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 11 엄마를 찾으며 울다.
지후 이야기
엄마를 찾으며 울다.
언니 집에 살면서도 생활비를 꼬박꼬박 내고, 등록금과 용돈을 아르바이트로 마련해 살았던 은서
회사에서 나오는 교통비며 점심값을 꼬박꼬박 모았다가 적금을 드는 여자.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먹으면 된다고 하는 신입사원
은서는 유명했다. 한 겨울에도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매고 자전거로 출근하는 여자.
그녀가 유일하게 버스를 타고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
또는 점심까지는 맑지만 퇴근 무렵 비가 오는 날이라고.
젊은 아이가 궁상맞다고 욕할 수도 있는 데 사람들은 나처럼 은서를 신기하게 봤다.
독특한 캐릭터다. 회사에서 동기나 선, 후배들은 뻔하지 않은 은서를 좋아했다.
“ 너, 혼자 밥 먹으면 이상하지 않아? ”
“ 나 원래 혼자 밥 잘 먹잖아.
대학생 때도 시간 없어서 학식 혼자 먹고 그랬는데, 괜찮아.
점심은 같이 먹지 못 해도 짬짬이 얘기하고 괜찮아. 같이 밥 못 먹는다고 친하지 않으면 친한 거 아니지.
내가 좀 웃겨? 다들 내가 얘기하면 빵빵 터져.
가끔 내가 사 먹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나랑 수다 떨려면 도시락을 싸와야 하니까.
한, 두 명씩 점점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한다. 내가 점심값 모아서 적금 들었다고 했거든
대리님도 와이프가 도시락 싸준다고 했데.
나랑 친하게 지내라고 했다는데. “ 은서는 웃으며 말했다.
능력도 있었고, 재미있고, 깔끔했다.
특히나 남한테 피해 주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질색을 했다.
그런 점은 엄마와 비슷했다. 둘 다 결벽증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러나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좋아했고 특히나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선배였다.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거나 점심시간에도 가끔 은서를 보러 가곤 했다.
그들은 모두 남자 친구인 내가 있는 걸 알면서도 은서에게 관심이 많았다.
대학 동기나 선, 후배들에게 전화나 문자가 오기도 했었다.
보통 남자들은 남자 친구가 있는 여자들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인데
은서 주변 남자들은 나를 투명인간 보듯이 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 얍삽이 ’라고 부르곤 했다.
한 번은 전무님이 자기 조카랑 자꾸 소개팅을 하라고 한다고
‘ 어려운데 어떻게 거절해야 하지? ’ 고민한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같이 웃던 내가 점점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해지자.
이러면 다들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며, 우리 둘이 뽀뽀하는 사진을 떡~~~ 하니 자기 책상 위에 올려놨다고.
나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 너 그런 사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놔도 돼? ”
“ 괜찮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상관이야? ”
“ 직원들이 뭐라고 안 해? ”
“ 응, 남자 직원들은 그 사진 보고 어이없어하면서 가고,
전무님은 결혼까지 꼭 해서 행복하라고 축복도 해주시고,
여직원들은 오빠 잘생겼다고 하더라. 걱정하지 마. 나 의리는 있다.
오빠가 먼저 나 싫다고 하지 않으면 내가 먼저 떠나는 일은 없을 거야.
모르지? 또 내 속 썩이면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할지도. 그러니까 잘해라. “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결혼생활도 무난했고, 가정의 편안함도 알아가기 시작했다.
임신도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나 은서의 입덧이 너무 심했다.
장모님, 처형들 모두 출산 전까지 입덧이 심했다고 했는데 은서도 똑같았다.
입덧이 시작되자 깍쟁이 은서가 마트에 가서 과자, 사탕, 초콜릿 등을 샀다.
“ 왜 이렇게 많이 사? ”
“ 방법이 없어. 먹이는 수밖에 없어. 아군으로 만들려면 최대한 많이 먹여야 해. ”
“ 그렇게 까지 해야 해? ”
“ 그럼, 사람은 원래 먹는 거에 약해. ”
“ 내 돈으로 그 얍삽이들을 이렇게 먹여야 해? ”
“ 응, 그 얍삽이들이 나를 도와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
은서는 앞으로 다가 올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에 대비해 동료들과 선, 후배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임신을 눈치챈 몇몇 선배들이 잘 챙겨줘서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고 했다.
자기도 황 부장님처럼 멋진 선배가 될 거라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날이 오면 여사원들의 임신 때 공개로 축하 파티와 임신 보너스 지급할 거라고
회사 내 어린이집을 꼭 설치하겠다고도 했다. 역시나 꿈이 크다.
“ 은서야, 니 앞가림이나 잘해. 남 걱정하지 말고. ”
“ 아냐, 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 해. 내가 임원 되면 오빠는 쉬어. ”
“ 그래, 그런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
“ 응 그러니까 집안일 열심히 잘해. 그래야 내가 승진하지. ”
우리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확인하고 나면 양가에 알려 드리자고 했다.
우리 집에서는 첫 손주이고, 은서 네에서는 나이 터울이 많이 지는 마지막 손주이다.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해 줄 것이다.
은서가 너무 기특하고 고마웠다.
심장소리를 들으러 간 날
유산을 하라는 의사의 갑작스러운 권유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아기를 낳자, 수술을 하자. ”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불안하고 겁이 났다.
은서는 그날부터 밥을 먹지 못했다. 자꾸만 자꾸만 소리 없이 울었다.
병원 두 곳을 다시 예약하고 검사를 받은 뒤 아기를 낳아도 괜찮고 하면 그때 결정하자고 했다.
그제야 은서는 조금씩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입덧과 어지러움증이 심해졌다. 입덧 억제제와 수액을 맞고서야 기운을 차렸다.
출, 퇴근하는 차 안에서도 말이 없었고, 고맙다는 말만 했다.
휴직계나 휴가를 좀 쓰자는 나의 말에
“ 아니야 , 집에 혼자 있으면 더 힘들 것 같아. ”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은서는 하루하루 버텨 나갔다.
두 명의 의사가 유산을 권유하고, 의사로 일하는 친구와 통화를 한 날
은서는 수술하자며 동네 산부인과에 전화를 걸어 수술을 예약했다.
더 이상 소리 내어 울지도 소리 없이 흐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한다고 해도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것을 준비했다.
퇴근하면 침대에 누워 잠만 잤다.
더 이상 배속의 아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기 얘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 은서야, 수술하는 거 어른들 모르는 게 좋겠지? ”
“ 아시면 다들 너무 속상해하실 거야. 좋은 얘기도 아니고 우리끼리만 알고 있자.
다시 아기가 찾아올 거야. 다음번에 오는 아기는 절대 놓치지 말자. “
“ 내가 현우한테 말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휴가를 받을게.
너 미역국도 먹고, 몸조리도 해야 해.
수술하는 거랑 출산하는 거랑 똑같데. 몸조리 잘해야 한다고 하더라.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해. 내가 뭐든 구해올게. “
“ 그래, 혹시 도련님이 안 된다고 하면 무리하지 말아. 난 혼자 있어도 괜찮아.
주말이기도 하고 만약 힘들면 언니들한테 와 달라고 하면 되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다음 주까지는 어머님 못 오시게 해. 내 얼굴 보면 분명 눈치채실 거야.
다음 주말에 같이 가서 밥 먹자. 이번 주까지만 조용히 있고 싶어. “
“ 알았어, 얼른 자자. ”
그날 밤 우리는 밤새 잠을 자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은서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가끔 배를 쓸어 만지기도 했다.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다음에 나한테 꼭 다시 와 줘. ” 은서는 조용히 읊조렸다.
나는 은서의 떨리는 등만 바라봤다.
은서를 안아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기와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은서는 침대에서 일어날 때 ‘ 휘~청 ’ 했다.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손을 잡아주고 나서야 옷을 입고, 병원으로 갔다.
채 삼십 분이 걸리지도 않은 것 같다.
무심한 간호사는 마취에 취한 은서의 어깨를 마구 흔들어 깨웠다.
나는 멍한 은서에게 바지를 입혔다.
아무 말이 없다.
우리는 병원을 나와 집으로 걸어갔다,
택시를 타고 가자는 말에 은서는 조금만 걷고 싶다고 했다.
갑자기 은서가 손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동네 유명한 설렁탕 집이다.
“ 배고파, 나 배고파. ”
“ 그래 들어가자. ”
“ 여기 설렁탕 둘이요. ”
종업원이 뚝배기 그릇에 김이 나는 설렁탕을 가져왔다.
은서는 파를 듬뿍 넣었다.
깍두기 국물도 넣었다.
은서가 한 입 두 입 먹기 시작했다.
“ 맛있다. 오랜만에 먹으니까 정말 맛있네.
오빠, 신기해. 나 입덧이 사라졌어, 두통도, 어지러움증도 모두 없어졌어.
아기랑 같이 사라졌나 봐. 사람 몸이 참 신기하다.
나 동물 같아. 동물. 어쩜 이렇게 밥을 먹을 수가 있지? “
은서는 다시 설렁탕을 먹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은서의 눈물이 들어간 설렁탕을 먹는다.
“ 은서야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체하지 않게 천천히 먹고 있어. ”
화장실로 가서 빨간 눈을 비빈다. 세수를 하고 , 은서 앞에 앉았다.
“ 오빠, 우리 아기 남자아이였던 것 같아. 그때 그랬었잖아.
그 역술가가 우리 첫 아이는 남자아이라고, 기억해? “
은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 전에 엄마가 봐준 궁합이 아무래도 찜찜하다며
우리끼리 다시 한번 가서 확인해보자고
‘ 그것이 알고 싶다. ‘ 에 나왔던 유명한 역술가의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은서는 본인과 내 사주를 꺼내며
“ 궁합이 어떤가요? 시댁에서 궁합이 안 좋다고 하네요. ”
“ 그렇게 나쁜 궁합은 아니야. 보기 나름인데 왜 그렇게 안 좋다고 얘기를 한 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궁합 이란 건 없어. 설사 있다고 해도 평생 기억하고 조심하면 괜찮아. “
“ 제가 그렇게 센 사주인가요? 나쁜 사주인가요? 제가 이 남자한테 해를 끼치는 사주인가요? ”
내가 옆에 있는 데도 용감하게 물었다.
“ 아니야, 나쁜 사주 아니고, 굳이 따지면 남자보다 좋은 사주야.
좋은 말로는 강한 거고, 나쁜 말로는 세다고 하지.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아. 잘 살 거야.
그런데 조심해야 해.
결혼하고 첫아기가 생기면 꼭 나아야 해. 아마 첫 아이는 남자아이일 거야.
그런데 그 아이를 잡는 게 많이 힘들어. 그래도 꼭 잡아. “
은서는 첫 아이는 잡기 힘들지만 꼭 잡으라고 했던 그 역술가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응, 기억하지. 너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
“ 나 태몽도 꿨었거든. 그게 남자아이 태몽이래, 인터넷에 나오더라.
그 역술가가 첫 아이는 잡기 힘들다고 했잖아, 꼭 잡으라고 했었는데......
우리가 잘 한 결정일까? 후회하지 않을까? “
“ 응, 잘한 거야. 이번에 온 아기는 우리랑 인연이 없었던 거야. 더 이상 생각하지 마. ”
“ 그렇지,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얼른 먹자. 남기지 말고 다 먹어. ”
우리는 그렇게 설렁탕을 다 먹었다.
은서는 집에 와서 며칠 동안 못 잔 잠을 몰아 자듯이 자기 시작했다
살아있지 않은 사람인 듯 잠만 잤다.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은서의 몸이 불덩어리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자마자 은서는 점심에 먹은 설렁탕을 토하기 시작했다.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게워냈다. 노란 위액까지 모두 토해냈다.
다 토했는지 물도 나오지 않자. 은서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소리 내지 못하고 운 것이 억울했는지, 이제는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은 건지
‘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