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의 로망

일상 속 작은 로망

by So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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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탈 때면 습관처럼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그 짧은 이동 시간 동안 나는 창밖을 보는 걸 좋아한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옷차림을 구경한다. 어제 없던 가게가 새로 생기고, 익숙했던 간판이 사라진 자리엔 또 다른 모습이 들어서는 걸 보면, 세상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커플들이 눈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친구들은 종종 농담처럼 “커플 보면 괜히 질투 나지 않냐”고 묻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연인이든, 연세 지긋한 부부든,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들이 보여주는 익숙하고도 다정한 장면이, 왠지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퇴근길 버스 안, 정류장에서 한 남자가 버스에 오르며 창밖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 문이 닫히고 출발하려는 찰나,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손을 흔들며 서로를 향해 웃었다. 그 짧은 장면이 오래도록 눈에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에게도 저렇게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내 일상을 배웅하고, 내가 무사히 돌아오는 걸 기다려주는 사람. 단순한 손짓 하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할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간질거렸다.


돌아보면 나는 늘 누군가를 배웅하는 쪽이었다.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버스를 따라 뛰며 손을 흔들던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장면은 점점 사라졌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어쩌면 ‘배웅’이라는 여유를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보다 효율적으로 흩어지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담아두는 일이 익숙해졌으니까.


그날 창밖의 커플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작은 로망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유리창 너머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그 장면은 단순한 이별의 인사가 아니라, “당신의 하루를 함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 창 너머에, 내게 손을 흔드는 누군가의 미소가 보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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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어요.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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