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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편인가

실무 디자이너로서 중심을 지킨다는 것

by 너머

실무에서 디자이너는 ‘받는 사람’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수정하고,
누가 피드백을 주면 반영합니다.

마케팅팀은 이런 말투가 좋겠다고 하고,
대표님은 이 느낌이 요즘 감성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영업팀은 현장에서 이건 튄다며 바꾸자고 합니다.


"이 말들 중, 무엇이 맞는 걸까?"

피드백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그 모든 말이 논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말은 기분이고,
어떤 말은 정치고,
어떤 말은 그냥 단순한 취향일 뿐입니다.

그중엔 확실히 틀린 말도 있습니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코웃음 수준의 요청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걸 자주 반박하지 못합니다.

회의가 길어지니까.
논쟁이 번거로우니까.
결국 또 돌아올 말이니까.

그럴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지금 나는 누구의 편인가?”


디자이너는 수많은 의견 사이에서
항상 기준을 고민합니다.

대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고,
마케터의 데이터를 고려해야 하며,
사용자의 반응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브랜드의 일관성과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요청이 옳을 순 없습니다.
그럴 때, 어느 요청을 받아들이고, 어느 요청을 버릴지
디자이너는 조용히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날은 “그래도 이건 반영해야겠지”라는 마음이 들고,
어떤 날은 “이건 말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저는
내 기준과 타인의 기대 사이에서 흔들립니다.

수정안의 논리를 설명하면서도
속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디자인 톤이 깨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일단 진행하자"며 마감일을 맞춥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파일을 정리하고,
모니터를 덮으려는 순간,
조용히 묻게 됩니다.


“오늘 나는 누구의 편에 서 있었지?”


편을 든다는 건
누군가를 반대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편을 들지 않는 상태’가 더 편한 선택이 됩니다.

하지만 아무 기준 없이 모든 요청을 받아들이는 디자이너는
결국 자신만의 방향을 잃고,
의견을 반영하는 역할에만 머물게 됩니다.

저는 그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디자인은 누군가의 말을 잘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방향을 향해 중심을 잡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피드백을 이겨내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모든 피드백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태도—
그건 스스로에게 지켜야 할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그 선을 조금 더 분명히 그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조용히 이 질문을 되뇌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편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내 디자인을 지킬 수 있는가?”


누구의 편도 될 수 없을 때,
나는 조금 더 내 편이 되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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