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초월적인 대상으로 보지 말라
시작은 종교로 출발했지만 결국 종교를 버려야지만 완성되는 불교
부처는 숭배의 대상이 아님
내가 수행하여 '부처'가 되어야 함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힘이 없어지는 이유
현대는 화폐를 숭배해서 종교가 필요 없다
자본교
미래의 안락을 주장하며 포교를 해왔던 종교들
'돈'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 행복하다
자본주의의 양면성
어두운 곳은 숨기고 오로지 밝은 것만을 보여줌
'죽음'을 숨기고 '탄생' 만을 보여줌
자본주의는 그것으로 장사한다
장례식장은 병원 가장 깊은 곳 어두운 곳에 있다
예시) 태어난 수만큼 죽는다, 먹은 만큼 싼다
우리에게 죽음은 보여주지 않음, 스타들의 화장실 가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음
생태적으로 살고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는 것은 똥냄새와 함께 사는 것이다
진짜로 삶을 제대로 알려면 '죽어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죽음' 이야말로 '무상'의 단편
진짜 죽음을 알려면 죽음을 묵도해야 한다
아이와 장례식장을 다니면 아이가 엄마에게 물을 것이다
" 엄마도 죽어? "
" 응 "
나아가 아이는 자기도 죽는 것을 알게 된다
'무상'의 의미를 깨달음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 많은 변화들이 생긴다
마른 똥 막대기 = 부처
쌓인 똥을 처리하는 막대기 같은 존재
'똥 막대기'는 근사한 존재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에 있는 막대기
가장 더러운 곳을 떠나지 않는 막대기
가장 더럽고 힘든 곳을 떠나지 않는 '자비'의 마음
가장 불쾌한 곳에서 도움을 주는 존재
불상이 아닌 네가 중요하다
모두 똥 막대기이다
부처는 마른 똥 막대기지만 나는 촉촉한 똥 막대기
연은 원래 시궁창에서 자란다
물이 더러울수록 연꽃의 향은 강하다
현재 사찰의 맑은 물에선 사는 연, 향이 없음
어느 스님이 "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라고 묻자,
운문 스님은 "마른 똥 막대기 "라고 말했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고 결심한 놈이 다른 놈을 흉내 낸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
다른 것을 숭배한다는 것은 그것을 주인공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그 순간 우리의 삶은 조연의 삶으로 전락
그리고 그만큼 깨달음과 해탈에서 멀어짐
깨달음은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아는 것,
해탈은 조연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
불교는 신과 같은 절대자를 숭배하는 초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내재적 사유체계임
초월이 우리의 삶과 세계를 넘어서는 곳을 지향한다면
내재는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세계와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삶을 긍정하는 입장
내재적 사유에 따르면 우리 자신이 노력에 따라
세계가 극락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는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따라 삶 자체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입장
불교는 노력 여하에 따라 인간이 신처럼 될 수 있다
사찰을 떠날 때 스님들이 간곡히 기원하던 말
"성불하세요. 성불!!! "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 주인공처럼 당당한 사람
그래서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집착으로 고통과 불만족에 시름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집착을 끊은 부처로서 살 수도 있다.
대부분의 불교신도들이 불생에 대한 경배 행위만을 한다면
우리는 절대 성불할 수 없다
부처란 당당한 주인공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
그러나 부처가 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감당하기 힘들다면,
그나마 깨달은 사람으로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내가 어린 시절이었던 80년대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는 재래식 화장실이 많이 있었어
매일 아침 그리고 수시로
어린 나는 화장실에서 바지를 치마를 내려야했지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웠는지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만 했던 사람들은 모를 거야
마흔이 넘은 지금 나는 꿈속의 어린 나를 가끔 만나는데
그 아이는 재래식 화장실문 앞에서 안절부절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어
잠이 깨어 일어나도 나는 그 아이가 안쓰럽고 측은하게 느껴져
어른들의 긴 다리 폭에 맞는 화장실 구멍은
짧은 다리를 가진 내게 고통의 연속이었고
행여나 밑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의 대상이었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맡을 수 있는 똥냄새는
똥이 얼어붙는 겨울 전까지 진동을 했지
우리 집에는 월세나 전세를 사는 세입자들이 많아서
화장실의 똥이 수시로 찼어
그래서 흔히 말하는 '똥차'가 서너달에 한번씩 왔어
" 똥 차를 아니? "
길고 두께가 꽤 되는 호수를 어깨에 맨 여러 아저씨들이 와서
똥 호수를 넣기 전
수돗가로 가서 많은 물을 구멍 안으로 부어
그러면 똥이 물과 섞여 흐물흐물 해져
그때 호수를 구멍 안으로 넣고
똥을 빨아들이기 시작해
그럼 똥 호수가 마당을 구렁이처럼 꿀렁거리면서 스믈스물 기어 다녀
나는 아주 기겁을 했어
모든 작업이 끝나면 아저씨들은 호수를 매고 돌아가
엄마는 아저씨들에게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대접하고
고맙다고 했어
구멍에 똥이 가득 차면 행여나 내 다리나 엉덩이에 똥이 튈까 봐 싫었고
아저씨들이 똥을 다 빼가면 비어있는 똥구덩이가 무서웠어
아래로 떨어지면 기어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거든
나는 아저씨들이 반가우면서도 고맙고 무서웠어
아저씨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아침마다 수시로 가는 화장실은
어린 내게 정말 여러 감정과 생각들을 느끼게 해 줬지
우리 동네 화장실들은 대부분이 그랬어
친구네 집에 놀러 가거나
친한 언니나 오빠 아줌마네 집에 놀러 가도
화장실의 구멍이 동그란가? 직사각형인가? 정사각형인가? 깊은가? 낮은가?
어린 나는 바지를 내릴 때마다 짐작하고 헤아리느라
항상 아래를 바라봐야만 했지
그래서 나는 똥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지 않았어
똥에 익숙했고
똥은 사람과 생명이 있는 것들이라면 모두가 배출하는
생명의 증거품이라는 생각을 했지
중학교 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을 꺼려했지만
나는 즐거웠어
내가 청소하면 화장실이 정말 깨끗해졌거든
모든 아이들이 대충대충 청소를 하는 흉내를 냈지만
나는 양말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제대로 청소했어
재래식 화장실도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이까짓 양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 뭐가 더럽겠어?
내가 청소를 하면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다 감탄을 했으니까
내가 화장실 청소를 맡은 일주일간
우리 층 아이들은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어
나는 쉬는 시간에도 화장실에 가서 수시로 청결한지 점검하고 짬짬이 청소를 했으니까
오죽하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화장실 청소를 잘했다는 나를 추천해서
봉사상이던가 선행상인가를 받기도 했었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
지금은 장례 사업이 활발해서
우리는 죽어있는 사람을 보지 못해
오직 살아있는 사람만 볼 수 있어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도 보지 못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죽음이 임박해지면
죽음을 위한 초라하고 분리된 장소로 이동을 해야해
죽는 것이 죄가 아닌데
죽을 예정인 자와 죽은자는 숨겨져야 하고 목격되지 말아야 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편히 쉬던 곳
때때로 친구를 초대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장소를 떠나야 하지
그리고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해야해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죽음을 맞이해야 해
편안하고 익숙하고 애틋한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걸까?
어린시절 나는 대문밖으로 관이 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어
초저녁이나 깊은 밤이 되면
초상 등이 골목을 동네를 은은히 비추곤 했으니까
앞집 경화 할아버지
지물포 할아버지
쌀집 경진 아줌마
뽀삐 아줌마와 이모
나를 아끼고 귀여워해 주시던 아줌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욱이
며칠 몇 달 몇년을 앓고 계시다 들었는데
어느 날 관속에 담겨져 대문 밖으로 나가는 거야
갑자기 안 보여서 물어보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
서운한 마음에 그 집에 찾아가 보면
텅빈 마당 평상에 앉아 텅빈 눈으로 나를 보는 슬픈 아저씨를 보고
어색한 인사와 웃음을 보내기도 했어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잘 가'라는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는데
얼굴을 쓰다듬거나 손을 잡지도 못했는데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죽어서
저 좁고 기다란 나무 상자에 담겨 나를 우리 동네를 떠났어
나는 대문에 기대거나 전봇대에 숨어서 옥상에 올라가
그들과 준비하지 못한 일방적인 인사를 했어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어
마지막 인사를 다정하게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내게 미련은 미안함은 아련함은 덜했을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가끔 나는 그들이 그립고 눈물이 나기도 해
나는 지금도 자주 생각해
나는 어떻게 죽을까? 죽을 때 기분은 어떨까?
무서울까? 아쉬울까?
그런데 아직은 죽는 것이 너무 무서워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상상만 해도 무서워
가장 싫은 건 내가 죽고 나서 남겨질 사람들
그들이 떠나고 남겨질 나
더 이상 그들을 보거나 만지거나 말할 수가 들을 수가 없잖아
나는 생각해
만약 네가 떠나면
네가 떠날 때
나는 마지막 너를 편안하고 예쁘고 단정하게 치장해 주기로
너의 몸과 얼굴을 깨끗이 닦아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가장 부드럽고 고운 옷을 입혀주고
너에게 뽀뽀를 하고 쓰다듬고 그렇게 나는 충분한 이별을 할 거야
너를 내 품에 안고 따뜻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차갑고 매서운 외로운 죽음이 네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할 거야
절대 남의 손을 빌리지 않을 거야
내가 떠날 때
너도 나에게 그렇게 해주면 좋겠지만
그건 네 마음이고 내 욕심이겠지
네가 하고 싶은 데로 네가 편한대로 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죽었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이별의 방식을 선택해 나를 보내줘
그래도 괜찮아
죽을 때 네가 내 옆에 있어주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할꺼야
우리는 수시로 말을 하지
같은 날 같은 순간에 함께 죽자고 말이야
둘 중 하나만 남으면
혼자가 되면 너무 슬프니까
함께 죽자고 말이야
아직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