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40 가해자 피해자 모두 없다

by 옥상 소설가

말자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망연자실했고

최 이사는 신애의 영정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지윤 지석 강우 화란

나란히 서 있던 네 사람 모두 땅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애의 죽음에 대해선 모두들 말하지 않기로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은 신애의 죽음에 방관자이며 가해자이기도 했다.

신애가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 뒀으니


말자는 점점 말수를 잃어갔고

최 이사는 가끔씩 심장이 저려왔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지윤, 지석, 강우, 화란 이 넷뿐이었다.

신애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네 명에게서 지워졌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던 주 사장은 신애의 죽음이 자살이란 결론이 나자

신애의 장례식장에는 들리지도 않고 가게로 가서 술만 마셔댔다.


‘ 독한 것, 그렇게 죽어 버리다니

아기만 낳으면 놓아주려고 했는데

그 아비한테 돈만 받으면 내버려 두려고 했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어.

지 목숨을 스스로 그렇게 끊어 버리다니 ‘


주 사장은 일주일 동안 가게에서 양주만 퍼마셔댔다.

연우와 엄마, 아빠, 동빈 모두 신애의 장례식장으로 가서

말자와 최 이사를 위로했지만 누구 하나 이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연우는 주차장으로 나가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화란에게 걸어가더니


“ 신애는 내 딸 선아처럼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지.

다음은 너랑 강우 차례야.

너희는 내 아들 선우처럼 불에 타 죽게 될 거야.

기대해. 춤 추는 화염에 휩싸여서 죽게 해 줄 테니

목이 부러지고 모든 뼈들이 부러져 그 뼈들이 장기를 찔러 죽은 신애

그나마 순식간에 죽어서 다행이지.

너랑 강우는 순간에 죽은 신애를 부러워하게 될 거야.

너희들은 가장 고통스럽게 죽을 테니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그걸 인과응보라고 하지.

하하하 “


연우는 화란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씩~ 웃으며 뒤돌아갔다.

자신에게 악담을 퍼붓는 연우가 소름 끼치면서도 어이가 없어

화란은 웃음이 나왔다.


‘ 뭐야? 저거 미친 거야?

지가 딸이 어딨고, 아들은 어딨어? 신애처럼 정신이 나갔나? ‘




“ 화란아, 회사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

“ 이제 들어가야지. ”

“ 넌 어때? 괜찮아? ”

“ 나야 뭐. 아버지랑 어머니가 걱정이지. ”

“ 너무 자책하지 마. 신애가 그렇게 죽은 건 그 애 운명인 거야.

우리 잘못은 하나도 없어. 재수가 없었던 거야. 신애는 “

“ 그런 걸까? 신애의 죽음에 우리 책임은 하나도 없는 걸까? ”


갑자기 화란이 강우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 최 강우, 너 정신 차려.

신애가 죽은 건 그냥 하나의 사건이야.

단지 신애는 조금 일찍 죽었을 뿐이야.

그 애의 죽음에 우리 잘못은 없어.

그러니 사치스러운 죄책감 따위는 갖지 말아.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고

너, 연우 아버지 회사 가지지 않을 거야? 나랑 한 약속은 다 잊었어?

다 차지하고 나면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로 했잖아.

힘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우리는 다시 비참한 생활로 돌아가야 해.

정신 차려. 최 강우 “


“ 알았어. 화란아.

아까 연우가 너한테 뭐라고 하는 거 같던데. 뭐라는 거야? “

“ 아니야. 신경 쓰지 말아.

연우가 정신이 나갔는지 자기 아들, 딸 얘기를 하더라.

지가 무슨 아기를 낳았다고, 자다가 꿈을 꿨는지

하긴 쟤가 넋이 나가야 우리가 처리하기 쉽지. “



어느 순간부터 화란은 강우를 꼭두각시처럼 조정하려 했다.

강우의 모든 일에 사람에 대해 참견을 하고 시키는 대로 하라 했다.

화란은 강우에 관한 것이라면 모두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넥타이처럼 갑갑하게 화란은 강우를 조여왔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강우는 화란을 피해 숨을 편안히 쉬고 싶어 졌다.

화란 모르게 어디론가 숨고 싶어졌다.



“ 오빠, 날 믿어야 해요. ”

“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야? 연우야 ”

“ 나 강우 오빠랑 약혼을 할 거예요.

말 뿐인 약혼이지, 정말 결혼을 할 생각은 없어요.

결혼도 하지 않을 거구요.

이건 내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예요. 걱정하지 말고 날 믿고 기다려줘요. “

“ 안 돼. 그게 말이 돼? 절대 안 돼. ”

“ 나 지금 오빠한테 말하는 건 허락을 구하는 거 아니에요.

알려주는 거예요.

앞으로 내가 할 일이니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니까

믿어줘요. 내 말을. 내 마음은 오직 오빠한테만 있어요. “


“ 그러니까 왜 네가 강우랑 약혼을 해야 하는데? 왜? 왜?

도저히 이해가 안가. “

“ 전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을

강우, 화란이란 여자 둘이서 모두 뺏어가 버렸어요.

반드시 그 사람들도 당해야 해요.

난 지금 그걸 하려고 하는 거예요. “


“ 너한테서 뺏어간 것들이 뭔데? 그 사람들이 누군데? ”

“ 말할 수 없어요. 내가 말한다 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

뺏어간 게 아니에요. 다 없애버렸어요.

그 아이들을 내가 아끼던 사람들을 모두 죽게 했으니까요. “

“ 그게 누구야? 그 아이들은 누군데? “

“ 제발, 내 말을 믿고 아무 말 말고 기다려줘요.

그럴 수 없다면 헤어져요.

오빠가 반대한다고 해서 멈추지는 않을 거니까 ”


“ 연우 너 정말 이럴 거야?

강우랑 약혼을 하겠다는 널 그냥 두라고?

너는 너는 그럴 수 있니?

내가 다른 여자랑 약혼을 한다고 해도 말이야? “

“ 나는 믿을 수 있어요.

오빠가 만약 그래야 한다고 하면

그런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다리겠어요.

난 그런 믿음이 있는데 오빠는 없나 봐요?

그렇다면 나를 믿을 수 없다면

이런 나를 기다려 줄 수 없다면 헤어져야 해요.

헤어져요. 우리 “

“ 너 진짜, 이럴 거야? ”

“ 헤어져요. 그러는 게 아무래도 좋겠어요. ”


연우는 그네에서 일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동빈이 따라와 연우를 안고 있었다.


“ 알았어. 알았어. 연우야. 기다릴게.

기다릴 테니까 헤어지잔 말은 하지 말아. 다시는

알았어. 네가 하자는 데로 다 할 테니까

절대로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말아. “

“ 아니에요. 우리 그냥 헤어지는 게 좋겠어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우리 헤어져요. 오빠

모두들 우리가 사귀는 건 모르고 있으니 말할 필요도 없어요.

이제 우리 헤어진 거예요. “


연우는 동빈을 밀어내고 집으로 향했다.

동빈은 털썩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대로 가만히 땅처럼 나무처럼 고요히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연우는 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할 얘기가 있는 데

오늘 시간 돼요? 내가 회사 앞으로 갈게요. “

“ 그래, 그럼 6시쯤 회사 앞 카페로 와. 바로 나갈게. “


강우는 연우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깜짝 놀랐다.

번호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연우가 강우에게 전화를 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강우는 넥타이를 매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화란이에게 말을 해야 하나? 아니 아직 그럴 필요는 없지.

연우가 만나자고 하는 이유를 모르니까 ’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강우는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 연우가 갑자기 왜 보자고 했을까? 무슨 일일까?

설마 신애 일을 다 아는 건 아니겠지? ‘



“ 여기에요. ”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연우가 강우를 보고 손짓했다.


“ 오랜만이야. 연우야 ”

“ 그래요, 정말 오랜만이죠. 모두들 어때요?

아줌마랑 아저씨는 아직도 상심이 크시죠?

이번에 신애 장례 치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너무 오빠네 사람들한테도 무심했단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

“ 그래, 그랬구나. 고맙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해 줄지는 몰랐어. “


“ 나 오빠한테 물어볼 말이 있어요? ”

“ 그게 뭔데? ”

“ 사실 나 다 알고 있었어요. 오빠랑 화란이 언니 관계

꽤 오래전부터 오빠가 고등학생부터

그 언니랑 깊은 관계였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

“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야, 그런 사이. 나랑 그 누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고

그냥 아는 동생, 누나 그런 관계일 뿐 이야. ”


“ 오빠, 다 알고 있어요.

그 언니가 오빠 아이를 세 번이나 지운 것도

둘이서 살다시피 한 것도 다 알고 있어요. “

“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

“ 우리 부모님 모두 알고 있어요. ”

“ 뭐? 모두들 다 알고 계시다고? 전혀 그런 내색은 없으셨는데 “

“ 알고 계셨어요.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래서 오빠랑 거리를 두라고 하셨어요.

그 동안 오빠네 가족들한테 모두 냉랭하게 대하신 이유가 그거예요. “


“ 아 그랬구나. 다 알고 있었구나.

너무 부끄러운데. 그런데 왜 날 보자고 한 거야?

이미 알고 있다면 다 끝난 거 아니야? “

“ 아니요. 난 끝나지 않았어요.

나도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동빈 오빠랑 나 헤어졌어요.

부모님들 모르게 우리 사귀고 있었거든요.

동빈 오빠를 만나면서 알게 됐어요.

내가 그런 사람이랑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나한테 어울리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오빠라는 걸


그래서 제안하는 거예요. 정식으로 만나자고

우리 아버지도 오빠가 입사 수 오빠에 대한 평판도 좋고 능력도 있다면서

오빠에게 마음이 다시 기우셨어요.

어린 남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오빠랑 결혼해서

우리 둘이 CH 건설을 키워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이에요.

어때요?

나랑 약혼하고 정식으로 교제하는 거예요.

약혼 후에도 마음이 같다면 결혼하는 거고. “


“ 연우야, 고맙다. 나를 이해해 줘서.

그래, 그렇다면 모두 나를 받아주신다면 그럴 게. “

“ 조건이 있어요. ”

“ 그게 뭔데? ”

“ AGT 건설에서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 리조트 사업 건

그걸 오빠가 따내야 해요. 이미 내정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입찰이 남아 있잖아요.

입찰 금액이랑 리조트 설계도 그걸 빼내야 해요. “

“ 그건 불가능해.

AGT 건설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공을 들인 사업인데

게다가 입찰 금액이랑 설계도면은 극비사항이야.

절대 알아내지 못해. “


“ 귀한 걸 얻어내려면 위험은 감수해야 하지 않아요?

우리는 오빠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오빠도 그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죠.

게다가 AGT 건설이라면

알아내고 빼 내올 사람을 이미 알고 있잖아요? “

“ 너 지금 화란일 말하는 거니? ”

“ 네, AGT 건설 원중만 사장이랑 강화란은 아주 깊은 사이라고 들었는데

기밀사항을 다 믿고 맡길 정도로 말이에요. “


“ 그렇기 하지만

그래도 그걸 빼내 와서 나한테 주는 건 위험한 일이야.

나도 화란이도 모두 말이야. “

“ 해야 해요. 나랑 결혼하고 싶으면 반드시 해야 해요.

제주도 리조트 우리가 계약을 체결 한 뒤에는 반드시 화란이란 여자 정리해야 해요.

난 말했으니 결정하세요.

내가 원하는 걸 주면 우린 새로 시작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아빠가 이미 내사 중인 최 이사님의 비리를 모두 고발하게 될 거예요.

우리 사이도 희망이 없고요. “


“ 생각할 시간을 좀 줘. 연우야 ”

“ 생각해 보세요. 결정 나면 연락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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