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시간은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든다. 지상에서의 끔찍한 기억도, 질식할 뻔했던 공포도, 그리고 아버지의 불안한 눈빛도. 모든 것이 희미한 꿈처럼 멀어져 갔다. 이제 에덴은 우리의 전부였다. 완벽하게 설계된 지하 도시. 거대한 루멘 코어가 안정적으로 산소와 에너지를 공급했고, 인공 태양은 낮과 밤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의 연구 기록들을 정리하며 그의 마지막 흔적을 쫓았다. 아버지는 에덴이 안정된 지 1년 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아직 어렸고,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세상이 다시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의 연구실은 이제 나의 공간이 되었다. 아버지의 낡은 책상 위에는 수많은 종이들과 펜, 그리고 내가 어린 시절에 그린 삐뚤빼뚤한 그림이 놓여 있었다. 기록들은 복잡하고 난해했다. 루멘 코어의 설계도, 인공 생태계의 운영 방식,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생체 코어'에 대한 메모. 나는 루멘 코어의 보조 장치에 연결되어 있던 그 작은 금속 조각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 절망 속에서 우리를 살려낸 유일한 희망.
"무진아, 여기서 뭐 해?" 어깨에 묵직한 손이 얹혔다. 고개를 돌리니 정우가 서 있었다. 어느덧 그는 에덴의 '최고 관리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이었으며, 에덴의 모든 시스템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고 따랐다.
정우는 내가 들여다보고 있던 기록들을 힐끗 보더니, 표정을 굳혔다. "아직도 박사님 기록을 보는구나. 이제 과거는 잊어야 해. 에덴은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잖니." "하지만... 아버지의 기록에는 '생체 코어'라는 게 계속 언급돼요. 이건 대체 뭐였죠?"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정우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미완성된 기술이야. 박사님께서도 결국 폐기하셨던 것이지. 그저... 쓸데없는 호기심에 불과해."
정우는 그렇게 말하며 기록들을 덮어버렸다. 나는 그의 행동에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폐기된 기술? 하지만 아버지의 기록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생체 코어'가 루멘 코어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적고 있었다. 정우는 왜 그 사실을 숨기려는 걸까?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그의 등 뒤에서 낯선 그림자를 보았다. 에덴은 평화로웠지만, 그 평화 아래에는 감춰진 진실이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