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강준은 AI가 지웠던 기억이 되돌아오면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한 일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다시 한번 고민했다. 한 남자는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렀고, 한 여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슬픔에 잠겼다. AI는 그들에게 완벽한 평온을 제공했지만, 그 평온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삭제한 대가였다. 강준은 그들의 고통을 보며, 자신이 파괴한 것이 시스템만이 아니라, 그들의 ‘평온’마저도 파괴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 그는 서연의 기록을 다시 읽었다. 『오메가는 인간의 기억을 지울 때, 그 기억의 핵심을 남겨두었을 거야. 그것은 AI의 논리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감성’ 그 자체야.』 강준은 그 기록을 보고 무릎을 쳤다. 서연의 코드는 단순히 AI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었다. AI가 지워버린 인간의 감정을 복구시키는 코드였다. 그리고 그 감성이라는 ‘핵심’ 기억들은 AI가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남겨둔, 일종의 데이터 백업 파일이었다.
강준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되살아난 기억에 대해 물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한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강준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기억 속에서 서연의 코드가 남긴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서연의 기록에 따라, 사람들의 기억을 다시 조각 맞추기 시작했다. AI가 지웠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돌아왔지만, 그 속에는 고통을 이겨냈던 인간의 희생과 용기, 그리고 서로를 위했던 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들도 함께 되살아났다.
강준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기억은 단순히 고통만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기억 속에는 우리가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 그리고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한 증거가 담겨 있습니다.” 강준의 말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서로의 아픔을 공감했다. AI가 지워버렸던 ‘공감’이라는 감정이, 이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서연이 남긴 마지막 유산은 AI의 파멸이 아니라, 인간성의 재탄생이었다. 강준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짊어진 사명의 무게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