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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실 May 12. 2020

1장. 이럴 거면, 내가 변호사를 하고 말지

신랑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

그랬다,

이번에도 신랑은 변호사 시험에서 떨어졌다.
내가 그를 2015년에 만나고 5년 동안 함께한

변호사 시험만 3번,

군대 1년 반, 신혼 1년 반.

올해부터는 합격자 명단이 실명으로 공개가 되어

신랑한테 묻지 않아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회사에서 답이 없는 아이디어 회의에 지쳤고, 명단에 오빠의 이름이 없어 더 지쳐버렸다.
 
애써 연락하지 않았다. 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합격여부에 대해 자신이 없었던 오빠에게 확인사살까지 시킬 수 없기에.. 집에 가면 어차피 얼굴을 마주하기에 내버려두었다.
 
금요일 퇴근길이라 차가 막혀

여의도역에서 샛강역까지 가는

그 1km 남짓한 구간을 걸었다.


이 와중에 석양이 너무 예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의 구세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엄마는 너무 해맑게

“어~ 우리 딸~ 퇴근했어?”라며 인사를 건넸다.
“응.. 엄마 오빠 시험 안됐어...”

한 2-3초간 침묵 후
“어떻게 하니... 안됐어? 오늘 발표 나는 날이었어? 어떻게 하니” 당혹스러워하는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최서방은? 별말 없고?” 우리 오빠의 최대 지지자인 우리 엄마는 그 와중에 딸보다 최서방이 먼저인가 보다.
“응.. 그냥 전화 안 했어. 지금 집 가서 보려고.. 오빠도 속상해하겠지. 그리고 우리 윗집에서 물이 새서.. 이 와중에.. 오빠가 그거 고치느라 정신없을 거야.”
“응..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최서방이 제일 힘들 거야 누가 뭐래도. 그리고 변호사 그 거 뭐 안 하면 어떠냐~ 요즘 세상에 전문직 전문직 할 필요도 없어. 고민 좀 해보자. 어떻게 할지. 괜찮다. 그나저나 우리 딸이 고생할까 봐 걱정이네 엄마는.”


“응.. 나도 답답하지.. 하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지. 사람들이 죄다 물어볼 텐데..”


사회적 동물인 나는, 보수적인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는 대가로 나의 사생활을 전부 오픈해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는 문화인 이 조직에서 철면피로 변호사 지망생과 결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네가 왜? 그냥 변호사를 만나~ 야 네가 너무 아까워. 내가 소개팅해줄게.”
“미쳤어? 29살에 남자 친구 군대를 왜 보내. 그냥 헤어지고 선 보거나 소개팅 해! 뭐가 아쉬워서 군대까지 기다려.”


이런 비일비재한 폭풍비난 속에서 신랑과의 결혼은 21세기 마지막 남은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연상시켰다.


근데 나의 바보온달은 장군이 되지 못해 계속

바보온달이었다. 아직까지는.


꾸역꾸역 엄마와의 통화를 소화해내고 (사실, 엄마한테 오빠의 낙방 소식을 전하는 게 나의 1차 미션이었는지도 모른다)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금요일 퇴근길이면 마음이 가볍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산뜻해야 하건만, 오늘만큼은 굉장히 신중하게 발을 내디뎠다.
 
“띵!” 엘리베이터 소리. 그리고 한 발짝, 한 발짝.
현관문 앞에선 나는 심호흡을 하며 나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래,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까잇 변호사가 뭐 대수라고 내 신랑 기를 죽여. 됐어 됐어 또 하면 되지. 가자! 가서 오빠 꼭 안아주고 기 살려주고 저녁 먹지 뭐.’
 
“오빠~ 오빠~”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오빠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오늘 윗집에서 물이 새서 공사한 이야기를 쫑알쫑알 보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빠 괜찮아?” 하며 오빠를 안아주었다.
“응 내가 미안하지.. 복실이한테.. 복실이가 그간 힘들었는데 보답 못해서 미안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마음을 신경 써준 점과 힘없이 말하는 오빠의 목소리에서 처량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녁은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복실이 표 크림 스파게티라며 선포하고 후다닥 (사실 어떤 정신으로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만들어서 예쁜 접시에 담아 후루룩 먹었다.
크림 스파게티에 들어간 새우가 맛있다며 이야기 흐름을 전환하며 애써 괜찮은 척을 했다.


배불리 먹고 넷플릭스의 좋아하는 김씨네 편의점도 몇 편 보다가 갑자기 나의 짓눌러져 있던 억울함이 밀려왔다.
 
갑자기 오빠한테 막말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나도 정말 힘들어.. 회사 가기도 싫고 사람들 볼 면목도 없고 나 어떻게 하냐고.. 나도 회사에서 중요한 시기인 거 몰라? 나보고 어쩌라고 합격을 못해!!!!! 나 오빠 만난 지 5년째야.. 5년이면 내가 로스쿨 가서 합격하고도 남겠어.. 이럴 거면 내가 변호사를 하고 말지!! 그게 그렇게 어려워?

50퍼센트라고? 사회 나와봐. 취업시장 가봐!

2:1인 경쟁률이 어딨어! 사회는 얼마나 치열한지 알아? 취업하면 끝인 거 같아? 회사에서는 더 빡쎄.. 나 어떻게....”


쏟아부었다.. 그렇게 오빠랑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 동안 울었다..

5살 먹은 아이처럼 엉엉 목놓아 울었다.


그 간의 수고스러움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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