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자는 신애가 죽은 후 통 밖을 나오지 않았다.
일하는 아주머니는 말자가 매일 신애의 방으로 들어가
옷 , 사진, 신애가 사용하던 물건들을 보고 냄새만 맡고 있다고 했다.
장례식 후 최 이사가 신애의 물건을 버리려고 하자
“ 당신이, 당신이 죽인 거야. 우리 신애를
그깟 소문이 무서워서 내 딸을 죽인 거라고
회사야 그만두면 되는 거지.
그 어린것을 그 불쌍한 것을 당신이 죽인 거라고
내 새끼를 금쪽같은 내 새끼를
네가 죽인 거야. 살려내. 내 딸 살려내. "
말자는 괴성을 지르며 눈을 치켜뜨고 최 이사에게 달려들었다고 했다.
연우의 엄마 윤희는 도저히 말자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죽을 쑤어 말자를 찾아갔지만
말자는 윤희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혼잣말만 했다.
“ 말자야, 죽이라도 먹자. 한 숟가락만 먹자. ”
“ 내가 죽인 거야. 내 새끼 신애
가기 싫다고 울며불며 매달렸는데
부모가 억지로 딸을 그 짐승 같은 놈한테 보내고
속 편히 잠자고, 밥을 먹었어.
내 새끼는 그 집에서 갇혀 굶고, 잠도 자지 못하고 산 송장이 되가고 있었는데
배가 불러오면서 그 어린 게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신애야, 엄마도 데려가. 엄마 좀 데려가. “
“ 말자야 ”
윤희는 그 순간 말자를 용서하기로 했다.
이제 말자의 죗값은 충분히 치른 거라고
과거는 모두 잊고 말자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연우야, 말자가 불쌍해서 도저히 볼 수가 없다. ”
“ 원래 그 아줌마는 사람이 아니었어. ”
“ 연우야, 용서하지 않으면 네가 힘들어. ”
“ 아니, 난 용서하는 게 더 힘들어.
그 아줌마랑 신애, 그 집안사람들
모두 어린 나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
“ 잊어. 연우야, 잊어야 해. 지금 너는 행복하잖아. ”
“ 그건 엄마 감정이고, 난 엄마랑은 달라.
내가 당한 일인데 엄마가 용서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
나는 아무도 용서할 수 없어. “
‘ 내가 모르는 일이 더 있었나?
연우가 이렇게 말자네 사람들을 싫어한다면 내가 모르는 이유가 더 있을 텐데
통 말을 안 해주니 알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
차디찬 연우를 보면서 윤희는 마음이 다시 아파왔다.
‘ 내가 건강했으면 우리 연우를 말자한테 맡기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린 게 너무 상처가 많다. ‘
“ 아주머니, 제가 아줌마 옆에 있을 테니 이제 그만 퇴근하세요. ”
“ 사장님 오실 때까지 내가 사모님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데 ”
“ 제가 아저씨 오실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 가셔도 돼요. ”
“ 어쩌나? 그럼 연우 학생이 사모님 잘 지켜봐요.
이 죽도 좀 드시게 하고, 통 안 드셔서 걱정이네.
우리 딸이랑 손주가 오늘 저녁에 온다고 했는데 잘 됐어.
그럼 부탁해요. 나 먼저 들어갈게. “
“ 아주머니. 이거 아이들 과자 좀 사주세요. ”
“ 에이, 뭘 이런 걸 다. 고마워. ”
연우는 아줌마가 대문 밖을 나가는 것을 보고 난 후
신애의 방으로 들어가 말자에게 말을 건넸다.
“ 아주머니, 몸은 좀 어떠세요? ”
말자는 자신을 찾아온 연우가 보이지 않는 듯
신애의 사진만 바라보고 있다.
“ 아줌마.
주 사장 말이에요. 신애를 데려간 그놈
그놈 새끼가 곧 태어난데요.
신애한테 몹쓸 짓을 했을 때도
다른 여자랑 동거 중이었고, 여자는 임신 중이었데요.
아무래도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신애한테 접근을 해서 그 짓을 한 거 같아요.
그 여자 두 달 후에 출산 예정이라고 하네요. “
“ 뭐? 그놈 새끼가 태어난다고? ”
“ 네, 신애가 너무 불쌍해요.
신애를 감시했던 그 여자 말로는
주 사장이랑 그 여자가 신애한테 수시로 찾아와서는
자기는 첩이라고 자기보다 어린 신애한테 형님 형님 하면서
아기들이 태어나면 배 다른 자식이지만 아이들끼리는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집 주위로 이사 와서 같이 살자고 잘 지내보자고
신애 속을 그렇게 뒤집었데요.
밥도 물도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자서 뼈만 남은 신애를
그렇게 괴롭혔데요. ”
“ 뭐? 우리 신애한테? ”
“ 네, 그 둘이 찾아온 날이면
신애가 더 심하게 울고 괴로워했데요.
자기도 그걸 보면서 너무 가여웠다고
감시하던 여자도 주 사장한테 빚이 있어서 협박당하고 있었데요. “
“ 불쌍한 내 딸, 신애 우리 신애 ”
“ 신애가 살던 그 아파트에 지금 그 여자가 들어와서 같이 살고 있데요.
둘이 얼마나 금실이 좋은 지
정기 검진도 매일 주 사장이 데리고 가고
신애가 죽은 건 잊어버렸는지 매일 둘이서 하하호호 살고 있데요.
짐승만도 못한 것들
죽은 신애만 불쌍하지 말이에요.
하늘에서 그걸 알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할까요?
얼마나 그놈을 죽이고 싶을까요? “
“ 그렇지, 죽이고 싶지.
자기를 그렇게 만든 놈을 죽이고 싶지. “
“ 그렇죠? 저라면 죽이고 말 거예요. 그놈을 말이에요.
제가 그놈이 사는 주소를 알아놨어요.
한번 찾아가서 제가 신애 대신 혼을 내주려고요. “
“ 그래? 그 주소 나한테 다오. ”
“ 왜요? 아줌마
찾아가시려고요? 안 돼요. 지금 몸도 안 좋으신데.
제가 할게요. 신애 복수는 제가 할게요.
신애는 어렸을 때부터 제 친구였는데
괜히 강우 오빠 때문에 사이가 멀어져서
그때 저나 우리 부모님이라도 강우 오빠랑 화란 언니
사이를 이미 안다고 말을 했더라면
우리 집이랑 아줌마네랑 이렇게 멀어질 일이 아니었는데
과거일이지만 너무 아쉽고 후회돼요.
아줌마나 아저씨 신애한테 모두 미안하고 죄송해서
그놈 처리는 제가 할게요. “
“ 아니야. 내가 해야 해.
내 새끼를 죽인 놈이니까 내가 해야지
얼른 줘라. 그놈 주소 “
“ 안돼요. 아줌마, 몸도 아프신데 제가 할게요. “
“ 당장 내놓지 못해. 얼른 내놓으라고 ”
“ 안 되는데. 여기 있어요. 아줌마
아줌마, 절대로 그놈 찾아가시면 안 돼요. 아셨죠? ”
연우는 주방으로 가서
잘 보이는 곳에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을 꺼내 놓은 후
말자의 집을 나섰다.
잠시 뒤 말자는 주차된 자동차를 운전하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 정 비서님,
주 현우 그놈 지금 어디 있어요? “
“ 자기 집에 있어요. “
“ 여자는요? ”
“ 몸이 안 좋아서 친정에서 머물고 있다고 해요. ”
“ 주 사장, 상태는요? ”
“ 아마 술에 취해서 자고 있을 거예요.
집에 불이 다 꺼져 있는데요.
매일 술 마시고 집에만 쳐 박혀서 가게도 잘 안 나가고 있어요. “
“ 정 비서님, 이제 퇴근하세요.
더 이상 거기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바로 들어가세요. 아셨죠? ”
“ 네, 알겠습니다. ”
정 비서는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파트 주차장 차 안에서 주 사장의 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낯이 익은 검은색 차가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더니
중년의 여자가 차에서 내린다.
유심히 보니 최 이사의 아내 말자이다.
‘ 사모님이? 사모님이 지금 여기 왜 오시지?
혹시 주 사장 집으로 찾아가는 건가?
이 집 주소를 알 리가 없는데
왜 여길? 어떻게 알고 여길 오셨지? ‘
정 비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말자는 주 사장이 사는 아파트 동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주 사장의 집 불이 켜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30층에 있던 집들의 등이 차례로 켜지기 시작했다.
경비원들이 주 사장이 사는 아파트 동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사람이 죽었다. 얼른 경찰에 신고해.
3004호야. 구급차도 보내 달라고 하고 “
웅성웅성 대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한 여자가 아래로 뛰어나와 벌벌 떨고 있었다.
정 비서는 차에서 내려 주 사장의 아파트 입구에 서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
몸을 떠는 여자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왜 이러는 거야? 자꾸 우리 아파트에 ”
“ 미진 엄마, 왜 그래? 왜 이렇게 떨어? 무슨 일이야? ”
“ 몇 달 전에 30층 어떤 임산부가 뛰어내린 집
그 집에 어떤 아줌마가 들어와서는 남자를 칼로 찔렀데요. “
” 네? 누가요? “
“ 몰라요. 나도 ”
“ 그 여자가 왜 그 남자를 찔러요? ”
“ 글쎄 ”
“ 중국집 배달원이 4호 현관문이 열려있어서 이상해서 들어가서 살펴봤는데
바닥에 피가 흥건하고 피 비린내가 심하게 풍기고.
어떤 아줌마가 거실에서 칼을 들고 그 남자를 계속 찌르고 있더래요.
아주 걸레가 됐다는 데 그 남자 말이에요. “
” 죽었겠네. 현관문까지 피비린내가 날 정도면 “
“ 아파트 값 떨어지겠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소문나면 안 되는데 “
“ 그러게 말이에요. ”
주 사장의 집이다.
말자가 들어가서 주 사장을 찌른 것이다.
‘ 연우 아가씨가? 아가씨가 사모님한테 주 사장 집 주소를 알려드린 건가?
일부러?
사모님이 찾아와서 주 사장을 죽이도록 그렇게 만든 건가?
그럴지도 모르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건가?
아가씨가 왜 이러시는 거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
정 비서는 연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연우가 주 사장을 죽인 건 아니지만
최 이사의 아내를 부추겨 주 사장을 죽였다고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연우의 의도가 있었을 거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 아가씨,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
정 비서는 소란스러운 틈을 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정 비서는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정 비서가 출근을 했을 때
회사 앞에는 방송국 차량 몇 대와 기자들이 추위에 발을 동동거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 이사도 강우도 출근하지 않았고, 직원들이 모여있어 분위기는 소란스러웠다.
어젯밤 최 이사의 전 사위가 살해당했는데
유력한 용의자가 최 이사의 아내라고 했다.
“ 딸이 죽고, 엄마가 그 사위를 죽이고, 이게 무슨 일이지? “
“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막내딸이 죽은 게 사고가 아니었나 봐. “
“ 그러게, 다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 “
“ 죽은 그 사위도 보통 사람은 아니나 봐. ”
“ 무슨 유흥업소 사장이라고 하던데 뉴스에서는 말이야. ”
“ 그래? ”
“ 강남에 있는 유흥업소 사장이라는데
전과도 있고, 사채도 하고, 질이 너무 안 좋은 남자였다고 말이야. “
“ 그랬구나. ”
“ 아휴~
제주도 리조트 계약 건으로 최 이사님이랑 최 강우 사원 기가 살았었는데
이게 뭔 일 이래? “
“ 그러게 말이야.
아침부터 방송국에서 사람들 취재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
정 비서는 연우를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과 두려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