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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성일 Apr 03. 2020

#4 인도 왕자와 용왕의 딸

건국 신화에 담긴 문화 유전자


투어를 마치고 씨엠립으로 돌아왔다. 시내를 걸으면서 글자들이 눈에 계속 들어오고 괜히 신경 쓰였다. 낯선데 뭔가 귀엽고 자꾸 눈에 밟히고 알고 싶은 게 많았다. 아아, 이것은 아마도 러브... 이 글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


길 모퉁이에서 간판을 들고 서 있는 힌두교 신 가루다(Garuda) ⓒ2017. Nohsungil
광고 금지. ⓒMichael Coghlan
TV 음악 채널의 한 장면. ⓒantjeverena


길지 않은 투어를 마치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공항 게이트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들의 이야기가 공존하는 도시와 너무나 대조되는 철골 구조와 정돈된 라틴알파벳에서 느껴지는 익숙함. 한 자도 읽지 못하는 크메르 문자 때문에 오히려 신화의 배경에 더 젖어들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비행기가 이륙했다.



현실로 돌아왔다. 익숙한 글자들 사이에서 미세한 균형점을 찾아가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일상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정돈된 글꼴을 보는 중에 머릿속으로는 오히려 불규칙하고 새로운 크메르 문자를 되뇌이는 나를 발견했다.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도 함께.

누가 그 문자를 만들었을까? 한글처럼 그 옛날 크메르인 누군가가 발명한 걸까? 아니면 다른 문화권에서 들어온 걸까?
둥근 글자는 어떻게, 무엇으로 쓴 걸까? 그 둥근 모양은 어떻게 지금처럼 반듯하게 바뀐 걸까?......

크메르 문자의 늪에 빠진 이상 이제는 본격적으로 그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수밖에 없다. 사회과 부도와 백과사전을 들여다보던 역사 덕후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순간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시작부터 난관이다. 동남아시아와 문자를 연구한 책들을 뒤져보다가 실마리를 발견했다.


동남아시아라고 하는 지역은 … 지리적, 언어적, 민족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지역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일정한 정도의 헤게모니가 존재한다. 그것은 인도 아대륙(印度 亞大陸)의 헤게모니이다.
각 지역의 공통 분모로서 작용한, 그리고 서력 1천 년 동안 동남아 각 지역에 문화적 일관성의 요소를 들여온 루트가 된 대동맥 혹은 교류의 생명선은 바다였다. 항해나 계절풍에 대한 지식과 교역이 문화의 이동에 자극을 주었다. 이 루트를 따라 인도의 상인, 이주자, 군사적 모험가, 힌두교와 불교의 승려나 전도사들이 그들의 언어(산스크리트어)와 그들의 문자(브라흐미 문자(Brahmi)의 남인도계 변종인 그란타 문자(Grantha)), 그리고 그들의 종교(힌두교, 불교)를 들여왔다. 몇 세기를 지나면서 이들 요소는 그 지방의 사람들 속으로 동화되었다. 힌두교 승려의 제사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는, 공존의 시기를 지난 후 그 지방의 언어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불교가 힌두교보다도 동남아시아인의 사고에 좀 더 적합하다고 판명되었다.
원래의 왕국들은 없어졌지만 본질적으로 동남아시아의 성격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요소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그것은 11세기에서 12세기에 스리랑카에서 팔리(Pali)어 경전의 수입에 의해 보강된 불교와, 외형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인도를 기원으로 하는 각종의 문자이다.

- 『문자의 역사』, 알버틴 가우어 저, 강동일 역, 도서출판 새날, 185-186.


힌두교의 전파 경로. 아래 지도와 함께 보면 힌두교와 남인도 브라흐미 문자가 동남아시아에 미친 지역적 연관성을 알 수 있다. ⓒGunawan Kartapranata


오늘날 발견되는 남부 브라흐미 계열 문자의 분포. 남인도 브라흐미 계열 문자의 첫 자음(/ka-/)을 지도에 표기했다. ⓒ2020. Nohsungil


자료를 찾다보니 크메르 문자의 기원은 인도였다. 고대 인도, 특히 남인도 지역의 여러 왕국은 벵골 만(Bay of Bengal)을 거쳐 안다만 해(Andaman Sea), 말라카 해협(Malacca Strait), 타이 만(Bay of Thai), 남중국 해(South China Sea)를 지나 중국까지 무역 활동을 했다. 인도에서 출발한 배에는 상인뿐 아니라 인도의 발달된 사회 제도와 종교를 익힌 인도의 사제 계급 브라만(Brahman)과 새로운 문화를 알고자 하는 귀족 계급 크샤트리아(Kshatriya)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동남아시아 전역의 여러 왕들이 상인들과 함께 들어온 브라만, 귀족들을 초청해 인도의 종교와 사회 제도를 배웠다. 그 과정에서 인도의 문자가 동남아시아에 골고루 퍼진 것이다.


이 사실은 내게 꽤 충격이었다. 동남아시아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태국 방콕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는 즉시 인도가 떠올랐다. 뜨거운 태양 만큼이나 강렬한 색의 건물들, 구불거리는 글자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신과 제단이 인도에서 봤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이후 캄보디아에서도, 미얀마에서도 인도를 떠올렸다. 생애 첫 해외여행지 인도의 감흥을 또다시 동남아시아에서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몸이 깨달은 것의 근거를 역사에서 찾은 순간 솔직히 짜릿했다.



인도 문명이 고대 캄보디아에 뿌리내렸다는 사실은 고대 캄보디아 지역의 건국신화인 ‘카운디냐와 소마(kaundinya and Soma)’ 이야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야기를 잘 소개한 그림책이 있어서 아래 링크에서 소개한다. (이해를 위해 정독해보시길 권한다.)



대부분의 구전 설화처럼 이 이야기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프레아 통(Preah Thong)과 니앙 니악(Neang Neak)인 버전에서는 전쟁이 아닌 해변의 보름달 축제를 인도 왕자가 훔쳐보는 사건으로 등장하지만, 인도 왕자와 용왕의 딸이 만나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흐름은 같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용왕은 나가라자(Nagaraja), 즉 ‘나가의 왕’이다. ‘나가(Naga)는 캄보디아에서 오래전부터 숭배된 뱀 신앙을 보여준다. 고대 앙코르 유적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캄보디아 곳곳에서 신성한 나가 상징을 발견할 수 있다.


앙코르 와트 3층에서 바라본 정문. 왼쪽 아래에서 나가 장식을 볼 수 있다. ⓒ2017. Nohsungil


캄퐁톰(Kampong Thom)의 한 분수. 나가들이 우주의 중심 메루(Meru) 산을 상징하는 시계 방향 똬리를 틀고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다. ⓒ2017. Nohsungil


이처럼 수천 년을 지나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건국 신화에는 후손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문화 유전자가 들어있다.

누군가의 발화(發話)는 이야기가 되어 사회로 퍼진다. 그리고 그것을 옮겨 적은 문자에도 그 사회의 고유한 문화 유전자가 담긴다. 중국어를 들었을 때, 혹은 프랑스어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정서가 전혀 다른 것처럼, 언어와 문자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문화의 맥락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놓인 맥락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글이나 한자, 일본 글자가 형성하는 동아시아 문화, 조금 나아가 서양에서 들어온 라틴알파벳이 형성하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잠시나마 언캐니 게이트를 지나 크메르 문자가 이끄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 보니, 글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열렸다. 형태와 균형에 누구보다도 집착했던 내게 크메르 문자는 꼭 친근한 한 사람의 삶으로 다가온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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