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를 읽고

by 소진영

일주일째 습기를 머금어 질겨진 창호 밖으로 빗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처마 밑에서는 빗물이 모여 처음엔 질퍽이는 흙 소리를 내다 이윽도 패인 구덩이로 작은 못을 만들어

구슬 떨어지는 양 맑은 소리가 났다.

이런 날엔 어디에서 온 지 모를 달팽이들이 몸을 적시러 하나둘 오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몸을 드러냈기에

낮잠에 함께든 엄마의 품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녹이 슬었는지, 애초에 아귀가 맞지 않는지

매끄럽지 못하게 끼이고 거리는 고리 손잡이와 창호문 경첩 소리를 억눌러가며 마루로 나갔다.

마당을 바라보고 방들은 길게 늘어져있었고

방문들이 놓인 길고 얇은 어두운 나무 마루가 복도가 되어주었다.

오랜 장마로 습기를 머금은 나무는 가벼운 아이의 발걸음에도 끼이고 거리며

뻐근한 몸을 눌려 시원하다는 듯 소리를 내었다.

저 멀리 가장 먼 방에서 왜소한 나의 외할머니는 -일어난냐-며 마른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괜히 잠을 깨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맞지도 않는 고무신을 턱턱 끌며 마당으로 나갔다.

겁주듯, 겁먹은 듯 짖어대던 개가 있던 옆집 마당과는 살뜰히 콘크리트가 발린 돌담장이 있었는데

돌 담의 튀어나온 곳마다 매달린 달팽이들을 떼어보다가

이윽고 집으로 가져가도 더 이어나갈 놀이가 없는 것을 깨닫고 갉아먹을 푸성귀가 있는

마당 한편 마른 대나무 잎 위로 하나둘 옮겨주었다.

내 나름으로는 선의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달팽이들 입장에서야 비 오는 중의 날벼락이었을 수도 있겠다.

잎새에 매달릴 정도만 몸을 꺼내어놓다, 이윽고 더듬이를 뻗어 주변을 살피는 달팽이를 보며 흐뭇하던 차에

익숙한 목소리가 부뚜막에서 호령을 치고, 검은 털 뭉치가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 아래 작은 구멍으로 사라졌다.

아마 비를 피해 숨어든 쥐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외할머니는 아궁이에서 구워진 햇감자와

눅눅하고, 덩어리 진 흑설탕을 양손에 들고 비척거리며 노나 먹자며 나를 사랑방으로 부를 것이다.

신호가 쉽게 길을 잃는 탓에 노이즈가 심한 텔레비전에서는

이 시간 또 다른 시골을 취재하고 있는 리포터가 활기차게 말을 이어나갈 것이다.

틈이 날 때마다 풀질을 덧대어 손가락으로 긁어 떼어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한지가 붙은 벽과,

앉는 자리임을 알려주 듯 군데군데 그을려진 장판 바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답답하고, 쾌쾌하지만 지금은 맡을 수 없는 외할머니 집 냄새가 가득할 것이다.

식은 보리차와 감자를 먹으며 엄마가 깨지 않을 정도로

나는 외할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더라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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