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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Jan 23. 2024

말의 뉘앙스

사소하지만 큰 한끗 차이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기분이 다르다는 뜻이다.

같은 말을 해도 말씨와 어투에 따라, 사소한 단어 하나에 따라 존중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대화의 결을 좌우하는 것은 어감의 미묘한 차이, 말의 뉘앙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뉘앙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외출하였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버스에 막 타서 자리가 널널하여 앞쪽에 앉은 참이었다. 양손에 짐이 가득이어서 짐을 추스르고 있던 중 앉은 내 옆에 누군가가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짐을 다리에 잔뜩 올려놓고 고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옆에 서있던 분이 대뜸 ‘여기 노약자석인데.’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사작용처럼 ‘아! 네! 죄송합니다.’ 하고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고맙다 뭐 하다 어떤 말도 없이 자연스럽게 앉으시는 그분을 보고는 약간 무안하고 멋쩍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자리를 찾아 앉을 생각도 못하고 짐을 잔뜩 든 채로 일어난 자리 근처에 서서 덜컹거리는 버스에 덜렁덜렁 흔들리며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처음부터 뒤쪽에 자리가 계속 남아있었다. 그리고 내가 앉았던 자리가 노약자석도 아니었다. 그나마 옆에서 그걸 지켜본 여성분이 대신 꿍얼꿍얼 해주셔서 위안을 삼으며 덜컹이는 버스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서서 올 수 있었다.)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긴 하였지만 만약 같은 상황에서 나였다면 어떻게 어떤 말을 건넸을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나이를 막론하고 사람은 누구에게든 크고 작은 도움을 청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무례하지 않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며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중요한 것은 말 자체가 아니었다. 전하고자 하는 말과 언어 그 자체보다 그 말에 묻어나는 뉘앙스, 말에서 느껴지는 진심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표현하는 방법에 나의 진심이 담겨 다른 말투가 나오고, 다른 언어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버스에서 겪은 일도 사실 어르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말을 한 것이고, 내가 당연히 알아서 일어나야 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로 이야기해 주셨더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라도 덧붙여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하나를 배우게 된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의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이런 상황에서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꼈기에,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상대방에게 내가 느꼈던 기분을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다른 더 나은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다.

그렇기에 버스에서 겪은 일이 마냥 무안하고 멋쩍었던 일로 끝나지 않고 깨달음을 얻고 나 스스로 생각해 보게 된 시간으로 남았다.


나는 말의 뉘앙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같은 말이어도 뉘앙스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알기에 더 신중히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는 편이다. 분명 말을 고르고, 에둘러 표현하는 일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역지사지로 내가 들었을 때 기분 좋을 말을 하고 그런 뉘앙스로 표현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웃으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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