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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Dec 17. 2023

수신인: 엄마

딸의 고백

‘엄마’라는 단어는 대부분의 딸들에게 눈물버튼이 아닐까 싶다.

어릴 적 수련회나 수학여행에 가서 캠프파이어를 하며 촛불 들고 ‘엄마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흑흑.’ 하며 울었던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엄마는 더욱 특별한 존재이다.

나 역시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눈물버튼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큰 의미로 엄마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 내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엄마가 젊은 나이에 나를 낳은 편인데, 어릴 때는 엄마가 젊은 엄마인 게 괜스레 자랑스럽고 막연히 엄마의 20대부터 현재의 나이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공유하였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가 지나온 20대, 30대를 내가 고스란히 겪으며 참 어린 나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엄마가 힘들었을 그 시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라면 못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어리고 어리숙한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엄마와 나는 마치 찍어낸 듯 감정선부터 취향, 사상, 모든 것이 비슷하여 죽이 참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를 엄청 많이 하는데 별 잡다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어릴 적 이야기, 친구이야기, 고민상담, 진로상담 등등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다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슨 일이 있건 엄마와 대화를 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마음속 갈등이 해결이 된다.

어쩌면 이런 대화를 통해 엄마가 겪었을 시행착오들을 내가 덜 겪고 수월하게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엄마에게 말하곤 한다. 엄마가 걸은 그 길을 그대로 걸어 나가고 싶다고. 옆에서 등대가 되어 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야 클 만큼 크고 엄마에게도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는데, 요즘의 엄마는 많이 약해졌다. 몸도 마음도.

요즘 부쩍 ‘힘이 부치는 걸 보면 나이가 들긴 들었나 봐’, ‘힘들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어렸던 엄마로 남아있고 지금도 젊다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어린 내 생각과 같지 않은가 보다.

하긴... 나도 몇 년 사이에 지난 내 몸의 변화들, 모습들을 보며 나이가 드는 것을 느끼는데 엄마한테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위로를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하지만 딸로서, 정말 마음 아픈 말들이다.

나는 이제야 어른이 되어 엄마를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었는데 엄마가 약한 소리를 하는 게 마음이 아파,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떠올리고 위로할 말들을 찾는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젊었던, 아직도 젊은 엄마의 자존감 끌어올리기 프로젝트.

일단 엄마의 취미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있다.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는 것을 하며 무엇이든 엄마 스스로를 위해 시간을 쓰고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엄마와 요즘 유행하는 맛집도 가고 핫한 곳을 열심히 찾아 방문해보고 있다. 엄마 친구가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요즘 젊은 애들이 가는 곳에는 잘 못 가겠다고. 괜히 민폐 같아서 가지도 못하겠다고. 그 얘기를 듣고 콧방귀를 뀌며 엄마를 데리고 열심히 전시회며 맛집이며 핫플에 가보며 트렌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평생을 넘게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을 나의 엄마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가련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약한 소리라니.

딸로서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앞으로도 엄마는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야겠지만, 그 밖의 엄마 스스로의 삶 또한 즐길 수 있게 나 역시 등대까지는 되지 못할지라도 손전등 같은 딸이 되고 싶다.

나는 엄마가 걸어온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고, 엄마는 내가 엄마를 위해 만들어 나갈 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나란히 손잡고 걷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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