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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Jan 12. 2024

혈중마라농도

진지한 엄마와 의아한 나의 대화

언제부턴가 마라를 안 먹으면 간첩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마라에 중독되어 있고, 마라탕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없어지고를 반복하면서 밀키트도 엄청나게 발전하여 집에서도 마라를 해 먹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런데 그 간첩이 바로 나! 나는 마라를 한 번도 안 먹어봤다. 처음에는 그 냄새가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안 먹어 본 사람이 없는 이 시점에 새로 도전하는 것이 굳이? 라는 생각이 들어 안 먹어본 채로 살고 있다.

내 동생 둘은 마라를 미친 듯이 먹는데, 사실 그 둘을 보면서 질린 것도 한몫한다. 냄새로 먹을 만큼 다 먹어본 기분이랄까?

매번 마라탕을 시켜 먹고, 밖에서도 사 먹는 동생들을 보며 엄마가 큰 결심을 하였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맛있게 맵게 나왔다는 K-마라 소스를 구입하였다. 조금 더 건강하게 마라탕을 먹이겠다는 엄마의 마음에 엄청 검색해 보고 성분을 따져본 후 드디어 결제 완료. 그리고 도착!

꼭 생긴 것은 기내식에서 받던 짜 먹는 소고기 고추장의 큰 버전으로 생긴 튜브형 소스였는데 사골 육수에 마라 소스를 넣고 샤부샤부처럼 야채 가득, 버섯 가득, 고기 가득 넣어서 첫째 동생에게 해주고는 합격 사인을 받았나 보다.

의기양양해진 엄마는 입맛이 매우 까다로운 둘째 동생에게도 똑같이 해주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들어간 재료가 파는 것보다 더 좋네부터 시작하여 한국인 입맛에 딱이라며... 혹시나 안 좋은 말이 나올까 봐 눈치를 살피며 열심히 좋은 얘기를 하다가 나온 한마디.

‘이게 혈중마라농도도 채워준대!’

옆에서 듣던 나는 혈중마라농도..??? 내가 아는 그 말이 맞나 싶던 중 엄마가 말을 덧붙였다. 마라 소스를 파는 상세페이지에 좋은 점들과 함께 혈중마라농도도 채워준다고 했다며 몸속에서 생성되지 않는 무언가를 마라가 채워주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일단 캡처해 놓았다고, 연구를 해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술 마시는 사람들이 술을 먹기 위해 합리화하며 혈중 알코올 농도가 부족하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맥락 같은데, 너무 웃겼지만 일단 웃음을 꾸욱 참고 네이버에 ‘혈중마라농도’를 찾아보았다.

우리 엄마, 귀여워도 너무 귀엽다.

일단 좋다고 하니까 혈중마라농도 채워주는 것도 몸에 좋은 물질을 채워주는 것으로 알고 있었나 보다.

너무 심각하게 마라 농도를 채워준다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그 표정이 자꾸 생각이 나 피식피식 웃게 된다.


혈중마라농도가 무엇인지 심각한 엄마와 의아한 표정으로 검색하여 알려주는 나,

우리 가족의 일상은 매일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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