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얼음의 경고
탐사정은 시리의 에너지에 이끌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움직였다. 거대한 문을 통과하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다시금 암흑이 아니었다. 대신, 탐사정의 불빛이 닿지 않는 저 멀리에서부터 거대한 건축물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빙하 깊숙이 자리 잡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규모의 고대 도시였다. 도시의 건물들은 거대한 결정체처럼 빛났고, 그 형태는 인간의 건축 양식과는 전혀 달랐다. 유려하면서도 기하학적인 곡선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지는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게… 정말 문명이라고요?" 선우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뿌리 깊은 불신이 섞여 있었다. 지반 공학자로서 그는 이런 거대한 구조물이 수만 년 동안 얼음 아래에서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기술로 이런 곳을 지은 거죠? 빙하의 압력과 냉기를 어떻게 버텼을까요?"
윤하는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눈앞의 광경에 압도되어 있었다. 유물 파편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은 이제 도시 전체에 흐르는 듯한 은은한 발광 에너지와 공명하며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시리는 여전히 윤하의 손을 잡은 채, 고요한 눈으로 도시를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혹은 잃어버린 고향을 바라보는 듯한 복합적인 감정을 담고 있었다.
탐사정은 도시의 중심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주변의 건물들은 점점 더 크고 웅장해졌으며, 곳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들과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윤하는 그것들이 고대 문명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들이 마주했던 재앙에 대한 기록임을 직감했다.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별들의 움직임, 알 수 없는 에너지의 흐름, 그리고 미지의 생명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선우가 외쳤다. 그의 시선은 도시의 가장 거대한 건축물, 마치 거대한 수정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 같은 구조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는 미약하지만 일정한 주기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에너지원일까요? 아니면… 저 도시의 심장 같은 곳?" 윤하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선우는 자신의 스캔 장비를 확인하며 말했다. "우리가 아는 어떤 에너지원과도 다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를 수만 년 동안 유지하려면 상상할 수 없는 양의 에너지가 필요했을 텐데…."
그때, 탐사정의 비상 알람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지반 붕괴 경고가 아니었다. 새로운 종류의 경고음이었다. 선우의 스크린에 복잡한 데이터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바이러스… 파장입니다! 아까 그 바이러스 파장이 엄청난 속도로 증폭되고 있어요! 도시 전체에서 감지됩니다. 이 건물들 안에… 바이러스가 봉인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선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지반 공학자로서 그는 구조물의 안정성에는 능했지만, 생물학적 위협 앞에서는 무력했다.
시리는 선우의 경고음을 들은 듯, 윤하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어떤 결의가 스쳐 지나갔다. 시리는 탐사정을 멈추게 하더니, 윤하에게 몸짓으로 도시의 심장과 같은 피라미드 건물을 가리켰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저 피라미드 안에… 뭐가 있다는 거죠? 바이러스의 원천?" 윤하가 물었다. 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인류에게 경고하는 듯, 동시에 도움을 요청하는 듯 보였다.
선우는 스크린을 노려보았다. "이 도시는 봉인되어 있었던 게 아니라… 스스로를 격리했던 거군요. 바이러스를 외부로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봉인을 깨뜨린 겁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들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에 대한 깊은 자책감이 섞여 있었다.
바이러스 파장은 점점 더 강해졌다. 탐사정의 외부 필터 시스템조차 압도될 정도였다. 시리는 다시 한번 윤하의 손을 이끌었다. 그녀의 의지는 명확했다. 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곳에 바이러스의 비밀과, 동시에 그들을 멸망으로 이끈 재앙에 대한 해답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탐사정의 스크린에 미지의 물체가 포착되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문어의 촉수처럼 보이는 움직이는 구조물이었다. 시리가 움찔하며 윤하를 뒤로 감췄다. 그녀의 고요했던 눈빛에 순간적인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뭐죠?" 윤하가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스크린에 나타난 물체의 형태를 눈으로 좇았다. 그것은 유기체 같으면서도, 동시에 기계적인 느낌을 주는 이상한 존재였다. 표면에 희미하게 빛나는 발광체들이 박혀 있었는데, 그 빛은 도시의 건물에서 나오는 빛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선우는 재빨리 물체를 스캔했다.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 박사님… 분명히 경고했는데… 설마…."
그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촉수 같은 물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탐사정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비상 전등마저 깜빡이며 꺼졌다. 암흑 속에서, 윤하와 선우는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깨달았다. 이 고대 도시는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수만 년 동안 얼음 아래에서 살아 숨 쉬던 존재이자, 동시에 고대 바이러스와 함께 깨어난 새로운 위협의 근원지였다. '녹아내린 시간'은 이제 과거의 비밀을 넘어,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생존의 싸움으로 변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