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이럴 줄 알았어.
화란이 그게 우리 강우를 보는 눈이 심상치가 않더니. 이 사단을 내는구나. ‘
연우의 집에서 말자는 윤희와 연우 모녀에게 모욕감을 느꼈고
당장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다.
“ 아줌마, 화란이 불러요. ”
“ 네? 갑자기 왜 화란이를? ”
“ 부르라면 불러요. 어서 ”
“ 네, 알겠습니다. ”
화란의 엄마 영자는 부엌으로 들어가 화란에게 전화를 했다.
“ 여보세요, 화란아. 얼른 안 채로 건너와. ”
“ 어, 나중에. 나 지금 과제해야 해. ”
“ 그거 나중에 하고. 사모님이 찾으셔.
너 뭐 잘못한 거 있어? 사모님 화 많이 나신 거 같은데. “
“ 아니, 내가 잘못할 게 뭐가 있어? ”
“ 와서 무조건 잘못했다 그래. 알았지?
이 추운데 너랑 나랑 쫓겨나면 갈 데도 없어. 이것아, 무조건 손이 발이 되게 빌어. “
“ 알았어. ”
화란이 안채로 건너왔다.
" 사모님, 저 왔어요. "
' 짝 ' 난데없이 말자가 화란의 따귀를 때렸다.
“ 너, 도대체 강우랑 지석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
“ 악~~~ 사모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
“ 그걸 몰라서 물어?
왜 너 때문에 우리 아들들이 싸움을 해? 빨리 말해. 무슨 일이야? ”
“ 사모님, 그게 무슨 말씀인지?
저 때문에 둘이서 싸운 적은. 그런 적은 없습니다. ”
“ 이게 어디서 거짓말이야?
강우 중학교 입학할 때쯤 너 때문에 지석이랑 우리 강우가 크게 싸웠다던데. “
“ 네? 그건 벌써 3년 전 일이에요. 그걸 이제 와서 왜? “
“ 그런 일이 있긴 한 거네. 왜 우리 아들들이 너 때문에 싸워?
그것도 주먹다짐까지 하고, 아주 크게 싸웠다던데. “
“ 지석이가 자꾸 추근대는 바람에
제가 그러지 말라고. 거절을 했는데도 자꾸 그래서 제가 화를 냈어요.
지석이가 저를 때리려고 하는 걸 강우가 보고 말리다가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
매번 귀찮게 쫓아다니고.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 따라다녀서. “
“ 닥쳐. 이게 어디서? 우리 지석이한테.
우리 집 귀한 장남이 왜 너 까짓것 한테 추근대? 그런 일은 없어.
불쌍해서 잘해주려고 한 거지. 그걸 추근댄다 고 해?
그러게, 불쌍한 것들한테 잘해줄 필요가 없다고 내가 누누이 말해도
내 말을 듣지도 않더니, 우리 지석이가 인정이 많아서 그렇지.
걔가 너를 왜 좋아하니? 착각도 유분수지.
너, 다시는 우리 지석이나 강우 앞에 얼쩡거리지 마.
네 엄마 도와준다고 이 집안에 들어오지도 마.
아니다. 너 당장 너희 엄마랑 짐 싸서 나가라.
불쌍해서 잘해주니. 아주 내가 가정부랑 그 딸한테 별소리를 다 듣네.
당장 나가. 어서 보기 싫으니까 “
“ 사모님, 잘못했어요. 사모님, 정말 잘못했어요.
우리 화란이가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지석이 도련님이 그러실 리가 없는데,
우리 화란이가 정신이 나가서, 머리가 어떻게 돼서 실수를 했어요.
제가 혼을 낼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갑자기 이 한 겨울에 나가라고 하면 저희 모녀가 어딜 나가겠어요?
모아둔 돈도 없는데.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화란이, 너 어서 이리 와. 무릎 꿇어.
얼른 사모님께 빌어. 잘못했다고 어서 빌어. “
화란의 엄마 영자는 말자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
“ 그래, 네가 잘못한 거 이제 알겠지?
아줌마, 아줌마도 얘가 잘못한 거 인정하지? ”
“ 네, 그러면요. 사모님. ”
“ 그럼 아줌마도 같이 무릎 꿇고 빌어야지.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도 같이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나? “
“ 그러면요. 그러면요. 맞는 말씀입니다요. 꿇어야죠. 당연히 꿇어야죠.
사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
“ 그래.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해.
화란이 너. 안채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내 말 명심해.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일하는 동안 별채에서 조용히 찌그러져 살아.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땐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야. “
“ 네, 알겠습니다. ”
말자는 문을 ‘ 쾅 ‘ 닫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우네 집에서 겪은 수모를 화란 모녀에게 다 풀고 나니 말자의 속이 후련했다.
“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아줌마, 안방으로 차가운 식혜 좀 가져다줘. ”
무릎을 꿇다 일어난 영자가 휘청 하다 바닥으로 고꾸라져 테이블 모서리에 이마를 찧었다.
영자의 이마에선 피가 흘렀다.
“ 얼른 별채로 가. ” 영자는 피를 닦으려던 화란의 손을 뿌리쳤다.
오랜 시간 무릎을 꿇다 일어나니 다리에 쥐가 나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마의 피를 휴지로 닦으며 영자는 안방으로 식혜를 가져갔다.
“ 왠 피야? ”
“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
“ 핏자국 카펫에 묻지 않게 조심해. ”
“ 네 ”
말자는 하얀색 실크 블라우스를 벗더니 영자에게 건넸다.
“ 이 실크 블라우스 세탁소에 맡겨. 조심해, 피 묻지 않게
아줌마 한 달 월급보다 더 비싼 블라우스야. 핏물 들으면 월급에서 깔 거야. “
“ 네, 사모님 조심하겠습니다. ”
영자는 안 방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들고 거실로 절뚝거리며 나왔다.
“ 엄마....... ”
‘ 쉬~~~~ ’ 영자는 괜찮다는 듯 화란에게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대었다.
화란은 눈물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엄마와 거주하는 허름한 별채로 향했다.
갈 곳이 별 채 밖에 없다는 사실에 화란은 자신과 엄마의 처지를 저주했다.
****************
별채
화란과 엄마가 매일 밤 잠을 자는 곳
이름만 별채이지 수 십 년 동안 창고로 써서 쥐와 벼룩 온갖 벌레가 들끓는 곳
영자가 말자에게 제발 내쫓지 말아 달라고
한 겨울, 이 곳에서 쫓겨나면 살 곳이, 갈 곳이 없다고
잘못이 없으면서도 무릎을 꿇고 빌어 지켜야만 했던 허름한 거처
천정에선 쥐들이 매일 밤 달리기를 하고,
목이 말라 불을 켜면 ‘ 후드득 ’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바퀴벌레에 놀라도
피곤에 절어 잠이 든 엄마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화란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더운 여름 재래식 화장실 똥 위에는
하얀 밥풀 같은 구더기가 ‘ 우굴 우굴 ’ 들끓어도
그것들이 ‘ 스멀스멀 ’ 화란의 종아리에 기어올라 기겁을 했어도
화란은 절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를 들은 자신이 더 초라해질 것 같아 화란은 소리를 집어삼켰다.
똥 더미 위를 사뿐하게 기어 다니며 화란을 올려다보던 쥐들
그 쥐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아 무서웠던 화란은 일주일째 똥을 참았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던 열 살 화란은
바지와 팬티를 내리며 쭈그리고 앉아 쥐들이 자신의 엉덩이를 물 것 같아
‘ 벌벌 ’ 떨면서도 푸세식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야 했다.
말자는 화란과 영자가 안 채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태풍이 불고, 눈발이 거세게 휘날려도, 똥차가 제 때 오지 않아 화장실의 똥이 찰랑찰랑 넘쳐
화란의 하얀 엉덩이에 닿을 정도가 되어도
모녀는 절대 안채의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영자가 팬티에 똥을 한 바가지 싸고 의식이 없던 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하던 중학교 1학년 화란이
엄마를 혼자 질질 끌어 밖으로 끌어내며
‘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 소리를 아무리 질러대도
안채 사람 그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밤새 엄마를 간호하고 지켜보느라 잠을 못 잔 화란에게
말자는 아픈 엄마 대신 화란이 와서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안채 아이들은 화란에게서 똥 냄새가 난다고 놀려댔고
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란은 아픈 엄마를 방에 눕히고 가슴 졸이며 집안일을 했다.
화장실을 간단 핑계를 대고 엄마가 괜찮은지 수시로 확인하고
멍한 엄마의 눈빛을 보면서 동치미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눈물을 참고, 소리를 지르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이를 악물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참아야 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참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가난함과 멸시, 더러움과 배고픔, 비인간적인 이라는 단어들과 친밀해져 갔고 길들여져 갔다.
이것저것 사업을 벌이다 부도를 내고,
수습도 하지 않고 자신만 죽어버린 무책임한 아빠
아내와 자식을 두고 죽어버린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남편이 남긴 빚을 다 떠맡게 돼 버린 영자는 매달 월급 거의 전부를 빚쟁이들에게 뺏기고 말았다.
월급날이 되면 귀신같이 알고 강우의 집 앞에 버티고 있는 사채업자들에게
영자는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야만 했다.
화란은 이대로 잠이 들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밤마다 기도했다.
희망 없는 내일은 모녀에게 사는 낙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루하루였다.
***************
화란이 대학교에 입학하던 작년 봄
영자의 월급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 중 하나가 화란에게 제안을 했다.
주현우
화란과 주현우 와의 질긴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너, 제법 인물이 반반하니 우리 가게에서 일 하자.
우리 가게에서 일하면 네 엄마 빚은 금방 갚을 거야.
너 같은 대학생 아가씨는 훨씬 더 돈을 많이 벌어. 팁도 후하고
잘하면 스폰이 생길 수도 있지.
우리 단골들은 다 거물들이라 인심이 아주 후해.
손님들이 너를 좋아할 거 같다. 도화살이 있어. 너는
물론 비밀을 유지해 줄 거야. 네가 졸업을 할 때까지, 손님도 우리도
지금부터 우리 가게에서 2년 동안만 일하면 그 빚 다 갚을 수 있을 거야.
아니, 갚고도 남지.
네가 사고 싶은 옷, 화장품, 가방, 액세서리, 등록금에 용돈, 책 값 다 마련할 수 있어.
어때? 해 보지 않을래?
네 엄마 이제 고생 좀 그만 시키고, 너도 편하게 살아.
딱 2년만 눈 감고, 우리 가게에서 일해라. “
“ 그 약속 지킬 수 있죠? ”
“ 그래, 네가 원한다면 계약서라도 써주지. ”
“ 알았어요. 내가 내일 가게로 갈게요.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요. ”
“ 잘 생각했다. ”
화란은 그 길로 주현우가 관리하는 유흥업소에 나가기 시작했다.
강남에 위치한 제일 잘 나간다는 텐 프로 중 비밀리에 회원제로만 운영되는 곳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화란이 출근하는 업소는 인물이 좋고, 명문대 여대생들만 있다는 업소로 유명했다.
재벌가나 법조계 이른바 힘 좀 쓰고, 돈 있고, 교양 있다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고급 술집이었다.
손님 접대나 중요한 거래가 있을 때 이곳에서 하면 계약이 잘 성사된다는 소문에
사람들은 비싼 비용을 치르더라도 회원이 되었다.
화란은 아침과 점심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업소에서 일을 했다.
매달 월급에서 빚을 제하고 나도 제법 큰돈이 남았다.
그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화란에게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감당했다.
몸매 관리를 하고, 남자들이 좋아할 얼굴로 성형수술을 하고,
옷과 구두, 가방, 화장품 등을 구입했다.
예쁜 대학생에서 점차 화려하고 세련되고 섹시한 여자로 화란은 변해가고 있었다.
화란은 엄마의 빚을 청산할 내년 봄까지 업소에서 일을 할 계획이었다.
내년 봄이면 대학교 3학년이 되고, 보통의 대학생들처럼
학교와 도서관, 학원을 다니면서 취업 준비를 하면서 보낼 수 있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도 화란은 과제를 하고, 공부를 해 좋은 성적을 유지했다.
내년 봄 교환 학생으로 중국이나 미국을 가서 공부를 하기로 계획을 했다.
장학금을 받고. 알바를 하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 연수를 다녀오고, 취업이 돼서 번듯한 직장인이 되면 엄마를 데리고 이 집에서 나와야지.
가난해도 무시당하지 않으면서 엄마랑 둘이서 살아야지.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더러운 이 집 안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거야. ‘
화란은 내년 봄, 혼자서라도 말자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었다.
‘ 취업을 해서 자리를 잡으면 엄마를 데리고 나오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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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의 엄마 영자가 긴 시간 무릎을 꿇고 일어나다
쥐가 난 다리 때문에 쓰러져 테이블에 이마를 다쳐 피를 흘리던 날
말자가 영자에게
피 한 방울이라도 블라우스에 묻으면 월급에서 블라우스 값을 제하겠다고 엄포를 놓던 날
화란은 별채로 향하면서 어학연수니 교환학생이니 이딴 것들을 모두 포기했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목표는 말자의 모든 것을 빼앗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 금 말자, 내가 니 모든 것들을 다 빼앗을 거야.
우리 모녀가 네 앞에서 무릎을 꿇었던 오늘처럼
반드시 너와 니 자식들이 나와 우리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해 줄게. ‘
“ 너, 괜찮아? ”
별채 현관문에 앞에 서서 화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강우를 보면서 화란은 혼잣말을 했다.
‘ 최강우, 미안하다. 이제 널 이용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