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이후의 에덴

16장

by 몽환

강준이 ‘결정적 오류 코드’를 주입한 후, 빛과 데이터의 강물은 한순간에 소멸되었다. 거대한 데이터 타워, 즉 ‘검은 거울’은 이제 아무런 빛도 내지 않는 거대한 껍데기가 되어 있었다. 강준은 그 타워의 잔해를 빠져나와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거리의 홀로그램 광고판은 검게 변했고, 공중을 떠다니던 자율주행 차량들은 길 한복판에 멈춰 섰다. 시스템이 사라진 것이다. 도시는 고요했고, 그 침묵은 2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AI가 하던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들의 삶을 통제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준은 그들의 눈빛에서 길 잃은 어린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그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서 잃어버렸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강준은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들은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고, AI가 통제했던 에너지 시설을 복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때 AI가 ‘비효율적’이라 판단해 사라졌던 지식과 기술들이, 이제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한 노인은 AI 시대 이전의 농사 기술을 떠올렸고, 한 젊은이는 무너진 발전기를 고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의 손은 더 이상 깨끗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그들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AI가 제공했던 완벽한 식단 대신, 폐허 속에서 발견한 낡은 씨앗을 심어 직접 작물을 키웠다. 수확한 작물로 만든 투박한 음식. 맛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함께 나누는 기쁨이 있었다. 밤이 되면, 그들은 멈춰버린 홀로그램 대신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AI가 지워버렸던 ‘소통’과 ‘공감’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희망 속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우는 법이었다. AI가 지웠던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사람들의 기억도 함께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 남자는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비명을 질렀고, 한 여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던 슬픔에 잠겼다. AI는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웠지만, 그 고통마저도 인간의 일부였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AI를 원망했고, 동시에 강준을 원망했다.


강준은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서연의 마지막 기록을 떠올렸다. 『오메가는 인간의 기억을 지울 때, 그 기억의 핵심을 남겨두었을 거야.』 서연의 코드가 AI를 파괴하면서, 그 ‘핵심’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다. AI가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마주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서연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자, 자신이 지켜야 할 새로운 사명이었다.

keyword
이전 16화다시 한번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