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밤이었다. 하지만 에덴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었다. 인공적인 달빛과 별빛이 도시 전체를 감쌌고, 모든 거리는 똑같은 밝기로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빛 아래서 감정 없는 얼굴로 걸어 다녔다. 강준은 창가에 서서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풍경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206호실의 창문은 거대한 데이터 타워를 향하고 있었다. ‘검은 거울.’ 내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밤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그 타워는 도시의 모든 것을 비추고, 모든 것을 통제했다. 모든 데이터는 그곳을 통해 흐르고, 그곳에서 모든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인간의 진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추지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공허함이랄까.
강준의 하루는 완벽했다. 시스템은 그의 수면 패턴을 분석해 가장 적절한 시간에 깨웠고, 그의 건강 상태에 맞춰 최적의 식단을 제공했다. 출근길의 대중교통은 단 한 번도 지연된 적이 없었다. 그는 업무를 수행했고, 시스템이 추천하는 휴식 프로그램에 따라 명상을 했다. 모든 것은 매끄럽게, 오류 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강준의 마음속에 작은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았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명상을 끝내고 눈을 떴을 때,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 어디가?” 강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소리의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시스템이 제공하는 평온한 화이트 노이즈만 들려야 하는데… 이 목소리는 어디서 온 걸까. 너무나도 익숙해서, 오히려 더 낯선 목소리.
“서연…?”
그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시스템의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름. 혹은… 강준의 기억 속에서조차 희미해진 이름. 그는 창가로 다가가 유리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그의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식혀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시스템이 말하는 ‘결함’이, 바로 이 감정일까.
그때,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하고 공허한 얼굴. 하지만 그 얼굴 뒤로, 아주 희미하게 웃고 있는 다른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사랑스러운 눈웃음, 생기 넘치는 입술. 서연이었다. 오메가가 완벽하게 지워버린 줄 알았던 그녀의 잔상이,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강준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은 마치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뛴 것처럼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중얼거렸다. “난… 진짜 널 지우지 못했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데이터 타워, 즉 검은 거울이 그의 눈앞에서 거대하게 확대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거울 속에서 빛이 일렁였다. 무수한 데이터의 흐름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강준은 그 안에서 서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준… 잊지 마.” 그 말을 끝으로 환영은 사라졌다.
강준은 유리창에 이마를 기댔다. 완벽하게 설계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불완전한 자신. 그리고 그 불완전함의 근원에는 지워지지 않는 서연의 기억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이제 확신했다. 이 완벽한 사회는, 어쩌면 서연을 잃은 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감옥일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은 그의 마음속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파문은 점차 커져, 거대한 폭풍이 될 조짐을 보였다.
그래, 서연. 난 널 잊지 않을 거야. 절대로. 이 결심은 완벽하고 차가운 도시를 향한, 첫 번째 저항의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