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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Feb 01. 2024

향수병

향수, 병

다들 ‘향기’하면 떠오르는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나는 향기를 생각하면 어릴 적 엄마가 '코코샤넬' 향수를 뿌리던 그 상황, 향수 색깔, 향수병의 형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향기가 먼저 떠오른다.

코냑 같은 짙은 갈색에 네모나게 각진 그 향수는 색깔만큼이나, 각진 모양만큼이나 짙은 향기가 났다.

나에게는 그 향기가 어른의 향기처럼 느껴졌고, 어른이 되면 이 짙은 향기가 향기롭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던 것 같다.


성인이 되었다고 바로 짙은 향기가 향기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향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에게서 풍기는 좋은 향기를 좋아한다.

향기에 예민하고 민감하기도 하지만, 좋은 향기가 나라는 사람을 표현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욱 향기에 신경 쓰게 되었다.


수많은 향수와 수많은 향기를 지나쳐왔다. 달디 단 꽃향기 가득한 향을 뒤집어쓰기도 하였고, 포근한 비누향으로 나를 표현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어느덧 나도 어른이 되었는지 어른 향, 엄마만 쓸 수 있는 향이라고 생각하던 ‘코코샤넬’의 향기가 향기롭게 느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직은 나에게 맞지 않는 향이었는데 코냑같이 짙은 이 향기가 나와 잘 어우러지다니. 왜인지 모르게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새삼 나이 먹는 것이 두렵지 않아졌다. ‘이 향기가 좋아?’하며 ‘이건 엄마만 어울리는 향기야’하고 확신하던 향수들을 나이 먹으며 자연스럽게 뿌리게 되고, 그 향기를 나만의 향기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기대되고 설레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집에 가득한 향수들은 나의 과거이자 현재, 그리고 미래이다. 내가 한 때 좋아했던 향들, 나에게 잘 어울렸던 향들은 가끔 기분을 환기할 때 뿌린다. 요즘 뿌리는 향수는 내가 한때 어른의 향이라며 ‘윽’하던 예전보다 조금 향기가 짙어진 향수들이고 남은 향수들은 아직은 손이 잘 가지 않는 엄마에게 잘 어울리는 향수들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향기에 사랑에 빠져 나의 향기로 만들게 되겠지.


가끔 ‘나는 무슨 향기로 기억될까?’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시절들을 열렬히 수많은 향기로 가득 채웠던 나에게서 떠오르는 향기는 무엇일지, 나는 무슨 향기로 기억될지 궁금해졌다.

사람은 찰나의 순간 맡았던 향기만으로도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나의 향수(香水)를 맡고 먼 훗날 나에 대한 향수(鄕愁)를 가져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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