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보내고 그 사랑만을 간직할게.
아빠와의 이별은 가슴 어딘가에 두고선
아무렇지않은듯 또 하루를 보내었다.
매일매일 평범하고싶은 하루였다.
정말 별일 없는 날들 사이,
숨을 조금씩 골라내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날들 사이에
문득 찾아오는 ‘아무렇지 않던 날’이 있다.
이번엔, 할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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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의 이별은
아빠와의 이별과는 결이 달랐다.
감정의 소용돌이보단,
이성의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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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할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참 많다.
“어화둥둥 내 손녀야.”
하루에도 몇 번씩 부르시던 분.
그러다가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야단치시던 분.
내 나이 서른이 넘어도
할머니는 여전히 나에게 또다른 ‘엄마’였다.
엄하지만 정 많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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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외투도, 유행하는 장난감도
항상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사주셨다.
내가 무심히 말했던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그 입맛 하나를 맞추기 위해
할머니는 매번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주셨다.
그중에서도 계란찜.
본인은 비려서 드시지도 않으시면서도
내가 좋아한다고 하면 매 끼니마다 만들어 주셨다.
심지어 방학마다 찾아오는 손녀를 위해
계란을 세판씩 쟁여두시기까지 하시며.
그래서 지금도 계란찜을 보면
그 몽글몽글한 식감에
가끔은 목이 메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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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에 참기름 넣고 비빈 밥,
된장 덩어리가 둥둥 떠 있던 찌개.
할머니와 나는 입맛도 닮았다.
그 밥상이 문득 생각난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밥상.
이젠 다시 만날 수 없기에,
나는 그리워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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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남에게 도움받는 걸
참 많이 힘들어하셨던 분이다.
할아버지에게조차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 이후엔
그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하셨다.
그 자존심,
어쩌면 나도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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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갈등으로 인해
할머니와의 교류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할머니에게
얼굴조차 비추지 못하게 되었다.
불편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 감정은 미안함으로 오래 남았다.
그러다 들려온 할머니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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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은 충격이었지만
이해하고자 했다.
아빠의 죽음 앞에서는
자식으로서 감히 판단하고자 했던 내가,
할머니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삶을,
그 고단함을,
조금은 알 것 같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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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한마디.
“–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고작 얼굴 한번 못 보여드린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한 번만, 한 번만 날 봐줬으면 좋겠다고
그 순간엔 온 마음 다해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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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할머니의 ‘첫 손주’이자,
‘첫사랑’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잘 키워야 해”라는 책임에서 벗어나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었던 첫사랑.
할머니와 나는 그런 관계였다.
그래서 더 그립고,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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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할머니와의 이별은
아빠와의 이별과는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감정이 휘몰아치기보다,
더 조용히, 천천히,
가슴 어딘가를 눌러앉히는.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그리움은 온기로 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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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조금만 더 자존심을 내려놨더라면.”
그런 생각은 여전히 들지만
이젠 조금은 내려놓으려 한다.
지나간 시간보다는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그리움은 보내고,
그 온기만을 기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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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하루,
나는 살아가고 있다.
담담하지만 미련 없이,
마음 어딘가엔 여전히 몽글몽글한
그 사랑 하나 간직한 채로.