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41 하늘 핏빛으로 물들다

by 옥상 소설가

“ 그게 무슨 말이야?

입찰가랑 리조트 전체 설계도면은 회사 기밀이라고

그게 극비사항이란 걸 몰라? 지금 그걸 나한테 빼오라고?

다음 주말이 공개입찰이라 원 사장이 얼마나 예민한데

설계도는 입찰 계획은 사장 개인 컴퓨터에서 카피를 해야 하는 데

암호랑 비밀번호는 아무도 몰라.

아마 와이프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을 걸 “

“ 그러니 네가 알아낼 수 있잖아. 너랑 원 사장은 깊은 사이니까 “


“ 뭐? 그게 무슨 뜻이야? ”

“ 나 알고 있어. 원 중만이랑 네 관계가 나처럼 깊다는 걸 말이야. ”

“ 뭐라고? 너 지금 내가 원 사장 오피스 와이프라는 거야? ”

“ 그게 뭐든 상관없어. 넌 그냥 너일 뿐이니까.

넌 날 위해서 그 정도도 하지 못해?

우리 아버지 입지가 불안해지면 우린 모든 걸 잃어버려.

지금 우 사장은 아버지 내사를 진행하고 있어.

아버지가 무너지면 나도 회사에서 나가야 해.

내가 다른 회사에 입사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를 모두 알 텐데.

너 그래도 내 옆에 남을 수 있어?

내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말이야. “


화란은 장담할 수 없다.

빈털터리 강우라면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그 곁에 남을 자신이 없다.

그렇다 해도 강우가 다른 여자를 안고 있는 걸 절대 볼 수는 없다.

버릴 수는 있어도 다른 여자에게 뺏길 수는 없다.


“ 그래, 알았어. 시도는 해 볼게. ”

“ 화란아, 나만 위하자는 게 아니야.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하는 길이야.

반드시 꺼내 와야 해. “

“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

“ 고마워. 화란아. 역시 나한테는 너뿐이야. ”


강우는 화란을 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키스하고 있는 상대는 화란이 아닌 연우다.


‘ 연우야, 조금만 기다려. ’



샤워를 마치고 화란이 수면제를 탄 위스키를 마신 뒤

원 사장은 침대 위로 곯아떨어졌다.

화란은 그의 노트북의 비번을 알아내기 위해 수 십 번을 입력하고 있었다.

주민번호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 결혼기념일 부모님 생일 시골집 주소

예전 전화번호 대학교 학번 회사 창립기념일.........

아무리 알아내려고 애써도 도무지 찾아내지 못했다.


‘ 혹시 나를 처음 만난 날이 아닐까? ’


화란은 원 중만을 처음 만난 날을 입력했다.

마침내 윈도우 창이 열렸다.

노트북의 비번은 화란과 그가 처음 만난 날의 조합이었다.

usb를 꼽고 기밀이 담긴 파일을 카피를 하려다

화란은 잠시 원 사장을 내려봤다.

그는 화란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 화란아,

내가 이혼해 달라고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을 때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어.

내가 널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는 걸 말이야.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할 수는 없데.

지금처럼 그렇게 지내 달라고 부탁하더라.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고

애원하는 아내를 더 이상 힘들게는 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너에게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 거야.

내가 너한테 당당하지 못하니까

언제라도 좋은 사람이 생기면 날 떠나도 좋아.

그래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널 생각하는 마음을 말이야. “


원 중만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화란과 함께 했다.

그는 화란에게 넓은 세상을

화란이 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모두가 버린 화란을

받아준 사람은 원 사장 하나였다.

화란이 날개를 펼치도록 보호해주고 응원해주던 남자

그녀는 이제 그를 배신하려고 한다.

‘ 미안해요. 원 사장님

하지만 난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한 적은 없어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강우 하나뿐이에요.

당신이 나를 사랑한 건 기억할게요. 미안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을게요.

이게 우리를 위한 방법이니까요. ‘


화란은 파일을 복사한 뒤

옷을 입고 중만을 남겨둔 채 호텔 룸을 나갔다.

아침이 되었을 때 원 사장은 화란을 찾았지만 그녀는 원 사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원 사장은 제주도 리조트 입찰 건을 계획대로 처리했다.

내정된 일이라 AGT가 계약을 따내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 사장님, 제주도 리조트 계약을 따내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

“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왜? 그럼 어느 회사가 계약을 따냈어? “

“ CH 건설입니다. ”

“ 뭐? CH 건설은 제주도 리조트 건 준비도 하지 않았잖아? ”

“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입찰을 따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사장님이 직접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

“ 그래, 알았어. 얼른 본사로 돌아와. “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CH 건설 설계도가 우리 회사 설계도랑 유사하다고요? “

“ 네. 디테일만 다를 뿐 분명 카피한 거예요. 급하게

입찰가가 문제였어요.

AGT 건설보다 10억이 인하된 가격이었어요.

우리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 입찰 비리를 신고하고

감사가 진행되면 입찰 기록을 확인할 텐데

입찰가가 CH 건설보다 비싼 AGT를 선정하면 분명 문제가 생기거든요.

아무래도 설계도면이랑 입찰가를 빼간 것 같아요.

AGT 건설 내부 사람 같은데 한번 조사해보세요. “

“ 말도 안 돼. 설계도랑 입찰 진행계획은 내 개인 컴퓨터에 있는데

비번은 아무도 몰라. “

“ 저희도 짐작만 갈 뿐 확실한 건 원 사장님이 알아내셔야 해요.

일이 이렇게 돼서 유감에요. “

원 사장은 노트북을 열었다.

누군가 회사 기밀 파일을 카피해갔다.

파일이 카피된 날짜를 보니 화란과 호텔에 투숙한 어제 그 시간이다.

오늘 아침부터 화란은 출근하지도 연락도 받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거라 생각했지만

점차 분명해져 갔다.

화란이 회사 기밀을 카피해 갔다는 걸


‘ 왜 화란이 그런 짓을 했을까? ’


중만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 이유가 돈이라면 충분히 있고, 더 줄 수도 있는 데

왜 나에게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까? ’

어그러진 계약보다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원 사장은 사람을 시켜 화란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원 사장은 화란이 회사 기밀을 훔쳐

CH 건설의 최 이사의 아들 최 강우에게 전달한 것을

화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최 강우와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 나를 배신한 이유가 그거였어?

네 젊은 연인을 위해서

그가 성공하길 바래서 나를 버린 거니?

난 너를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솔직하게 대했는데 너는 날 철저히 이용했구나.

너한텐 진심이란 게 없었어. ‘


원 사장은 오래전 자살한 친구

재경대학교 윤 총장이 떠올랐다.

‘ 윤 총장도 그래서 자살을 한 거였구나.

이 배신감 때문이었던 거야.

윤 총장 그 사람은 차마 널 죽일 수 없어.

스스로 죽어 버린 거야. ‘


원 사장은 화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과거 원 중만을 전무에서 지금의 사장으로 끌어올린 것은 화란이었다.

화란은 원 중만을 사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번 칼춤을 추었다.

3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성공을 위해 죄책감 없이 배신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친한 동료가 내일의 경쟁자가 될 것 같으면

화란은 즉시 그를 베어냈다.

원 사장을 배신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화란은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원 사장을 죽이려 들것이 뻔했다.

그건 화란의 어쩔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본능이다.

이제 원 사장과 화란은 상대를 죽여야만 사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 어쩌지? 화란아.

윤 총장은 너를 죽일 수 없어 스스로를 죽였지만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생각이 없다.

네가 윤 총장을 죽인 것처럼

살기 위해 너는 나를 죽이려 하겠지.

난 죽을 수 없어.

어쩌자고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하니? ‘



“ 연우야. 성공했어.

우리가 제주 리조트 입찰을 따냈어. 이제 성공이야. “

“ 정말 잘 됐어요. 잘했어요. 오빠

아버지가 곧 우리 결혼 날짜를 잡자고 연락을 할 거예요. “

“ 우리 오늘 축배를 들어야지. 저녁에 만나자. ”

“ 오늘 저녁에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시기로 했어요.

오빠도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식구들하고 시간을 보내요. “

“ 그래, 그럼 내일 연락하자. ”

“ 네 ”



연우는 집이 아닌 AGT 건설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사장님 계시죠?

CH 건설의 우 사장 딸 우 연우가 찾아왔다고 전해주세요. “

“ 네, 잠시만요. 들어가시죠. ”

“ 이게 웬일인가? 우 사장 따님이 말이야. ”

“ 잘 지내고 계시냐고 물어보지는 못하겠어요.

너무 죄송해서 ”

“ 음~ 자네 알고 있는 겐가? ”

“ 네, 제주 리조트 입찰 건은 알고 있습니다. ”


“ 자네 아버지가 시켰을 리는 없고 이번 일의 배후가 누구지? “

“ 아무래도 최 이사와 그 아들 최 강우, 그의 연인 강 화란

이 셋의 합작인 것 같아요.

아버지도 걱정하고 계세요.

갑자기 최 이사가 제주도 리조트 건 입찰에 참여하겠다고 해서

경험 삼아 해보라고 하긴 했지만

설마 뒤에서 이런 일을 꾸몄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셨다고

어떻게 해야 사장님 마음이 풀어질지 모르겠다고 걱정하고 계세요.

이번 일은 저희 아버지나 회사에서 계획한 일이 아닙니다.

최 이사와 그 주변 사람들이 꾸민 일이에요.


아버지는 최 이사 주변을 조용히 내사 중이었어요.

아마 그걸 눈치채고 과잉 충성을 하다 이번 일을 벌인 것 같다고

곧 최 이사님이 그동안 회사 공금을 개인 자금으로 사용한 일과

회계 부정을 통해 비자금을 마련한 일을 터트리겠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곧 제주 리조트 계약을 취소하겠다고도 하셨어요.

그건 기업 윤리나 사업가 정신에도 벗어난 일이라고

원 사장님과의 관계가 틀어져버리는 걸 원치도 않으세요.

전 그걸 알려드리기 위해서 사장님을 찾아온 거예요. “

“ 알겠네. 충분히 알아들었어.

우 사장님한테 말씀드리게

제주 리조트 계약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의 오해는 없을 거라고 말이야. “

“ 알겠습니다. ”

연우가 돌아간 뒤

병가를 내고 얼마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다시 회사로 돌아 온

원 사장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래, 조용히 사고로 처리하지. 단순 사고사로 말이야.

여자와 남자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해야 해.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확실한 사람으로 구해.

내 이름은 우리 회사는 절대 거론되어서는 안 돼.

두 명 다 확실히 죽었는지

특히 여자는 절대 살아남아서는 안 돼.

사망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자리를 떠나라고 해. “



원 중만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말없이 응시했다.

하늘은 점차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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