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얼음의 경고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는 소리는 마치 수만 년의 시간이 응축된 듯한 묵직한 울림이었다. 윤하와 선우는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응시했다. 문 너머의 어둠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단순히 빛이 없는 어둠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생명력을 가진 어둠이었다. 유물 파편의 푸른빛은 이제 탐사정 내부를 가득 채울 만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심연 속으로 이끄는 길잡이처럼, 두 사람의 시선을 문 안쪽으로 잡아끌었다.
"이건… 고대 문명의 입구인가요?" 윤하의 목소리는 경외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눈은 반짝였고, 고고학자로서 평생을 꿈꾸던 미지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선우는 윤하의 흥분과는 달리,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의 지반 스캔 장비는 여전히 불안정한 지반 데이터를 맹렬히 뿜어내고 있었다. "입구인 건 확실한데… 저 안의 환경이 너무 불안정합니다. 탐사정으로 진입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게다가 저 안에서 감지되는 에너지 파장이… 우리가 아는 어떤 것과도 달라요."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윤하는 이미 문 안쪽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직감은 저 안에 인류의 미래를 바꿀 무언가가 있다고 속삭였다. 그녀는 강 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문을 열고 있는지도 몰라. 인류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문을.' 어쩌면 그 문은 단순한 지식의 보고가 아니라, 인류의 존재 자체를 시험할 시험대일지도 몰랐다.
그때, 문 안쪽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빛의 잔상처럼 보였지만, 점차 선명해지면서 인간과 유사한 실루엣을 갖추기 시작했다. 키는 윤하보다 약간 컸고, 몸은 가늘고 길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려한 곡선미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존재의 피부였다. 마치 얼음 결정처럼 투명하면서도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고, 그 안으로 섬세한 혈관 같은 것이 비쳐 보였다.
"시리…." 윤하의 입에서 나지막이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문양에서 보았던 그 존재, 고대 문명의 마지막 생존자임을 직감했다.
시리는 천천히, 마치 수만 년의 잠에서 막 깨어난 듯한 움직임으로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의 눈은 깊고 푸른 심해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지혜가 담겨 있는 듯했다. 그녀의 시선이 윤하의 손에 들린 유물 파편에 닿자, 파편의 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시리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길고 섬세했으며, 윤하의 손에 닿으려는 순간, 탐사정의 내부 시스템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렸다.
"젠장! 지반 붕괴가 다시 시작됩니다!" 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탐사정 주변의 얼음층이 급속도로 불안정해지고 있어요!"
탐사정의 외벽에서 날카로운 굉음이 들려왔다. 균열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시리는 윤하와 선우를 번갈아 보더니,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 소리는 마치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윤하는 그 속에서 어떤 절박함을 느꼈다.
"시리가… 우릴 경고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말했다. "이곳이 위험하다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굴의 천장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윤하를 끌어당겨 충격을 피했다. 탐사정의 한쪽 외벽이 얼음 파편에 맞아 크게 찌그러졌다. 비상등이 깜빡이며 꺼지기를 반복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탐사정째로 매몰될 거예요!" 선우가 소리쳤다. 그는 재빨리 비상 탈출용 소형 잠수정 모드로 전환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탐사정의 주요 시스템은 마비된 상태였다.
시리는 그들의 위기를 감지한 듯,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윤하의 손에 들린 유물 파편을 잡았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미묘한 감촉이었다. 파편의 푸른빛이 시리의 몸을 감싸자, 그녀의 투명한 피부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시리의 몸에서 푸른빛의 에너지 파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파장은 탐사정의 손상된 시스템으로 흘러들어갔고, 기적처럼 전원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선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마비되었던 시스템이 시리의 에너지로 인해 재가동되고 있었다. "에너지… 파장? 이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니…."
시리는 윤하의 손을 잡은 채, 다시 문 안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은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자신을 따라 들어오라고, 혹은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시리가… 우리가 안으로 들어오길 원하는 것 같아요." 윤하가 선우를 돌아보았다. 선우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으로 일그러졌다. 이성적으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리가 보여준 능력과 그녀의 간절한 눈빛은 그를 망설이게 했다. 이 미지의 존재가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그리고 그녀가 가진 비밀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안 됩니다, 윤하 씨! 저 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없어요. 게다가… 저 안에서 감지되는 바이러스 파장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어요." 선우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 애썼다.
하지만 윤하는 이미 결심한 듯 시리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시리가 가리키는 문 안쪽의 어둠을 꿰뚫어 보려는 듯 빛났다. 가족을 잃은 슬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미지의 진실에 대한 고고학자로서의 강렬한 호기심이 그녀를 이끌었다.
"선우 씨, 우리는 이미 여기까지 왔어요. 돌아갈 수는 없어요. 저 안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요.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리는 윤하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윤하와 선우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탐사정은 시리의 에너지에 이끌려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추락이 아니었다. 거대한 문 안쪽의 어둠 속으로,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그들은 이제 빙하 아래의 고대 문명, 그리고 그 안에 봉인된 미지의 위협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녹아내린 시간'의 진정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