나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우리 연우를 좀 돌봐주시면

제가 몸이 아프더라도 걱정이 덜 할 것 같아요.

제 부탁을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


"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너무 염치가 없고 신세만 지는 것 같아서.

그럼 며칠만 좀 시간을 주세요.

우리 아이들이랑 의논을 해 볼게요. "

" 네, 그러세요.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

" 네, 아주머니

서울에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 말이에요.

동빈 오빠도 잘 생각해봐요.

유빈아, 유빈이는 언니 따라 서울로 가는 게 좋지? "


" 응,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랑 오빠랑 다 데리고 서울로 갈게요. "

" 어휴~ 유빈아 , 너는 좀 조용히 있자. "

" 싫어. 오빠나 조용히 있어. 나는 언니 따라 서울 갈 거야. "

" 그래, 가자 유빈아.

언니가 유빈이 오면 매일 학교에도 데려다주고 공부도 가르쳐 주고.

동생처럼 잘해줄게. "

" 그렇게만 되면 정말 좋겠어요. "


윤희는 미안해하는 동빈의 엄마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어 놓았다.

동빈의 엄마는 윤희를 미소로 바라봤다.




모두들 잠자리에 들어 집안은 고요했고

연우는 엄마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조용히 방문을 열어 마당으로 나왔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풀이 여기저기서 눕는 소리가 들려왔다.

풀냄새 흙냄새가 사방에서 연하게 풍겨져 왔다.


' 동빈 오빠가 경주에 같이 오자고 한 이유가 이었구나.

아주머니도 유빈이도 모두들 좋은 사람이야.

만약 결혼 전에

그때 동빈과 함께 내려왔더라면 우리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


연우는 지나버린 과거가 아쉽고 과거의 동빈이 그리워졌다.


" 안 자고 뭐해? 늦었는데. "

" 어? 오빠, 안 자고 있었어요? "

" 응, 잠이 안 오네. "

" 나도 잠이 안 와서요. 바람 좀 쐬다 들어가려고요. "

" 그래, 얼른 들어가서 자. 내일 서울로 가야 하는데. "


갑자기 동빈은 방으로 들어가는 연우를 불러 세웠다.


" 우리 한 번도 만난 적 없지? 그렇지? 연우야

그런데 왜 나는 네 이름이 이렇게나 익숙하고

네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


"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었던 사람이에요. "


연우는 동빈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EP-32 다시 찾은 동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