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님 자비님
나는 두 분이 좋아요
우리는 올해 가을 고전 읽기 모임에서 만났지요
세라님은 내 맞은편에 자비님은 내 옆에 앉아있었어요
나는 그때 조금 부끄러웠어요
읽고 가야 할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창피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이냐는 리더님의 질문에
“저는 책이 어려워서 다 읽고 나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음에는 다 읽고 나오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어머, 저도 이 책이 어려웠는데 책이 좀 어렵죠?”
세라님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어요
세라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저는 한 결 마음이 편해지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쩌면 세라님과 좋은 인연이 시작될 거란 느낌이 들었어요
자비님 기억하세요?
어떤 질문이었는지 잘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하지만 자비님의 대답은 생생히 기억나요
“저는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나 나이 든 분들에게서 그분들이 겪었던 전쟁이나
힘들었던 시절의 얘기들을 직접 듣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
저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돌아가신 부모님 나이가 들어 혹은 병이 들어 죽은 사람들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생산성이나 상품성이 없는 사람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쓸모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자비님의 애틋함이 느껴졌어요
‘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목구멍에서는 자꾸만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그 뜨거운 것들을 삼켜내느라
보이지 않는 책만 오랫동안 내려다보았어요
모임이 끝날 무렵 세라님은 자비님과 내 전화번호를 물었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톡을 보냈어요
우리는 시원하게 만날 것을 약속했지요
처음에 나는 겁이 조금 났어요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조금 겁이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점점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조금씩 내 마음을 열어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죠
먹구름 사이로 얇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나는 생각했어요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도 독서모임에 나간 나의 용기가 참 가상했다고
때로 그런 무모함이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구나
조금은 뻔뻔해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나는 이제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요
그리고 내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 기뻐요
나는 생각해요
나는 결심하고 다짐해요
세라님 자비님
두 분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세라님
그때 용기를 내서 내 전화번호를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자비님
나를 감동시킨 그 말을 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나는 나는
나갈까? 말까? 한 참을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나가버린 내 마음에 고마워요
오늘 아침 내가 마음껏 뽀뽀하고 안아줄 수 있도록 자신의 얼굴과 몸을 내어준 나의 딸에게도 고마워요
모두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