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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와르 Feb 27. 2024

갑과 을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

갑과 을.

이 관계성은 문자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도, 말로 하지 않아도 은연중에 성립되곤 한다.

연인, 친구, 점원과 고객, 어떤 관계를 막론하고 물리적, 신체적, 사회적, 심리적 우위를 점한 사람은 손쉽게 ‘갑’이 되고, ‘갑’보다 덜하거나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느새 ‘을’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인간관계에서는 주로 더 참고, 더 배려하고, 더 마음이 큰 사람이 약자가 된다. 상대방은 ‘갑’이 되어 나의 여린 진심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이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든다.


얼마 전, 백화점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한동안 눈여겨보던 물건을 사고 싶어 마음먹고 매장에 들어갔다. 워낙 인기 많고 사람이 늘 넘쳐나는 브랜드여서 그런지 복잡하기도 하였지만,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점원의 태도였다.

내가 원하는 물건이 없어 여러 번 방문하게 되었는데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것이라도 살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보며 한숨 쉬며 낙서하던 직원, 그다음에는 원하는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니 아예 입구에서부터 없다며 문전박대하던 직원, 결국 구입을 하게 되었을 때 상품을 훑어보는 나를 보며 한숨 쉬며 기다리던 직원까지...

물건을 사는 것은 나인데 갑질당하는 이 기분은 뭔지, 내 돈 주고 원하던 물건을 사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화룡정점은 따로 있었다. 안면이 있던 고객이었는지, 아니면 바로 구매를 할 것 같은 고객이었는지, 나의 응대가 끝나갈 때쯤 새로 들어온 고객에게 살갑게 굴며 엄청나게 깍듯하게 대하던 직원의 태도였다.

나에게는 ‘갑’처럼 굴다가 다른 사람에게는 ‘을’을 자처하는 모습에 황당함과 무안함을 가득 안고 나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또 다른 어떤 날에는, 발레 주차 대기실에서 짐을 맡기며 기다리고 있던 중 쩌렁쩌렁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차량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발레 요원에게 자신의 차가 얼른 나오지 않는다며 왜 이렇게 느리냐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속으로 ‘그럴 거면 어제 오지 그랬냐...’하는 생각을 하며 괜한 사람한테 화풀이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앞에 먼저 대기하던 사람이 많아 차가 얼른 나오질 않았는지, 여러 번 발레 요원들을 재촉하며 늦었다고 화를 내는 것을 들어야 했다.

결국 차가 나왔는지 차가 있는 곳까지 안내받으며 걸어가면서도 계속 고압적으로 화를 내고 차 문을 쾅 닫고는 쌩하니 가버리는 모습을 보고 ‘갑질 제대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 말고도 카페나 백화점에서 일하며 어쩔 수 없이 내가 ‘을’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기억, 일명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대표가 오래 일한 나와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잘랐던 기억, 시킨 일을 다 했는데 갑자기 트집을 잡으며 돈을 안 주려고 하여 신고를 하네 마네 전화를 걸어대고 문자를 마구 보냈던 기억 등 ’갑과 을‘의 일화들(악몽)은 밤이 새도록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내가 했던 생각, 의문은 단 하나였다.

‘우리가 이 상황을 벗어나 다른 상황에서 언젠가 또 만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행동을 하는 걸까?’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인데 이렇게 행동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잠깐의 상황의 ‘갑과 을’ 관계는 영원하지 않은데 말이다. 너무나도 쉽게 변하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인 것이다.

여기서 갑이었던 나는 저기에서 을이 될 수 있고, 같은 상황이어도 내 상황과 처지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가볍디 가벼운 상태에 흠뻑 취해 누군가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위를 점하였다고 자만할 일도 아니다.


요즘 상담 전화를 걸면 처음 나오는 말이나, 상점에 들어가면 계산대 앞에 적혀있는 글에 마음이 많이  가닿는다.

‘응대하는 직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어떠한 관계에서 누군가를 대할 때 ‘나의 엄마, 아빠라면’, ‘나의 딸, 아들이라면’, ‘나의 가족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다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벗어나 조금은 수평적이고, 따뜻한 말과 마음이 한 번이라도 더 오가는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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