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물에 잠긴 도시
뉴욕은 이미 물에 잠긴 도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천루의 절반은 거대한 물웅덩이 속으로 사라졌고, 상층부의 건물들만이 위태롭게 물 위로 솟아 있었다. 빌딩 사이를 오가는 것은 자동차가 아닌 수상 이동 수단이었고, 침수되지 않은 고지대만이 겨우 인간의 거주지로 남아 있었다. 강 박사가 지휘하는 의료팀과 방역 전문가들이 이미 현장에 투입되어 있었다. 공기 중에는 소독약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윤하와 선우가 뉴욕 상공에 도착했을 때, 도시의 분위기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정부에서 보낸 구조선과 의료선이 혼란스럽게 오가고 있었다. 기지에서 보고받았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듯했다.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릅니다." 강 박사가 윤하와 선우를 맞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피로와 함께 절망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초기 증상은 고열과 심한 호흡기 증상인데, 잠복기가 매우 짧고 감염성이 강한 것 같아. 이미 수천 명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통제 불능 상태야."
선우는 주변의 지반 스캔 데이터를 확인했다. "도시 곳곳의 지하 배수 시스템과 오염된 수원이 바이러스 확산에 영향을 미 미치고 있습니다. 특히 지반이 약해진 지역을 중심으로 감염이 더 빠르게 퍼지는 것 같아요." 그의 전문 지식은 재앙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물에 잠긴 도시의 취약한 인프라가 바이러스의 전파를 가속화하고 있었다.
윤하는 감염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져 있었고, 그들의 피부에는 붉고 기이한 발진이 돋아 있었다. 그녀는 빙하 아래 고대 문명의 벽화에서 보았던 바이러스 감염자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만 년 전 그들을 멸망으로 이끌었던 바이러스가, 이제 인류에게 똑같이 닥쳐오고 있었다.
"치료법은요?" 윤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강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우리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기존 백신은 전혀 효과가 없고… 말 그대로 미지의 영역이야."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로고가 새겨진 거대한 선박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빅터의 '오션프론티어' 소유의 의료선이었다. 그들은 이미 바이러스 확산 지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접근 방식은 의료 지원이라기보다는 통제에 가까웠다. 중무장한 보안 요원들이 감염자들을 강제로 격리하고 있었고, 언론은 그들의 통제 아래 놓인 듯 보도 내용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빅터가 이 상황을 그냥 두지 않을 줄 알았어." 선우가 이를 갈았다. "분명히 이 바이러스를 자신들의 이득에 이용하려 할 겁니다." 윤하는 빅터 측의 의료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적인 빛을 응시했다. 그 빛은 어둠 속에 잠긴 도시 위에서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인류의 위기를 자신들의 사업적 기회로 삼으려 했다. 고대 바이러스의 확산은 그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줄 것이고, 고대 문명의 기술은 그 시장을 지배할 수단이 될 터였다.
강 박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미 언론을 통제하고, 자금을 이용해 상황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이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인 양 행세하며, 빙하 아래 고대 문명의 기술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려 할 거야."
윤하의 손에 든 고대 유물 파편이 다시 한번 희미하게 진동했다. 이 파편이 고대 바이러스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바이러스를 막을 실마리가 이 안에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시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고요한 눈빛에 담겨 있던 슬픔과 경고. 시리가 그들을 고대 도시로 이끌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물에 잠긴 도시 위로 재앙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바이러스는 맹렬한 속도로 인류를 집어삼키려 했고, 그 혼란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더욱 추악한 본성을 드러냈다. 윤하와 선우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무력했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시리와 고대 문명의 비밀을 밝혀내고, 이 재앙을 막기 위한 마지막 희망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