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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실 May 12. 2020

2장. 힘든 건 사실이야

신랑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


금요일 결과 발표 이후, 그 주말은 기억이 없다.


다만, 조카 생일 기념 언니네 방문을 하기로 했던

유일한 약속을 카톡 몇 자로 취소를 하고 언니에게도 약식보고(변호사시험 낙방 소식)를 마쳤다.


언니에게도 위로의 카톡을 받고 나는 올해에도 ‘

불쌍한 내 동생 역할’을 맡았다.


오빠도 머릿속이 분주해 보였다.

나이는 꽉 차서 일반기업 공채는 발도 들이밀 수도 없고, 그 힘들다는 공기업의 문 밖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난제의 해결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문제만 풀면 되지 않을까?


“오빠, 아버님 회사에서 알바라도 해. 뭐라도 해봐. 나 올해는 오빠 뒷바라지 못해. 집도 없는데 계속 돈만 써야 하잖아. 작년에도 오빠 학원비에 돈도 거의 못 모았단 말이야.”


비수가 되어 오빠의 가슴에 꽂힐 걸 알면서도 내뱉은 말이었다.

경제적 부담감에 대한 외벌이 가장의 한풀이.

보나 마나 뻔한 오빠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미안해, 복실아. 어떻게든 부담 안되게 해 볼게.”
사실 내가 내뱉은 경제적 부담감에는 시댁에 대한 미움도 어느 정도 섞여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댁 이건만, 나에게는 매정하게도 경제적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퍽 서운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시댁이 여유롭다는 사실이.
서운한 점은, 나는 재건축이 코앞인 17평짜리 아파트에서 전세를 얻어 (그것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사택 임차) 매일 하수구 냄새와 녹물의 향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반면 시댁은 재건축 완공 후 입주한 60평짜리 아파트라는 점이다.


안심이 되는 점은, 그래도 아들인데 어려운 상황이 오면 모른 척 하진 않으시겠지 하는 마음이다.


다만 나의 걱정은 벌써 도래한 전세 계약기간이

올해 10월이라는 점이고, 나는 1억 이상이 올라버린 전셋값에 당황스러울 따름이고, 사택 임차 한도를 넘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누군가는 회사가 좋아 전셋집도 마련해주네, 좋겠네 하겠지만 그 속사정은 당사자만이 아는 법이다.
임차를 쓰는 직장동료는 보기 드물다.

우리 부서 60여 명중에 나를 포함하여 2명.

분기에 한 번씩 부장님께 승인을 받는 고통이 있으며, 낙인을 찍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임차를 쓴다고 하면 “어? 양대리 시댁 반포라고 하지 않았어?” 그 말의 깊은 뜻에는 시댁이 강남 사는데 왜 임차를 쓰느냐. 능력이 없는 거냐? 아님 네가 시댁에 미움받는 거냐?라는 의미이다.


초반에 임차로 좋은 전셋집을 마련해서 자랑스럽고 뿌듯했던 나의 마음은 이내 ‘능력 없는, 시댁에서 이쁨 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임차 쓴다는 말을 하지 않고 말을 아낀다.


아무리 4포 세대, 절망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SNS도 그렇고 주변 사는 얘기를 들어도 그렇고 생각보다 여유롭게들 살고 있다.

몇 백만 원씩 하는 패딩과 가방을 들고 다니며,

억 소리가 나는 외제차에 강남 아파트에서 시작하는 신혼부부들.
 
집과 돈은 나만 없는 것 같은 상대적 박탈감에 한 없이 외로운 순간이다.
 
이런 순간에 내가 꺼내는 카드가 있다. 바로 ‘그래도’ 카드. ‘그래도’로 시작하여 내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나열을 해보기 시작한다.
 
1.  그래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하고 결혼은 했잖아
2.  그래도 나는 엄마, 아빠, 언니들이 있잖아
3.  그래도 나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잖아
4.  그래도 나는 밥 먹고 커피 먹고 디저트까지

     먹을 능력은 있잖아
5.  그래도 나는 회사에서 인정받고 일도 잘하고

     있잖아
이렇게 기본 좋게 그래도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

그런데’ 모드가 찾아왔다.


1.  그런데 나는 집도 없잖아
2.  그런데 나는 차도 없잖아
3.  그런데 내 신랑은 직업도 없잖아
4.  그런데 나는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도 없잖아
5.  그런데 나는 아기도 안 낳을 거잖아
6.  그런데 나는 한 시도 쉬지 않고 일만 했잖아
7.  그런데 나는 명품가방 하나 내 돈 주고 산적 없고 가방보다 비싼 신랑 학원비는 턱 내주고
불쌍한 내 인생.... 하면서 또 갑자기 엉엉 울어버렸다.
 
옆집에서 들을까 부끄러워 이불속에 얼굴을 푹 파묻고 죽어라 고함을 지르며 울었다.

머리가 띵해질 때까지.
내가 가진 것보다 없는 것이 많아 서러운 순간이었다.
 
엄청 힘든 건 사실이다.

이 순간을 견뎌내는 원동력이 사라져 그 원동력의 실마리를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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