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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좀 그런 느낌으로 부족한 이유

브랜드는 스무고개가 아닙니다

by 너머

감각은 브랜드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각을 구체화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결국 ‘보이는 것’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고객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스무고개는 우리가 먼저 끝내야 합니다.



“그런 느낌으로는 부족한 이유”


“그냥 느낌은 있어요.”
“요즘 감성 있잖아요.”
“무겁진 않고, 트렌디한데 과하지 않은... 그런 느낌?”


브랜드를 표현하는 단어는 넘치지만,

정작 방향은 없습니다.
누구를 향한 감성인지, 어떤 맥락에서의 트렌디함인지,
왜 ‘무겁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또 익숙한 테이블 앞에 앉게 됩니다.
기획 없이 감각을 재료 삼아 브랜드를 설계하는,

그 불안한 자리.
그렇게 하루, 한 달, 몇 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 나는 디자인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스무고개를 하고 있는 걸까.”



브랜드는 말할 수 있어야 존재합니다.


디자인은 브랜드의 태도와 말투를 시각화한 결과입니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을 걸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어야만,

브랜드는 세상에 ‘말을 거는 존재’가 됩니다.


겉보기에 감성적이고 트렌디한 브랜드는 많습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과 대화하는 브랜드는 드뭅니다.
오래가는 브랜드는, 그 언어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런 느낌’만으로는 고객에게도,

소비자에게도 브랜드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고객들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브랜드의 생각을 맞춰줄 만큼 한가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걸 원하시는 거죠?’ 하고 눈치를 보지만,

고객은 한두 번 눈길을 주다 말고 금세 다른 선택지로 넘어갑니다.


브랜드가 모호한 언어로 말을 건네는 동안,

고객은 조용히 ‘다음’을 고릅니다.

스무고개는 브랜드가 할 일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이런 브랜드입니다”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브랜드는 방향입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면 좋겠어요.”
그 말로 시작했던 브랜드가
나중에는 이렇게 정의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사는 30대 여성이,
자기 전 10분 동안
나를 돌보는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브랜드.


브랜드의 시작은 ‘느낌’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각은 말투와 태도, 맥락과 시선으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브랜드가 브랜드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감각은 브랜드를 시작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브랜드를 오래 가게 하고 싶다면,

‘느낌적인 느낌’을 버리고

스스로 스무고개의 답을 먼저 맞혀야 합니다.

디자인은 감각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리고 방향은, 결국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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