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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Mar 20. 2020

#2  바이욘 사원의 그림 문자

메시지는 무엇으로 전해질까?

“회화 문자는 우리들을 미래로 데리고 간다. 1972년에 발사된 무인 우주탐사선 파이오니아 10호는 지금은 이미 태양계를 떠나 우주공간을 여행하고 있는데 이것에는 인류로부터의 메시지로서 금칠한 알루미늄판에 나신의 남녀 그림이 새겨져 있다. 이 남자는 한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인사할 때에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또한 탐사선이 만날지도 모르는 미지의 생명체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파이오니아 10호는 또한 출발 시 우리들이 도달한 과학기술상의 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일련의 상징까지도 가지고 갔다.”

-『문자의 역사』, 알버틴 가우어 저, 강동일 역, 도서출판 새날(서울: 1995), 54.


파이오니아(Pioneer) 10호 알루미늄판에 그려진 인류의 메시지. ⓒpublic domain.



신의 도시 앙코르 톰 한가운데 자리한 바이욘(Bayon) 사원은 ‘크메르의 미소’로 유명하다. 이 사원에는 거대한 얼굴이 4면에 조각된 탑 50여 기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고요하게 서 있고, 탑을 채운 수많은 얼굴이 앙코르 톰 중심에서 사방을 샅샅이 지켜보고 있다.


거대한 얼굴로 가득 찬 바이욘 사원 ⓒ2017. Nohsungil


이 사원을 지은 왕은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1122-1218)이다. 지방 출신인 그는 앙코르 왕국의 내전을 틈타 톤레삽 호수(Tonlé Sap)로 참파(Chăm Pa) 왕국이 침입하자 그들을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그가 통치했을 때의 앙코르 왕국은 전성기를 맞이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수로 등을 정비하여 100만 명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도시 앙코르 톰을 건설했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커서 누구든 병을 치료할 수 있도록 일종의 병원인 니악뽀안(Neakpean)을 짓기도 했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조각상은 마치 생전의 인품을 나타내듯 고요히 눈을 감은 채 살짝 미소를 짓고 있다. 바이욘 사원의 거대한 얼굴들도 그를 꼭 닮은 미소를 띠며 웅장하지만 무겁지 않게, 위엄 있지만 차갑지 않게 매일 사람들을 맞이한다.


ⓒ2017. Nohsungil


바이욘 사원에서는 인자한 미소도 볼만하지만, 사원을 빙 둘러 회랑에 새겨진 부조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돌을 운반하고 조각하는 것부터 바이욘 사원을 짓는 장면, 물고기와 악어가 가득한 톤레삽 호수 위에서 참파 왕국과 크메르인들이 맹렬하게 싸우는 장면, 귀족부터 백성과 중국인에 이르기까지 앙코르 톰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도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앙코르 와트 제1회랑에 힌두교 신화와 전쟁 장면이 압도될 정도로 웅장하게 새겨져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앙코르 톰 부조는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어서 정겹다.


참파 왕국과의 수상 전투 장면. 물속에 빠진 시체와 악어, 물고기가 실제처럼 새겨져 있다. ⓒ2019. Nohsungil
닭싸움 장면. 왼쪽이 크메르인, 오른쪽이 상투를 튼 중국인이다. 내기를 하는 듯한 상황 묘사가 생생하다. ⓒ2017. Nohsungil
학교 또는 시장으로 해석되는 그림. ⓒ2019. Nohsungil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부조 중에는 여러 장면으로 해석이 가능한 그림도 있었다. 가이드 생활을 오래 한 그조차도 당시의 문화를 모르기에 추측만 할 뿐이라 했다. 너무나 궁금했다. '이 장면은 학교와 시장 중 무엇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장면을 그린 걸까?'

그림은 인류라면 누구나 시공간을 넘어 소통하게 하는 매우 원시적인 도구이다. 하지만 이런 모호한 해석이 등장해 진실을 알고 싶어질 때면 문자의 존재가 간절하게 필요해진다. 크메르인들은 그림에 메시지를 담았으나 그들과 나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골짜기가 놓여 있다.



크메르인들은 후세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회랑을 한 바퀴 돌고는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앉아 멍하니 사원을 바라보았다. 바이욘 사원을 만든 크메르인들은 왜 이런 일상마저 돌에 새겼을까? 신의 도시 한복판, 가장 중요한 사원에다가 힘겹게 돌을 깎아가며 말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왜 부조에 백성들의 소소한 삶을 그리도록 했을까? 왕의 강함과 위엄을 보이려 했다면 왕의 업적을 새기기에도 자리가 부족했을 텐데. 도대체 크메르인들은 후세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을까?

800여 년이 흐른 뒤에야 그 장면을 마주하는 이방인인 내가 그들의 의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바이욘의 얼굴처럼 눈을 감고 상상해볼 뿐... 부조의 장면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더위에 지친 한 가이드가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거대한 얼굴이 '누구나 쉬어가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2017. Nohsungil


그 옛날 북적이는 앙코르 톰을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여러 나라에서 온 물건을 사고파는 활기찬 시장 풍경, 피 튀기는 톤레삽 호수 위의 전쟁과 한쪽 구석에서 물고기로 가득 찬 그물을 건져 올리는 어부들, 도시를 오가며 바이욘 사원에 들러 기도하는 사람들... 희로애락이 담긴 장면에 인간미가 솟는다. 부조에 새겨진 장면이 문자로만, 단순한 정보로만 적혀 있었다면 과연 내가 그들의 생김새며 옷차림이며 움직임, 표정까지도 그려볼 수 있었을까?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앙코르 왕국에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면 신성한 산 '프놈 쿨렌(Phnom kulen)'에서 '데바라자(Devaraja)' 의식을 치른다. 데바라자는 '신왕(神王)'이라는 뜻으로, 새로운 왕은 신(Deva)이자 왕(Raja)이 되어 나라를 다스릴 의무(Dharma, 법)를 수행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백성은 그 신왕에게 복종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할 의무를 따른다.


앙코르 왕조의 오랜 힌두교 전통과는 다르게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이 '신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른다. 오랜 내전과 외적의 침략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전쟁을 끝내고 마침내 왕이 되어 이루고 싶었던 것은 백성들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이 아니었을까? 나무 열매를 따먹고, 솥에 돼지를 구워 먹고, 아이를 낳고 때론 닭싸움에 돈을 걸기도 하는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 말이다.



메시지는 마음으로 전해진다


바이욘 사원의 그림을 보며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문화적으로든 언어적으로든 그들과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깨달은 것 하나가 있다면 메시지는 마음으로 전해진다는 사실. 마음을 나누고 싶다면 소통을 위한 도구는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말과 글이 통한다면 그것으로, 그렇지 않다면 그림이나 몸짓으로...

수백 년이 흘렀지만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에게도 그들의 삶이 전해지고 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크메르인들이 후손에게로, 또 나와 같은 이방인에게로.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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