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아이템 기획도 재미있었고, 글 쓰는 일도 괜찮았고, 바람 쐴 수 있는 기자 미팅도 대체로 좋았다. 그런데 난 왜 퇴사했을까?
읍소하다. [동사]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하소연하다.
당시 ‘읍소도 전략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읍소’는 매우 중요했다. 고객사의 좋은 기사를 매체에 보도해주는 사람은 기자였고, 부정 기사를 싣는 사람도 기자였다. 그래서 기자는 갑 오브 갑, 홍보대행사는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뉴스 가치가 있는 단신/기획과 같은 긍정적 기사는 출고해달라고 부탁 정도만 하면 되는데, 문제는 부정적 뉴스가 실릴 때였다. 오보가 아닌 부정적 기사가 실제와 같을 때가 문제다. 기사 내용을 어떻게든 완화시켜야 나의 고객사가 피해를 덜 본다.
온라인 기사의 경우 기자가 직접 수정할 수 있는데, 가판에 출고된 지면 기사는 데스크 확인을 받아야 수정할 수 있다. 간혹 해당 매체에 광고를 하며 조율하기도 했지만, 조율이 어려운 경우 찾아가 기사 표현을 완화해달라고 읍소했다. 온라인 기사는 수정을 통해 타격을 완화할 수 있지만, 방송의 경우 전 국민이 시청자이기 때문에 파괴력이 엄청나다.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기사를 쓰는 사람이니 좋은 기사만 쓸 수는 없다. 잘못된 부분은 알려야 하고, 아픈 곳을 찌르기도 해야 한다. 기자는 그저 보도 원칙을 지켰을 뿐인데, 나의 고객사가 입는 타격 때문에 내 마음까지도 너덜너덜 해진다. 고객사는 나한테 기사 좀 내려달라고 하고, 기자는 본인 이름으로 쓴 기사를 수정하라고 하니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이렇게 고객사를 대변해 읍소하다 보면 내 자존감도 낮아질 때가 있었다.
기업에게 뉴스 기사란 매우 중요하다. 개인 소비자에게 다가가기에 디지털 미디어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뉴스는 여론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IR, PI, 투자, 평판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기사 한 줄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내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을 때 언론 홍보를 손에서 놓을 수 있던 이유는 읍소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