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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나 말하라지

그 디자인, 시장 전략이 있었습니까?

by 너머

처음에는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기획 회의도 있었고, 레퍼런스도 공유되었으며,
디자이너는 브랜드의 톤부터 시각 언어까지 하나하나 쌓아 올렸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디자인이 완성되었고,
제품이 출시되었으며, 브랜드가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케팅은 없었습니다.
콘텐츠도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채널은 방치되었고, 광고는 진행되지 않았으며,

후속 유지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브랜드는 말 그대로 ‘올려만 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슬그머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 브랜드, 약했던 것 같아요. 리뉴얼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문제는 비주얼이 아니었습니다


성과가 없다고 해서, 브랜드가 약하다고 해서
디자인부터 바꾸자는 접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디자인은 단지 결과물일 뿐입니다.
전략 없이 출시했고, 채널 운영 계획도 없었으며,
소비자와의 접점조차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 문제를 비주얼에서 찾습니다.


“컬러가 약했던 것 같아요.”
“로고가 좀 애매했나?”
“요즘엔 더 쨍한 이미지가 먹히잖아요.”
“이번엔 좀 더 임팩트 있게 바꿔보죠.”


전략은 없었지만,
비주얼이 문제라는 결론은 늘 빠르게 도달합니다.






디자이너는 다시 호출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다시 호출됩니다.
컨셉이나 기획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브리프는 말도 안 되게 가볍습니다.
리뉴얼의 이유는 이번에도 불분명합니다.


다시 만들어진 리뉴얼 TF 회의에서

디자이너는 지끈거리는 머리룰 누른채 조심스레 묻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리뉴얼에 맞춰둔 마케팅 전략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하지만 현실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익숙합니다.


“일단 시안 느낌 나오면 그때 고민해보려고요”

"리뉴얼이랑 동시에 진행해보시죠"






브랜드는 소비되고 버려집니다


기획 없이 실행하고,
실행 없이 검증하며,
검증 없이 리뉴얼을 반복합니다.


브랜드를 ‘설계 대상’이 아니라
한번 써보고 반응 없으면 갈아끼우는 콘텐츠처럼 다뤄집니다.


그렇게 브랜드는
축적되지 않고, 소비되며, 버려지게 됩니다.





문제는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비주얼은 브랜드의 최전선입니다.
그 비주얼이 무너졌다면,

총알을 주지 않은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매번 비슷한 결론이 납니다.

디자인이 약했다

톤이 애매했다

방향성이 없었다


이 말을 듣고 있는 디자이너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방향성과 톤이 누구의 손에서 정리되지 않았는지,
어떻게 정리되지 않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보고나 말하라지


기획 없이 만들고,
유통 없이 올리고,
콘텐츠 없이 운영해 놓고
성과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거, 다시 리브랜딩해볼까요?”


브랜드는 단순히 ‘예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쌓아야 구축되는 자산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비주얼이 문제라고 말하기 전에,

제대로 한번 해보고 말씀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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