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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Oct 01. 2022

보름달과 초승달

우리는 너의 퇴사를 한참 동안 고민했었지

연말 성과급까지 받고 퇴사를 바라는 나

당장 그만두고 싶어 하는 너

몇 퍼센트가 나올지 모르는 성과급이 아쉬워

힘들어하는 네게 조금만 참아보자는 얘기를 했어

너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완곡하게 거절을 했어


더 이상 설득하는 것은 통하지도 않고

나 자신이 구차한 것 같아

그래 그러자고 쿨한 척 나는 동의를 했어

다음 주 전체 회의 전 동료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 윗선 또 그 윗선

그렇게 너의 퇴사 결정을 공식화하기로 했어


오늘 밤하늘에는 구름에 잔뜩 싸인 초승달이 있었어

초승달을 보며 나는 나의 얄팍함과 치사함을 새삼 다시 실감했어

나는 아직 뾰족하고 절반이 넘게 비어 있는 초승달 같구나

나는 언제쯤 보름달 같이 풍성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너는 나의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시절

나를 아무것도 없고 나약한 나를

그런 내가 싫다고 떠난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내가 좋다고

그저 나라는 이유로 받아주었었지


결혼을 한 후

아내라는 이유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힘든 거라며

장남인 너는 두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매일 새벽 황소처럼 나가 밭을 갈고

늦은 저녁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너는 누구에게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어


그때 나는 우리는

까만 눈을 껌벅거리고 지쳐있는 눈으로

나를 모두를 바라보는

너에게 미안함과 감사함을 느끼지 않았다

너는 그렇게 나에게 우리에게 보름달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

이제 내 차례가 온 거야


사랑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마주 보는 거라고 하던데

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은 그저 바라봄이 아니야

우리의 사랑은 정지하지 않아


이제 내가 너를 업을 차례야

지친 너를 업고 한 발 한 발 걸어갈 시간이 온 거야

너를 업고 가는 동안

투덜거리지 말아야지

치사해지지 말아야지

나는 순간순간 다짐을 한다


이제 네가 나처럼

파란 하늘과 구름 달 별

보라색 꽃과 하얀 노란 꽃을 바라보고

예쁘다고 곱다고 감탄하며 걸음을 멈추길 바라


나는 네가 더 이상 출근길의 도로가 아닌

계절마다 꽃과 풀 나무의 피고 짐을

풀과 흙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산책길에 있기를 바라

그 길에 너와 내가 두 손을 잡고 걸어가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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