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그네 같은 친구가 있니?

by 옥상 소설가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 놀이터에 갔지만

힘든 일이 생기거나 슬펐을 때도 혼자 놀이터에 자주 갔어.

슬픈 일은 주로 집에서 벌어졌으니까


놀이터에 가면

슬프지 않아서, 슬픔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어.

그게 내가 매일 놀이터에 가는 이유였어.

거기 가면 웃을 수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아이가 될 수 있었으니까


엄마는 그네를 잘 타는 아이였어.

내가 그네를 타고 있으면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쏟아졌지.

우는 아이, 서러운 아이가 아닌

그네를 잘 타는 부러운 대상이 될 수 있었어.

내가 부러운 아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좋았었나 봐.


" 그네 정말 잘 탄다.

저렇게 높이 올라가면 무서울 텐데 "

" 나는 무서워서 못 타는데 쟤는 겁이 없나 봐. "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그네 위에서 계속 발을 굴러댔지만

가끔은 공중에서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사실은 다 들렸어. 속으론 우쭐대며 그네를 탔지.


' 나는 그네를 잘 타는 아이야.

너희들은 겁이 많아서 이만큼 올라갈 수 없지?

나보다 더 하늘에 가까이 올라가는 아이는 없을 걸 '


놀이터에서 나는 그네를 잘 타는 가장 하늘 높이 올라가는 아이가 됐지.


' 다른 아이들이 봐주는 게 그게 그렇게 좋았었나? '


그게 내가 그네를 타는 이유였었나 봐.

높이 하늘로 올라가는 나를 봐줄 아이들이 없으면 그네를 열심히 타지 않았어.

힘들게 발을 구를 이유가 없었지.

나를 부러워하는 아이들이 없으니까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그네를 탈 땐

천천히 발을 구르며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멀어지는 조용하고 침착한 나무들을 바라봤어.

바람이 불 때면 나무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을 걸어줬지.

‘ 우리가 있으니까 힘들게 타지 말고 편안하게 타.

이제 곧 노을이 지고 어두워질 거야.

밤길은 위험하니까 조금만 더 타다가 집으로 돌아가.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



두 세시쯤이면 학교나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로 항상 놀이터가 붐비는 데

유치원에 다니지 않은 내가 아침밥을 먹고 오전에 놀이터에 가거나

초저녁쯤인 5,6시가 되면 놀이터엔 아이들이 없었어.

아마 윗동네 아이들은 모두 집에 돌아가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있었을 거야.


놀이터에 친구랑 같이 놀러 간 기억은 없어.

언니들이랑 몇 번 놀이터에 간 기억은 있네.


언덕 위 놀이터로 향하는 지름길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

구불구불한 완만한 곡선을 타고 올라가는 것보다

얇고 짧은 뱀 같은 그 지름길을 통하면

놀이터에 빨리 도착할 수 있었지.

언니들이 뱀 길을 알려줬어.

뱀 길은 놀이터에 자주 가는 아이들만 아는 비밀 길이었어.


나는 항상 뱀 길을 이용해 놀이터로 갔어.

위험한 길이지만 놀이터에 어서 가고 싶었거든.

나보다 먼저 그네를 타는 사람이 없어야 하잖아.

그네는 내 거니까

누구보다 내가 먼저 그네를 차지해야 했어.


놀이터가 보이기 시작하면

놀이터 입구의 작은 나무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달려갔지.

경사가 심한 계단을 숨이 차도록 달리고 놀이터에 도착해도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어.

텅 빈 놀이기구만 모래랑 흙먼지만 바람에 폴폴 날리고 있었지.

뜨거운 여름에는 모래 바닥이 이글이글 열기를 뿜어내기도 했어.


그네가 내 거라는 기쁨이 들다가도

맥이 탁~ 하니 풀리면서도 조금은 서글퍼졌지.

나 혼자라는 사실이 말이야.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많아야 재미있어.

새치기로 인한 작은 소동과 놀이를 하는 동안의 다툼이 있긴 해도 시끌벅적해야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는 거야.


내 친구가 아니어도

처음 보는 아이나 아이들 무리라고 해도

놀이터에 가면

놀이를 하기 위한 사람이 모자라거나

나도 끼워서 놀아달라고 부끄러움을 참고 얘기하면

낯선 아이들과도 어울려 같이 놀 수 있었거든

나는 그걸 기대하고 기를 쓰고 놀이터로 달려갔는지도 몰라.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있어도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텅 비어 심심하고 외로워도

그네를 타면

내가 몸을 뒤로 하고 고개를 젖히면

그네는 하늘도 만나게 해주었지.


나를 태우고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가 내 친구가 되어 준 것 같았어.

눈을 감고 진자운동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졌어.

" 괜찮아. 이제 곧 제자리로 돌아갈 거야.

모두 다 괜찮아질 거야.

조금 더 나를 타고 있다가

집에 가고 싶으면 그때 집으로 가.

네가 와줘서 기뻐.

네가 지금 와 주지 않았다면 나는 심심했을 거야.

이제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갔거든

아무도 없을 때 와주는 네가 고마워.

아이들이 많을 때 오면 정신이 없고 몸도 힘든데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몸은 편해서 좋지만

시간이 지나고 초저녁쯤이면 좀 심심해지고 외로워져.

어쩔 때는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아.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너는 내가 혼자 있을 때

조금 슬플 때 나를 찾아와 주는 것 같아.

내가 더 슬퍼지기 전에 와서 나랑 놀아주고 가는구나. "


그네는 내게 말을 걸어주었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네는 분명 알았을 거야.

자기를 맨날 찾아와 주는 내가 친구라는 걸


나는 가끔 깜깜한 밤에도

동그란 보름달이 떠 있는 밤에도 그네를 찾아가 주었으니까



점점 몸이 자라면서

친구들을 사귀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

공부를 하고 시간이 나지 않으면서

나는 그네를 타지 않았어.

그네는 더 이상 내 친구가 되지 못했어.

내가 그네를 만나러 가지 않았으니까

그네보다 더 나를 위로해주는

재미있게 해 주는 친구가 사람들이 많아졌어.


하지만 이제 나이든 나는 다시 종종 그네를 만나러 가.

그네와 나는 다시 친구가 되었어.

그네는 인정이 많은 친구야.

시간이 한 참 지났음에도

자기를 찾아오지 않았던 나를 다시 받아주었거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를 때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할 때

그네는 무거워진 나를 다시 받아주고 안아줘.

그리고 다시 말을 걸어줘.


“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기분이 나아지면 그때 돌아가.

나는 여기 그대로 있을 테니까 편히 갔다가 다시 와도 돼.

몸을 뒤로 젖히고 하늘을 봐.

하늘은 그대로지. 나도 그대로고. 너도 그대로야.

우리는 그대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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