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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Jan 27. 2024

나는 안 당할 줄 알았지

헬스장 먹튀 사건

살기 위해 운동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필라테스, 수영, 하키, 탁구, 스피닝 등등 이것저것 많이 해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흥미를 잃고야 마는 애증의 운동.

3년 전쯤 필라테스를 한창 하다가 선생님의 담배냄새(...)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새로 등록하게 된 운동이 피티였다. 집 앞에 있어서 딱이었고, 살기 위해 하는 운동 제대로 된 자세로 근육 좀 붙여보자 싶어서 상담을 받고 바로 등록을 하였다.

제대로 피티를 받으며 운동하는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선생님이 어떤지 비교할 대상이 없었고, 그냥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선생님과도 친해져서 그런지 잡담 시간이 좀 늘긴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추근거림도 좀 있었지만, 그건 그냥 무시했더니 다른 회원과 사귀더라.(?)

아무튼 재등록의 재등록을 하며 거의 2년 가까이 운동을 계속했다. 피티 가격이 저렴하지 않기에 웬만하면 운동을 배워서 혼자 한다고들 하지만 혼자 운동하면 모든 것이 리셋되어 버리고, 절대 운동하러 나가지 않을 나를 알기에 어쩔 수 없이 채찍을 선생님한테 쥐여 줄 수밖에 없었다.

2년여간을 운동하며 별의별 가십을 다 듣게 되었다. 대표 성격이 이상하다, 새로 온 선생님이 어떻다, 헬스장 월세가 얼마다, 지금 소송이 뭐가 걸려 있다 등등. 그때는 운동하며 잠시 숨 고르는 시간에 듣던 이야기들이라 헥헥거리며 듣는 게 다반사였는데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여느 날과 똑같이 수업을 받으며 또 대표가 어찌어찌해서 센터에 건물주가 찾아왔네 어쩌네 이야기를 듣고, 이틀 후 수업이 있는 그날에 일이 터졌다.

오전에는 하수관이 터져 수업을 못한다는 연락이 오더니, 오후에 갑자기 센터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환불을 해주겠다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웠지만 들었던 이야기들도 있기에 계좌를 알려드리고, 갑작스러웠을 선생님께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이제 끝났나 보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며칠이 지나도 환불을 안 해주는 것이다.

선생님을 재촉해 보아도 대표가 연락을 안 받는다고, 어느 날은 곧 환불해 준다고 하였다고, 급기야는 따로 민사소송이나 고소를 하라는 말을 하였다.

소송을 하고 고소를 하는 것이 어디 가서 껌 사 먹으라는 말도 아니고... 팀장이었던 내 담당 선생님이 자신의 밀린 월급은 받아놓고 회원들의 돈은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배신감이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물어봐도 대표와 연락할 수 있는 번호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곧 해결될 거라고 전달받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에 지쳐 포기하고 있기를 1년이 지났다.

가끔 못 받은 돈(거의 180만 원)이 생각나 열받다가도 잊어야지 하며 지내기를 1년, 우연히 망한 센터에서 잠깐 일하다 나간 프리랜서 선생님의 인스타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선생님도 여태 ‘먹튀 사건’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더라. 대표는 들었던 성질머리대로 팀장을 통해 전하라며 프리랜서 선생님을 협박하고 있고, 프리랜서 선생님은 나름 팀장에게 여러 번 바른 길로 가기를 권유했던 것 같은데 계속 무시당하고.

그래서 그 글을 보고 열심히 메시지를 보냈다. 그 센터에 다녔던 회원임을 밝히고는 돈 받기는 틀린 것 같지만 팀장과 대표가 여전히 내통하며 회원들을 기만하는 것이 화가 난다고. 저런 사람들이 다른 곳에 가서 또 운동을 가르치고 아무 일 없던 듯 지낼 것이 화나고 씁쓸하다고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 ‘헬스장 먹튀’ 사건에서 못 받은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무리 팀장이 대표와 연락하고 있는 걸 알고 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민사, 고소, 뭐든 하면 하겠지만 내가 잃는 것이 더 많기에 그냥 손을 놓고 있다.

이번 경험으로 나는 피티, 필라테스, 헬스장 이런 것 전부 다 불신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선생님, 회원들에게 진심인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믿기까지 꽤나 오래 걸릴 것 같다.


어느 상황에서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하는 일에서 말과 행동, 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책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비싼 값을 치르고 사람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고 신뢰감, 책임감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덧붙여 헬스장 등록은 할부 아니면 작은 단위로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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