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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 소설가 Jan 05. 2023

2023년 1월 5일 목요일

세라님 자비님

나는 두 분이 좋아요

우리는 올해 가을 고전 읽기 모임에서 만났지요

세라님은 내 맞은편에 자비님은 내 옆에 앉아있었어요

나는 그때 조금 부끄러웠어요

읽고 가야 할 책을 다 읽지 못해서 창피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무엇이냐는 리더님의 질문에


“저는 책이 어려워서 다 읽고 나오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다음에는 다 읽고 나오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어머, 저도 이 책이 어려웠는데 책이 좀 어렵죠?”


세라님은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어요

세라님이 그렇게 말해주시니 저는 한 결 마음이 편해지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쩌면 세라님과 좋은 인연이 시작될 거란 느낌이 들었어요     


자비님 기억하세요?

어떤 질문이었는지 잘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하지만 자비님의 대답은 생생히 기억나요


“저는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나 나이 든 분들에게서 그분들이 겪었던 전쟁이나

힘들었던 시절의 얘기들을 직접 듣지 못하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


저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돌아가신 부모님 나이가 들어 혹은 병이 들어 죽은 사람들

노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생산성이나 상품성이 없는 사람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 쓸모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자비님의 애틋함이 느껴졌어요


‘이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목구멍에서는 자꾸만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그 뜨거운 것들을 삼켜내느라

보이지 않는 책만 오랫동안 내려다보았어요     


모임이 끝날 무렵 세라님은 자비님과 내 전화번호를 물었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톡을 보냈어요

우리는 시원하게 만날 것을 약속했지요

처음에 나는 겁이 조금 났어요

보기와는 다르게 나는 조금 겁이 있는 편이에요

하지만 점점 이야기를 나눌수록 내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조금씩 내 마음을 열어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죠    

먹구름 사이로 얇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나는 생각했어요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으면서도 독서모임에 나간 나의 용기가 참 가상했다고

때로 그런 무모함이 좋은 인연을 만들 수도 있구나

조금은 뻔뻔해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나는 이제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요

그리고 내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 기뻐요


나는 생각해요

나는 결심하고 다짐해요     

세라님 자비님

두 분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세라님

그때 용기를 내서 내 전화번호를 물어봐줘서 고마워요

자비님

나를 감동시킨 그 말을 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나는 나는

나갈까? 말까? 한 참을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나가버린 내 마음에 고마워요     


오늘 아침 내가 마음껏 뽀뽀하고 안아줄 수 있도록 자신의 얼굴과 몸을 내어준 나의 딸에게도 고마워요

모두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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